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창석 Jan 02. 2024

연극이 끝난 후

2023년 배비장전을 보러 다녀오는 길..


휴대폰에 있는 제주시내버스앱을 열어서 경로를 감색해 봤다. 예전에 가본 짐작이 있기에..


"가만있어보자, 집에서 터미널까지 직접 가는 시내버스가 있나??"

요리조리 뒤지다 보니 다행히 직접 가는 버스가 있었다.

40여분이 걸리네, 저녁 7시 공연시간에 맞추어서 가기에 딱 적당한 시간에 지나는 버스도 있었다.   

 

예전 극단 동료가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연극공연이 있어서 오랜만에 아내하고 관람하기로 했다.  

공연일정을 보니 열흘간 장기 공연이다. 이런 장기공연은 제주에서는 꽤 드문 일정이다.

시간대를 맞추다 보니 2일째인 토요일 저녁시간이 좋을 것 같아서 예약을 했다.

공연장은 집에서 30~40분 걸리는 제주시외버스터미널 옆 소극장이다.



그러나 예기치 않고 불어닥친 제주의 겨울날씨가 문제다, 공항을 폐쇄시키고 도로를 마비시킬 정도로 눈보라가 내렸다. 제주의 온섬을 얼어붙게 하고 고립을 시켰다. 도저히 나갈 수 없는 날씨다. 첫날 공연은 아예 일정을 취소할 정도다.  


공연 3일 전부터 시작된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우리 부부는 아예 대중교통을 이용할 생각으로 시간표와 노선을 알아보는 중이었다. 다행히 집에서 공연장까지 직접 가는 시내버스가 있었고, 시간대도 적정했다.


집에서 5분 걸어가서 타면 되고, 도착지에서도 내려서 5분 정도 걸어가면 공연장이다. 공연장소가 소극장으로 주변에 마땅한 주차장이 없는 것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하는 이유다.


316번 버스를 타고 40여 분여를 후 우리는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렸다. 오랜만에 와보는 곳이다. 예전에는 통학과 출퇴근으로 매일 들르던 곳이기도 하다. 한때는 이곳이 제주시내에서 제일 붐비는 곳 중의 하나, 핫스폿이었을 때도 있었다. 이제는 휑하니 찬바람만 부는 외곽지대가 돼 가고 있음에 필요하면 취하고, 필요 없으면 버리는 인간들의 비정함을 느낄 때도 있다.


제설작업으로 차도는 깨끗이 정리가 되어있다. 요새 도로는 차가 우선이다. 정작 제설이 되어야 사람들이 편히 걸어 다닐 수 있는 인도는 눈이 소복이 쌓여있고, 어떤 곳은 까치발을 해야만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눈이 쌓여있다. 낮은 신발은 푹푹 눈에 빠진다. 이따금씩 지나가는 차가 뿌려주는 눈세례도 피해야 한다. 동요에 나오는 바둑이가 뛰어놀 정도의 눈길은 아님에 틀림이 없다.

    



공연장은 버스에서 내려서 멀지 않은 곳, 예전에 예식장이 있던 자리다. 예식장이라 하나 큰길에서는 다소 떨어진 후미진 곳 그러나 사람들이 오가는 버스터미널 옆이라 자가용이 없던 시절에 꽤 호황을 누렸던 곳이라 내가 선명하게 기억을 한다. 예전 기억을 되살려 입구를 찾았으나, 모두 문이 닫혀있고 극장임직한 곳은 안 보인다.


"이상하다. 분명 이쪽인데.." 답답한 마음에 혼자 중얼거리면서 아내의 얼굴을 쳐다봤다.

"이곳이라 했으니 저쪽 안으로 가봅시다.."


건물 막다른 곳, 후문 출입구 임직한 곳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보인다.

저기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에 기웃거려 보니 "세이레 동네극장"이라고 간판이 보인다. 그리고 입구 출입문 한쪽에는 오늘 연극의 포스터가 붙여있다. 맞는 듯싶다.

" 배비장전 "

제주에서는 꽤 알려진 연극이다. 조선시대 양반사회를 대상으로 해학과 풍자를 담은 연극이다. 제주를 무대로 한 연극이기에 제주의 극단들은 종종 의무감으로 한 번씩은 무대에 올렸다. 나도 몇 차례 조금씩은 다른 버전의 배비장전을 본 기억이 있다.


제주에는 몇 개의 극단이 있다. 이미 몇십 년 이상의 연혁을 가진 곳도 있으나 이들이 연극 공연을 할 수 있는 마땅한 소극장 시설은 없다. 가끔씩 올리는 공연은 아트센터나, 문예회관, 설문대여성문화센터에서 공연을 하는데 객석이 많아서 관객을 채우기가 쉽지 않다.


세이레 소극장은 동명의 세이레극단을 운영하는 부부가 이런저런 사연과 꿈을 싣고 마련한 곳이라고 한다. 안을 둘러보니 많은 어려움이 있는 듯 여러 가지 다목적용으로 사용하고 임대를 하는 흔적들이 보인다.


공연시작 7시, 시간은 다 됐으나 극장 안에서 머뭇거리는 사람들은 손을 꼽을 정도다.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보니 대부분 출연진들의 연고로 찾아온 듯한 손님들이다.  


오늘 공연에는 탤런트, 배우, 국회의원의 복잡하고 화려한 이력을 가진 버럭 최종원배우가 출연을 한다.

최배우는 제주 한달살이를 왔다가 제주가 좋아서 여기에서 연극활동을 하고 싶다고 눌러앉았다고 한다. 벌써 입도 4년 차다. 작년에도 최종원 님의 연극을 관람했고, 올해 초에도 대한민국 연극제 개막공연을 본 적이 있다. 오늘까지 3번째다.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꽤 열심히 무대를 누비고 있다.  


오늘 공연은 최종원 님이 제주에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최종원 님이 주축이 된 극단 "돌담"의 창단공연이기 때문이다. 주를 관광의 도시이자 문화의 도시로 만들어보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출발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번 공연의 제작진이나 출연진들은 전국구다. 대학로극장 대표가 연출을 한다. 출연진도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진 연극인들이다. 제주를 넘어서 전국공연, 해외 공연을 생각하면서 준비를 했다는 게 보인다.  


공연시작 시간인 7시, 준비된 130여 석의 자리에는 앞뒤로 조금조금씩 20여 명이 관객이 듬성듬성 모여 않았다. 사실 오늘 공연은 나도 처음 보는 소극장 공연이라 기대가 많다. 무대와 객석과의 거리가 없으니 배우들의 정과 눈빛, 모습들이 일일이 보인다. 배우들과 눈도 마주친다. 옷을 벗어던지면서 열연하는 배비장 역의 친구를 보니 연극을 향한 열정이 보인다.

 

친구는 그러한 열정이 있기에 연극을 붙잡고 수십 년 동안을 버틸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때 현실을 모르고 같이 연극을 해보겠노라고 선언을 하고 동참을 했던 나 자신이 조금은 부끄러워지기도 다.


80여분 동안 현실과 무대를 오가면서 오랜만에 상념에 빠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무대에 불이 켜지고 인사를 하고 나오니 이미 밖은 짙은 어둠이 깔려있었다.


조명이 꺼진 삶의 무대 위를 조심조심 걸어서 버스정류장으로 행했다.

이미 인적이 많이 끊긴 상태였다.

우리 부부는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탔다. 이제 한참을 돌아야 집에 들어갈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터미널의 어묵 맛은 기대를 저버지리 않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