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는 눈들을 전부 치우면서 그 눈들을 버스에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이 발길이 닿는 인도와 차도사이 경계에 밀어 넣었다. 그곳에는 눈들이 아직도 소복하다. 인도에는 눈이 녹으면서 아주 질퍽질퍽하다. 걸어 다니기에는 아주 지저분한 상태다.
도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사람 or 차
참 이상하다.
눈이 오면 사람들이 다니는 곳에 눈을 치워줘야지
왜 차도의 눈만 치우는지? 그리고 왜 치운눈을 사람이 다니는 인도에 쌓아 놓는지?
이럭저럭 까꾸로 돌아가는 세상임에는 크게 틀리지는 않는 것 같다. 힘이 센 놈(차)이 최고다.
버스에서 내린 순간 추위가 밀려온다.
잔뜩 움츠리고 조심조심 걷다가 앞에 터미널이란 간판을 보고 문득 옛 추억이 생각이 났다.
제주시외버스터미널은 내가 20대 시절 늘, 거의 매일 오고 가던 곳이다.
대학교를 다닐 때는 수업이 끝나고, 직장을 다닐 때는 퇴근을 하고 집으로 향할 때 여기서 버스를 탔다. 하루의 끝이라 항상 즐겁게, 홀가분한 마음으로 버스를 타던 곳이다. 젊은 날의 많은 추억이 있는 곳이다, 2층까지 내부의 모습도 눈에 선한 곳이다.
여기서 버스를 타면 편안히 내가 원하는 자리에 앉아서 갈 수가 있다. 서귀포 가는 차표를 끊고, 좌판에서 스포츠신문을 사고 차에 오르면 오늘의 일과가 끝이 나던 시절이다. 겨울철 춥고 입이 궁금할 때는 터미널 한켠 저쪽 구석진 곳에 있는 어묵가게를 가끔 들른다. 100원, 200원하던 어묵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붕어빵은 터미널밖 리어카 포장마차에서 판다. 그러기에 붕어빵보다는 어묵이 더 가깝다. 2층에는 중국집이 있다. 늦은 시간이나 아주 배고픈 날 요기를 하기 위해서는 2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동행할 사람을 기다릴 때는 터미널의 벤치에서 어슬렁 거리기보다는 2층의 다방을 이용한다. 그야말로 터미널에 있는 옛날식 다방이다. 도라지 위스키가 생각나는....
제주도내 이곳저곳으로 갈려는 사람과 짐들이 모이는 곳이라 터미널 안은 언제나 북새통이었다.
그러다 보니 반가운 얼굴, 평생 잊고 살던 친구를 만나서 만남의 장소가 되었던 적도 종종 있다.
" 시간도 여유가 있는데 어묵이나 하나 먹고 갈까?"
" 어묵가게가 어디 있어? 안 보이는데.."
" 터미널 안에 있겠지.. 들어가 봅시다"
나는 터미널 안이 궁금해지는 까닭에 어묵을 핑계로 아내를 설득하고 발길을 돌렸다.
어묵가게를 파는 "추억나들이"는 어묵에 묻어있는 추억을 파는 곳이다.
조심조심 계단을 올라서 들어선 터미널 안은 썰렁하다.
나의 매의 눈으로 한 바퀴 쑤욱 둘러봤다. 드문 드문 사람이 보일뿐 온기가 없다. 사람의 숫자는 손가락을 펴면 될 정도다.
내가 즐겨 찾던 수십 년 전 모습에서 변한 건 별로 없어 보인다. 여기저기 열려있는 가게 하며, 표를 사던 매표소, 버스들이 대기하는 주차장과 탑승구, 스포츠신문을 사전 복권가게 모두 제 모습이다.
예전 터미널 안에서 제일 부티가 나던 약국이 온데간데없다. 대신 그 자리에는 "추억나들이"라는 고풍스러운 표구가 보인다. 아래를 보니 어묵을 팔고 있었다. 약대신 어묵과 삶은 달걀 등 간식거리를 팔고 있는 모양이다. 오가는 사람들의 언 마음을 녹여주는 약이다. 손에 손에 차표를 든 사람들이 버스시간을 기다리면 언 마음을 녹이고 있는 모양이다. 모두가 긴 어묵꼬치를 들고 움츠리고 서성대고 있다.
상가 앞 좌판에는 그릇 가득 어묵들이 끓고 있다. 손님이 다가갈 때마다 주인인 듯한 분이 국자로 따뜻한 어묵국물을 조그만 그릇에 담아서 내주신다. 먹던 그릇을 담아서 마구 국물을 퍼먹는 사람들이 있기에 주인장이 미리 서비스를 하는 모양이다. 일일이 손님을 맞이해 주는 듯해서 기분이 좋아진다.
혼자서 먹으면 비싸질 수도 있으니 가급적 둘이 오시고, 하나는 정이 떨어지니 두 개를 먹으세요
어묵은 꼬치당 보통 1,000원이다. 가끔 700원하는 곳도 있기는 하다. 소비자물가의 영향을 받는 모양이다.
여기 계산방식은 좀 특이하다. 가게 앞에 걸어놓은 특이한 계산방식을 알고 먹어야 한다.
1개에 700원일 때도 있고 500원일 때도 있다.
즉, 1000원에 2개를 먹을 수 있는 방법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2개씩 먹으면 되겠네?" 아내가 한참 뭘 보고 생각을 하더니 계산이 선 듯 답을 내린다.
앞에 있는 어묵꼬치를 잡으니 주인장이 어묵손님임을 알아차린 듯 국자로 끓고 있는 어묵 국물을 그릇에 담아 내주신다. 어묵도 맛이 좋지만 어묵은 따뜻한 국물을 먹어줘야 제맛이 난다.
어묵 한입에 국물 한 입을 먹으니
온몸을 감도는 따스함이 얼굴까지 퍼져서 미소를 짓게 한다.
질퍽질퍽하던 눈길을 걸어오면서 불쾌함과 추워서 움츠렸던 이내 마음이 스르르 녹는다.
" 아! 따뜻해 " 우리 부부는 서로를 보고 웃었다.
내가 기쁘고 우리가 만족하면 행복이다.
우리는 순간 2개씩을 순삭하고 어묵 국물을 한 그릇 더 들이켯다.
" 여기 4개 먹었는데요, 얼마죠? "
" 2000원입니다 "
한 사람이 2개씩 었었으니 1,000원인 셈이다.
우리의 언 몸을 녹이는 데는 1,000원이면 충분했다.
" 이젠 안 추워, 따뜻해 " 아내가 어묵 한 그릇이 마음에 드는 듯 기쁨을 표시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