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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Mar 23. 2023

60년 제주토박이.. 제주의 본색을 모른다

오랜만에 제주에 대한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오늘은 제주문화원 문화대학 2일 차 수업이 있는 날이다.  

제주문화원은 매년 아래와 같은 목적으로 문화대학을 개설해서 운영한다.

지역주민들에게 양질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평생교육의 계기를 마련하여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도민들에게 제주 향토사 및 전통문화 강의를 통해 향토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넒혀 애향심을 고취시키고자 합니다.




3월부터 10월까지 진행되는 비정규 코스로, 매주 월요일 2시간씩 도내 전문가를 강사로 모셔서 강의를 받는다. 이론 강의뿐만 아니라 매월 1번씩은 종일 코스로 현장답사도 간다. 40명을 선발하는데 선착순 모집이다. 모집이 열리면 1-2일이면 마감이라고 한다. 내가 15기 입학생이니까 올해가 15년째라는 거다. 매년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이라 모집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는 광팬들이 있는 모양이다. 나도 이 과정을 작년에 알았는데 코로나 기간 중 축소 모집이라 신청에 실패한 적이 있다.  올해는 기어코 수강을 해보리라는 생각에 작년 말부터 홈페이지를 매주 접속하면서 체크를 했다. 나를 거부하는 것인지 제주문화원 인터넷 사이트가 몇 달간 도메인 문제로 중단되는 바람에 몇 번 접속하다가 안 돼서 잠시 잊어버리고 지냈다.


나는 서재에서 PC 앞에 앉으면 게임도 하지 않는데 하루 종일이다. 2월 10일 날 PC작업을 하다가 문뜩 생각이 나길래 제주문화원 사이트를 접속했다.

"아니, 이런 문화대학 수강생 모집 안내"가 버젓이 홈페이지 메인을 장식하고 있는 게 아닌가?

큰일 났네 생각을 하면서 공고문을 마우스로 스크롤해서 보니 이번주 월요일부터 선착순 신청이었다. 오늘이 금요일 이미 막차가 지나간 듯했다. 깊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일단 전화를 해보기로 했다.


" 제주문화원이죠?  문화대학 수강신청 하려는 데요?" 기대와 궁금증을 가지고 먼저 말을 꺼냈다.

" 네, 40명 정원이 차서, 마감을 했습니다 " 역시나였다.

" 다른 방법이 없나요? " 혹시나 해서 질문을 던졌다.

" 대기자로 접수는 받고 있습니다. 수강료가 10만 원입니다. 기일 내 납부를 안 하시면 대기자순으로 받고 있거든요.. 가능성에 대해서는 보장을 할 수가 없고요. 그래도 대기자로 몇 분이 신청을 하셨습니다"

" 네, 그럼 일단 대기자 명단에 올려주세요"


도내에서 이런저런 교육이나, 강의가 있을 때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현상이다. 아내한테 자초지종을 얘기하면서 허탈하게 웃었다.  

"왜, 요새는 그렇게 공부를 하려는 사람들이 많아?  대단한 사람들이야.."

그런 넋두리를 하고 운수 좋은 날을 기대하며 잊어버렸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휴대폰이 울렸다.

" 제주문화원인데요.. 문화대학 대기자 명단에 올리셨죠? 순서가 돼서 전화드렸는데요, 접수하실 건가요?"

" 네, 그럼요.. 고맙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나요?"

" 문자를 보내드릴 테니, 지정된 계좌로 수강료 10만 원을 입금해 주시면 등록처리 하겠습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나는 문화대학생이 되었다. 지난주 개강을 하고 오리엔테이션을 했다. 제주문화원은 제주시내에서 가장 유명한 탑동 해변공연장 2층에 있다. 첫날 강의실에 모인 수강생들을 주욱 둘러봤다. 성비는 반반정도 될 것 같고, 나이대는 꽤나 높을 것 같았다. 내가 60대 중반인데 연배가 중간정도 일 듯했다.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고, 수업이 10개월의 장기코스라 강의를 한두 번 들어보고 수강자체를 취소하는 분들이 꽤나 있다고 한다. 아직은 수강생들이 유동적이라 3월 말이나 돼야 수강생들이 확정이 된다고 한다. 그때가 돼야 서로 자기소개를 하면서 정식 오리엔테이션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첫날 딱 한마디 "서로가 계급장을 떼고 오신 거죠?"라는 진행자의 멘트가 궁금증을 가져다준다.   


