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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Feb 08. 2024

오랜 기다림 끝에 맛보는 맛 = ?

구정 바로 전 제주민속오일장에서

오일장에서 30분 동안 줄을 서서 기다리니 국밥 한 그릇을 먹을 기회가 왔다.     


요즘은 대형마트가 동네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명절 제수품을 살려고 굳이 오일장을 찾을 필요는 없다. 그래도 민족의 대명절을 준비하면서 전통 재래시장의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오일장 구경을 가기로 했다.


"가보고 살 것 있으면 사고, 없으면 말고 하지 뭐.." 

가벼운 기분으로 아내와 오랜만에 집을 찾은 아들과 함께 오일장으로 향했다. 


대명절을 앞둔 오일장이기에 평일이어도 좀 붐비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대명절보다는 평일이어서 그런지 오일장은 여전했다. 평소의 분위기였다. 


"경제가 어렵다고 하던데, 대명절을 앞두고도 이러니 진짜 어려운 모양이다." 혼자 중얼거렸다.   


오늘은 호떡이 아니다.



시장을 한바퀴 돌았는데 이미 하나로마트에서 대략의 장보기를 끝낸지라 별로 살 게 없었다. 우리 부부의 오일장 탐방의 마지막 코스는 호떡 가게다. 1개의 1,000원 하는 호떡을 종이컵에 받쳐 들고 먹으면서 시장을 나오는 게 오일장 탐방의 종료의식이다. 가다가 멈춘 단골 호떡 가게에는 줄이 여전하다. 


"아들이 호떡보다는 떡볶이를 먹고 싶다는데..?" 호떡 가게와 마주 선 떡볶이 가게 앞에서 아내가 하는 말이다. 

"그래! 떡볶이 먹지 뭐...가격이...헉 1인분에 5,000원.." 나는 메뉴판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가격을 불렀다.  

"떡볶이가 5,000원이라고, 서울보다 비싸? " 서울살이하는 아들이 보더니만 한마디를 거든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국밥을 먹지.." 시간도 그렇고 날씨도 춥길래 나는 새로운 제안을 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떡볶이 대신 국밥 한 그릇을 하기로 했다, 

날씨가 쌀쌀한 게 딱 국밥을 부르는 날씨였다. 마침 시간도 오후 3시를 넘은지라 배꼽시계도 가동 중이었다. 평일 오후 3시가 넘은 오일장 식당들은 말 그대로 한가했다. 가게마다 텅텅 비어 있었다. 우리가 가게를 스캔하는 것을 느꼈는지 일제히 다가오면서 호객행위를 한다.  


"파전 서비스로 드립니다", " 파전 공짜.." 단체로 짬짜미를 한 듯 식당들이 모두 파전 서비스를 외치고 있다.

 

이런 곳에서 입맛에 맞는 식당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단골집이나 몇 번 가본 식당이 있으면 좋으련만 불행히도 나는 없었다. 


오일장에서 우리가 경험한 식당은 딱 한 곳이 있다. 오일장 내에서 제일 유명하고 긴 줄을 서야 하는 식당이다. 그래서 선뜻 가는 게 꺼려지는 곳이기도 하다. 무작정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기에 말이다. 


"거기 가지 뭐, 지난번 먹었던 식당, 그런데 줄을 서야 할 텐데.." 내가 기억을 쫓아서 해줄 수 있는 제안이었다. 아내도 약간의 걱정은 했지만, 처음 온 아들이 좋다기에 우리는 그리로 향했다.



약간 걸어서 오일장 한 귀퉁이에 있는 식당으로.. 


오늘도 식당의 인기는 여전하다. 오후 3시 반을 넘은 시간인데 식당 안은 만원이다. 식당 밖에도 여지없이 꽤 긴 줄이 서있다.  


"저기, 줄봐라...많이 기다려야 하겠는데.."

"기다리지 뭐, 도대체 어떤 맛이길래.." 아내와 아들이 기다린다기에 우리는 제일 뒤로 가서 줄을 이었다. 


