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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Jun 10. 2023

"감성팔이" 음악다방의 추억을 소환하면서

더 이상의 쉼은 안 될 것 같아서 마이크 앞에 앉았다.

떨림이 아니고 잊어버림이 문제였다.

작년 8월 인터뷰 방송을 하고 나서 10개월 만이다.  

쉼을 해야 하는 이유는 모르겠으나 반드시 방송을 해야 할 이유도 모르기에 기약 없이 보낸 시간들이다.  

1년을 채우기 전에 방송을 하고 싶어서 부랴부랴 마이크를 잡았다.


나는 마을공동체 미디어인 동네방송을
유튜브와 팟캐스트로 하는 마을미디어 활동가다.



우리 세대는 음악다방이라는 낭만을 가지고 있다.

지금같이 다양한 차를 마시고, 베이커리를 먹는 카페가 아니고 커피를 마시면서 원하는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음악감상실 다방이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영문도 모르고 떠밀려서 막 들어간 지하실에 있는 다방, 입구에서 부터 스피커에서 찢어지는듯한 음악소리가 심장을 진동한다. 문을 열고 들어선 실내는 담배연기로 자욱하다. 테이블마다에는 하다만 공부를 하는 듯 메모지에 뭔가를 부지런히 성하고 있는 무리들이 있다. 다른 테이블에서는 지구상 최대로 편안한 자세로 음악을 들으면서 리듬에 몸을 맡긴 청춘들도 보인다. 첫인상은 실내에 짙게 깔려있는 담배연기만큼이나 아리송하고 뿌연 곳이었다.


입구에서 가장 눈에 잘 보이는 맞은편에는 뮤직박스가 있다. 뮤직박스에는 벽면 가득 LP판이 꽂혀있다. 이 구역의 최고 멋쟁이 남자인 DJ가 헤드폰을 귀에서 살짝 내려서 목에 걸치고 숙련된 솜씨로 음반을 찾고 있다. 그리곤 이내 마이크에 대고 손님이 보낸 듯한 메모지를 다소 끌리는 듯한 목소리로 읽고 신청곡을 들려준다. 가끔씩은 손님이 메모지와 함께 보내준 커피나 맛있는 "선물에 감사하다"는 멘트도 던진다. 음악 소리는 고막을 진동하고도 남는다. 대화라는 게 이루어 지질 않을 분위기다. 70~80년대 대학가나 도심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음악다방은 의자부터가 다르다. 대부분이 안락의자다. 오랜 시간 죽치고 아 있어도 허락하겠다는 주인의 의지가 반영된 듯하다. 대학가에서는 공강시간 내내 차 한잔 시키고 죽쳐 앉아 있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 기차나 버스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기다리는 장소이기도 했다. 안락의자에 깊숙이 몸과 마음을 기대고 앉아서 시간을 죽이는 것은 당시 음악다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할 일 없는 청춘들은 다방이 문을 여는 시간 출근을 해서 문을 닫는 시간 퇴근을 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애들을 찾기 위해서는 집보다는 다방이 최적인 친구들이다.

"나를 만나려면 ㅇㅇ 다방으로 오라 "라고 할 정도다.


당시에는 다방에서 찻 심부름을 해주는 여자 종업원들을 "다방 레지"라고 불렀다. 역전이나 어른들이 많이 가는 다방에서는 다방레지의 본연의 역할을 했으나 음악다방인 경우는 좀 다르다.

음악다방에는 대부분 젊은 여자 종업원들이 많았고, 다방을 찾는 이들도 젊은이들이었기에 경우에 따라서는 "어이, 아가씨"라고 부르기보다는 "누나, 언니"라고 불려지기도 했다. 이들은 젊은 세대와 공감을 하면서 음악을 골라주기도, 신청을 해주기도 했다. 워낙 단골들이 많은 음악다방들이었기에 손님들과 통성명을 하고 서로의 이름을 기억하기도 하고 휴대폰이 없던 시절 친구들끼리의 약속을 중개해주기도 했다. 고민하는 청춘들 사이에서는 좋은 어드바이저가 되기도 했다.


