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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Jan 13. 2024

벙개팅은 나에게 세상얘기를 들려준다..

번개팅을 하고 온 어느 날 이야기

SNS가 우리 사회의 소통과 사람들의 연결 수단으로 자리매김을 한 지금, SNS 기반 위의 벙개는 아직도 유효하다. 며칠 전 아는 분이 페이스북에 벙개 모임을 주선했다. 내용인즉 고기국수에 막걸리 한잔을 하자는 벙개다. 가끔은 그런 자리를 주선하는 분이기에 의심치 않고 참석하겠노라고 댓글을 달았다. 사실은 사석에서 다음 벙개에는 참석하겠노라고 제안했던 적이 있었기에 기다리든 바였다. 

  

번개모임(번개팅, 번개, 벙개, 벙개모임, 벙개팅, 급벙)은 1990년대 초 PC통신 사용자들 사이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인터넷 은어다. 온라인 채팅이나 게시판을 통해 알게 된 사람을 번개처럼 갑자기 계획 없이 만난다는 뜻으로 번개모임, 번개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SNS 시대 다양한 형태의 벙개가 이루어지고 있다. 같은 관심사나 취미를 가진 여러 사람이  모여서 밥도 먹고 카페에 가서 서로의 관심사와 살아가는 일상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이러한 깜짝 만남은 매일 만나는 사교의 범위를 벗어난 불특정 다수인과 만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가끔씩은 우리 사회를 곤란케 하는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어서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벙개 장소는 신제주에 있는 도청 옆 진진국수였다. 보통 관공서 주위에는 맛집들이 많다. 노포도 꽤나 있다. 장소는 퇴직 전 이 근처에 오면 주로 찾던 음식점이 있던 자리였다. 그때는 국수 집이 아니었는데 몇 년 전에 지금의 진진국수로 바뀌었다고 한다. 주위에서는 꽤나 알려진 맛집인 모양이다. 점심시간에는 자리가 없어서 줄을 서야 한다고 한다. 


오늘의 메뉴는 고기국수, 멸고국수, 돔배고기다. 그리고 이 안주면 반드시 한 사발 해줘야 하는 제주 유산균인 제주 막걸리다. 점심시간 공복을 달래고 간단히 먹기에는 고기국수만 한 것이 없다. 진한 육수 국물에 중면을 놓고 돼지고기 몇 점을 고명으로 얹어놓은 고기국수는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제주 토종 메뉴다.


벙개팅의 목적인 고기국수와 돔베고기 그리고 막걸리 한 사발


아직도 제주는 낯선 사람을 가린다. 오랜 역사적 과정에서 만들어진 산물이다. 그래서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을 갑자기 툭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원래 주선자까지 8명이 하기로 했던 자리인데 5명만 참석을 했다. 서로 간에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이 섞여 있는 듯했다. 제주 토박이, 귀향한 반 제주 토막이, 이주민에 하는 일도 각각이다. 자영업, 여행사, 펜션 운영자, 마을활동가에 나이도 제각각이다. 40대에서부터 막 70대에 들어서는 사람까지다.



이런 자리 이주민이 있는 경우 얘기의 첫 꼭지는 제주살이에 대한 이주민의 애환이다.

도저히 제주도 사투리를 맛있게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외국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여행하기도 하고 일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제주에 온 지 10여 년이 됐고 자영업을 하는 60대분이다. 5년 정도 있다가 제주 여행을 안내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한다. 그때는 제주어로 맛갈나게 안내하고 싶은데 그게 안 된다는 하소연이다. 

안내는 제주어로 안 해도 되고, 약간은 서툰 제주어 사용이 오히려 친근감을 줄 수도 있다고 위로를 건네봤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전국 팔도 사투리는 다 되는데 제주어는 안된다고 하소연한다. 요즘 제주를 배경으로 하는 TV 드라마에서만 보더라도 출연자들의 제주어 구사는 한마디로 엉망이다. 듣기가 민망스러울 정도다.  


사실 제주어는 매우 함축적으로 사용을 하고 감정을 많이 녹여서 얘기하기 때문에 제주인의 감정과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쉬 구사가 안되고 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제주에 와서 얼마 안 될 때 얘기란다. 아는 제주 여성분에게 음악회를 같이 갈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권유를 받은 그 여성분은 "게매 예.." 라는 짧은 응답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대답을 했기에 제안를 승낙한 것으로 알고 음악회 현장에서 그 여성분이 나타니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다 바람 맞았다고 한다.

"게매 예"는 제주 사람들이 대답하기 매우 곤란한 상황에 놓였을 때 사용하는 말이다. 조금 더 생각해 보겠는데, 부정에 가까운 의미다. 그 말을 하고 여자분은 잊어 버리고 있었다고 해명을 했다고 한다. 

토박이 제주 관광업계는 손 놓고 앉아 있다가 된통 당하는 꼴이라고 한다. 


한 10여년간 제주라는 공간을 강타했던 제주 이주의 바람이 서서히 식어가고 있다. 며칠 전 뉴스에는 제주 인구가 순감으로 돌아섰다고 한다. 즉 제주에 살러 왔다가 이젠 그만 살겠다고 나가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이주민들의 만들어 놓은 리모델링 농가, 펜션, 민박집, 카페..등등이 줄줄이 매물로 나오고 있다. 

중국인들과 이주민들이 천장 모르고 올려놓은 제주의 부동산 경기는 불황이다. 

근래 제주 관광은 비용이 비싸다는 이유로 기피의 대상이 되고 있다. 같은 비용(?)이면 해외로 간다고 코로나 이후 관광객이 증가하지 않고 있다. 관광업 역시 불황이다. 1박에 3만 원짜리 호텔이 있다고 한다.  


관광객들은 제주에 와서는 제일 비싼 숙박업소에 렌터카, 제일 맛있는 음식을 찾는다. 그럼 비용이 비싸 질 수 밖에 없다.  국내니까, 제주도이기에 저렴할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왔는데 의외의 가격에 난리다. 제주의 음식점과 숙박업소의 가격은 이주민들이 장사를 하면서 이미 서울 등 대도시의 가격으로 만들어 버렸다. 거기에 물류비가 얹어지니 당연히 가격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여행업에 종사하는 분은 그런 얘기를 한다. 해외여행을 가서도 제주에서와 같이 최고급을 찾아서 여하는지 궁금하다고 한다. 그럼 비용이 얼마나 나오는지? 제주 여행비와 비교를 해보셨는지? 

제주는 비싸면 안 되고, 해외는 비싸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저변에 있는 게 아닌지, 어떤 때는 섭섭한 마음이 든다고 하면서 죄 없는 막걸리 잔만 기울인다.


벙개팅은 나의 행동반경 밖 미지의 사람과 만날 수 있기에 두렵기도 하지만 기대되기도 한다. 내가 상상치도 못한 정보와 삶의 현장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다. 물론 정보의 신뢰성이나 정확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생각지도 못했던 이슈 거리를 던져주는 것만 해도 뜻깊은 자리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은데 내가 작고 왜소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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