가게 안에 테이블에는 거의 다 젊은이들이다. 보통 오일장 국밥집은 나이 드신 분들이 대포를 한 잔씩 하는 장소로 기억하는데 여기는 이상하다. 다 젊은이들이다. 심지어는 젊은 여자들만 온 테이블도 수두룩하다. 


테이블마다에는 파전과 제주 막걸리다. 파전에 막걸리는 비 오는 날 시골 아저씨들의 단골 메뉴다. 

갑자기 내 것을 빼앗긴 기분은 무엇이지?  

" 헉, 소주가 4,000원이고, 제주 막걸리는 3,000원.." 서울에서 5,000원짜리 비싼 술을 먹던 서울촌놈 아들이 놀라는 표정이다. 다른 음식들의 가격도 전체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비닐 막으로 바람막이를 한 가게 안은 모락모락 음식에서 나는 김과 이들을 앞에 놓고 떠들어 대는 사람들의 열기로 뿌옇다. 


테이블 손님들이 일어설 때마다 일종의 쾌감을 느낀다. 고마움을 느낀다. 그 정도로 날씨는 춥다.     


이런 경험이 많은 듯 식당 안의 서빙 시스템은 제대로다

20여 분을 기다렸나, 우리 앞줄 손님들이 좀 줄어들자 미리 주문을 받는다. 

모두 파전을 먹고 있는지라 주메뉴가 파전이다 싶어서 우리도 파전을 먹어보기로 했다. 

아들은 귀향하는 날부터 고기국수를 찾더니 오늘도 고기국수를 먹겠다고 한다. 하긴 날씨도 따뜻한 국물을 부르는 날씨다. 국밥을 추가로 주문하고 10여분을 기다리니 우리가 않을 테이블이 나왔다. 


미리 주문을 한 덕에 자리에 않자 마자 음식은 나온다. 한시가 급하고, 계속 대기 손님들이 많은지라 식당의 주문시스템은 오일장 치고는 제대로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우리도 미리 주문한 국밥, 고기국수, 해물파전이 순서대로 나왔다. 

며칠 전에도 고기국수를 먹었던 아들은 고기국수 한 젓가락을 하더니 감탄한다.


"와, 고기가 엄청 부드러워요, 한번 드셔보세요..."  뽀얀 국물과 노란 면발 위에 얹어진 돼지고긱 몇 점은 화룡점정이다. 

넒다란 나무 쟁반 위에 나오는 파전은 언듯 보기엔 무시무시하다. 이걸 언제 먹지하고 생각할 정도다. 한마디로 푸지게 나온다. 

" 딱, 소주 한 잔이 생각나는데..." 아들이 깊게 한숨을 내면서 아쉬운 듯 소주를 찾는다. 근데 불행히도 아직 먹어서는 안될 이유가 있어서 입 맛만 다시기로 했다. 


안쪽 테이블을 보니 제주에서 제대로 즐기고 있는 관광객인 듯한 여자 세 명이 일어선다. 모두가 허름한 꽃무늬 몸빼를 입었다. 젊음이 좋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제주 유산균인 제주 막걸리 빈 병이 4개가 남아있다.


우리를 뒤따라 들어온 중국 관광객 커플은 5가지 음식을 주문해서 주인장을 놀라게 했다.

" 이거, 너무 많아서 다 먹을 수가 없을 텐데.." 다행이 바로 옆 테이블 젊은 친구들의 도움으로 메뉴를 조정하기도 했다. 


언듯 봐도 20여 개가 족히 넘는 테이블은 계속 빈자리가 없다. 

한 테이블이 비면 순식간에 청소를 하고 다음 손님을 맞이한다.   

밖에는 긴 줄이 아직도 다음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4시가 넘은 애매한 시간 인데 말이다.


"밖에 추운데 손님들이 많이 기다린다. 우리라도 빨리 비켜주자" 

마음씨 고운 아내의 재촉으로 우리는 일어섰다 . 

기다리는데 30분이나 걸렸는데, 먹는데는 30분이면 족했다.  


오랜만에 시끌벅쩍한 분위기 속에서 맛과 분위기를 먹을 수 있었다. 

기다림 끝의 보람이라는 양념 한스푼도 첨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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