갈 곳이 마땅치 않았던 시절 젊은 청춘들이 모이고
소통하는 음악다방은 이들 문화의 산실이었다.    


음악다방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으면서 경험한 유흥문물증의 하나라 그런지 지금도 내 뇌리에는 그 인상이 강력하다. 원래 나는 음악을 많이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골라서 들을 수 있는 여건이 마땅치 않은 시대였다.

 

좋아하는 노래를 라디오에 신청을 하고 기다렸다가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직접 테이프로 녹음을 해서 듣던 시절이다. 그 음악의 유효기간은 테이프가 늘어나서 노래가 제대로 안 나올때 지다.  

나중에는 돈을 주고 동네 레코드사에서 노래를 테이프로 녹음해 오는 방법이 있었다. 1시간짜리 테이프에는 대략 노래 15~20여 곡이 녹음이 가능했다. 듣고 싶은 노래 20여 곡의 목록을 주고 2~3일이 지나면 녹음이 된 테이프를 받아 들을 수 있었다. 후에 길거리 차트가 유행이 되기 바로 전 시점이다.


전축이나 오디오 시스템이 흔치 않던 시절, LP판이 구입할 여건이 안 되던 시절 우리 주변인들이 음악을 듣기 위한 몸부림들이었다. 음악다방은 젊은이들의 이런 고민을 한꺼번에 해결해 주었다. 당시만 해도 흔치 않았던 고급 문화인 커피를 마실 수 있었던 환경에서, 커피 한잔을 시키면 편안한 안락의자에 앉아서, 훌륭한 오디오 시스템을 통해서 자신의 원하는 음악을 맘대로 골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요즘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과 채널이 있다. 예전에는 방금 나온 신곡을 좋아한다면 어쩔 수 없이 20여 곡이 수록된 LP판을 구입해야 한다. 다른 19곡을 안 듣는다 해도 방법은 없다. 그러나 요새는 음원형태로 싱글로 발매를 하기 때문에 훨씬 경제적이고 편하다.  

가볍게 듣기를 원한다면 유튜브를 검색하면 된다. 가지고 다니는 멀티 디지털기기인 휴대폰에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노래를 찾아서 들을 수도 있고, 녹음을 할 수도 있다. 음악만큼이나 이를 향유하는 방법이나 선택도 자유스럽다.   


"내가 음악다방을 소환하는 이유는..."


나는 가끔 마을방송 제작에 대한 강의를 한다. 재작년 강의 때 일이다. 나는 강의를 실습위주로 진행을 한다. 직접 대본을 쓰고 믹서를 조작하면서 마이크 앞에서 방송하는 것을 권장한다. 마을방송은 1인미디어다. 기획에서부터 방송, 편집, 홍보까지 오로지 한 사람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왕년에 모처 음악다방에서 DJ를 좀 했노라고 하는 목소리 좋은 선배분이 있었다.

내가 마을방송을 한다니까 주위에서는 "왕년에 껌 좀 씹어 봤다"는 분들이 많이 나타났다. 왕년에 음악다방에서 판을 좀 뒤집어 봤다는 사람들이다. 너무 많아서 이제는 신뢰성이 안 갈 정도다.

그러나 이선배는 좀 달랐다. 직접 방송을 할 기회를 드렸더니 멘트나 목소리에서 과거나 스멀스멀 나왔다.

실습방송을 녹음해서 내 채널에 올렸더니 꽤 많은 청취자가 다녀갔다.  


난 처음 마을방송을 할 때부터 음악다방을 모델링한 프로그램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문제로 론칭을 연기해 오다 작년 그 선배를 만난 기회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작년에 게스트를 모셔서 3번 방송을 하고 오늘 내가 좋아하는 추억의 노래로 4번째 방송을 녹음했다.


" 여러분의 진한 추억과 함께하는 외도마을방송 라이브소울

음악과 얘기가 있는 방송 월대음악살롱 수다락의 강 PD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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