난 제주에서 나고 자란 60년이 넘은 제주토박이다. 군대생활과 가끔의 다른 외유는 있었지만 대부분의 생활을 제주에서 했다. 제주라는 가치나 의미를 느끼지 못한 채 그냥 그저 무심코 살아온 것 같다.

내가 제주라는 단어와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것은 나이 50대 중반을 넘은 시기였던 것 같다. 30년 동안의 직장생활도 제주에서만 했다. 본사와 타 지역본부 직원들이 제주가 좋다고 여행 오고 난리를 쳤건만 나는 왜 그러는지 이유를 몰랐다. 그 이유 너머 제주가 왜 그렇게 특이하고 동경의 대상이 되는지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2014년~2015년 10개월간의 공부.. 제주를 알게 된 제주 인문학 강좌 시간


그러다 2014년 퇴직을 하고 그때쯤 제주로의 이주 열풍이 거셌다. 광풍이었다. 부동산 값이 천장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인구가 이제 100만이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했었고, 자고 나면 동네방네 펜션, 카페 등등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제주의 가치가 막 오르기 시작한 그때쯤 나는 이번 문화대학과 비슷한 프로그램을 수강한 적이 있다.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에서 주관했던 2014년 "돌하르방, 올레로 마실 나가다"라는 제주인문학 강의였다. 10개월 코스로 제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때도 일주일에 한 번 2~3시간 저녁강의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 강의를 들으면서 알게 된 제주에 대한 진실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너무 사실과 다르게 제주가 설명되고 있고 얘기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제주 향토음식이라는 것, 제주의 문화와 역사라는 게 너무 많이 왜곡되고 변형되어서 제주에서 판매를 하고, 이야기하니까 제주인 것 마냥 포장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토박이인 나조차도 궁금했던 제주의 문화와 풍습에 대한 오해와 궁금증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고 사실 그 자체를 이해하고, 왜 그래야만 했는지 배경을 인식하는 과정이었다. 내 고향인 제주에 대해서 눈과 생각이 트이는 과정이었다.  


그 이후 나는 지금까지 마을활동가를 하고 있다. 행정에서 볼 때는 마을 만들기 코디네이터지만. 마을 내부에서 볼 때는 마을의 정체성을 찾아내고 행정의 사업과 연결시켜서 마을을 잘 살게, 마을공동체를 활성화시키는 일을 한다. 대부분의 경우 마을에 들어가서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얘기하고, 살아 온과정, 살아갈 방법을 얘기한다.  이제 이런 것들은 모아서 기록하는 과정을 하려 한다. 작년부터 시민 아키비스트, 시민 기록자과정 강의를 듣고 공부하고 있다.         


누구나 쉽게 얘기하는 제주.. 제주를 망가 뜨릴 수 있는데..

60년 넘은 토박이가 제주를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난 제주를 공부하고 있다.

요즘은 미디어의 시대라고 한다.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모두 다 그 분야를 전부 알고 있는 것 같이 단정 지어서 얘기를 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그런 분야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분야도 있을 것이다. 사람이 사는 세상, 자연에 인간의 손이 가해져서 만들어지는 문화와 역사는 불투명과 추정의 연속일 것이다. 몇 번을 보고, 어디서 읽었다는 것, 전문가나 누구한테 들었다는 것만으로 별도의 검증 없이 마냥 진실이라고 퍼뜨리는 것은 위험한 발생일 수도 있다.


모든 이들이 가치 있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 특히 관심이 많이 가는 것들이 있다.

이것은 상업적 기술과 연결되기 쉽다.

그래서 본래의 모습이 자칫 왜곡과 변형되면서 진실을 묻어 버리는 경우가 있다.  

본래의 모습이 더욱 가치가 있을 경우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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