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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Feb 28. 2023

누구나 처음 가보는 두 개의 길

"품 안에 자식"이라는 속담이 있다.

[속담] 자식이 어렸을 때는 부모의 뜻을 따르지만 자라서는 제 뜻대로 행동하려 함을 이르는 말.


우리나라에서 자녀들이 학교 다니는 동안은 대부분 부모의 경제적 도움을 받는다. 쉽게 말해서 부모의 품 안에서 부모를 의지하면서 살게 된다. 때문에 이 기간 동안 부모는 자녀에 대한 충고와 간섭, 때로는 통제가 어느 정도 가능하다. 그러나 학교를 졸업하고 경제활동을 하면서부터는 상황이 조금씩 달라진다. 취직을 하면 먼저 경제적인 독립이 이루어진다. 이후 주거가 분리되면서 자녀들은 부모님의 시야에서 점차 멀어지게 된다. 품 안에 자식이 되게 했던 전제가 무너지는 것이다. 이때쯤 자녀들은 본격적인 자기의 목소리를 내면서 부모님의 간섭과 통제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사회에서도 전 보다 많은 관계와 역할을 수행하면서 부모나 가족 간의 관계는 급격히 소원해지게 된다. 부모와 자녀들 간의 관계가 급격한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제는 대등한 인격체로 아니면 사회생활을 접은 부모들보다는 더 사회를 많이 아는 사람으로 부모와의 관계가 역전되기도 한다.



흔히들 부모는 자녀를 무조건적으로 내리사랑을 한다고 한다. 자녀들을 위해서는 물불 안 가리고 모든 것을 다 내준다. 맹목적인 사랑이고 희생이다. 자녀들은 부모의 그런 사랑이 부모와 자식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여긴다.


과연 그럴까?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사랑과 희생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 일가?

부모의 사랑과 희생의 아주 밑바탕에는 내세우지도 않고, 주장하지도 않지만 어떤 뭐가 있지 않을까?


" 우리 자녀들만큼은 나의 이런 희생과 노력을 알고 있겠지?"

" 나중에 모른 척하지는 않겠지? " 이런 생각 정도...

 

자녀들이 자라면서 부모에게서 조금씩 멀어질 때쯤 느끼운 서운한 감정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자녀들이 자라서 다 자기네 짝을 찾아왔을 때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는 감정도 있다. 이 대목에서 어떤 이는 섭섭하다고도 한다. 자녀가 배우자를 만나서, 결혼하고 독립을 하고 분가를 하는 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여러 가지 문제도 얘기하다 보면 남과 같이 명백하게 처리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불분명한 관계의 바탕에는 복잡한 감정선이 깔려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자녀들도 무조건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복잡하고 어려운 감정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것을 효도라는 단어로 통칭해서 얘기를 한 것 같다. 효도는 우리 사회에서 가족관계가 형성되면서부터 최고의 미덕으로 절대시 해왔다. 부모님의 사랑과 자녀들의 효도에 대한 부정은 금기시돼 왔고 감히 계산기를 들이댈 수도 없었다. 그러나 이젠 이러한 가족 간의 사랑에도 계산기에 얹혀보려는 시대가 되는 것 같다.   


장모님은 20~21년 9개월에 걸친 투병 생활 끝에 긴 여행을 떠났는데, 그 투병 생활은 나에게 부모와 자식의 역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장모님은 1남 2녀의 자식을 두었는데 일찍 작고한 장인어른에 이어, 아들과 큰딸도 먼저 보내고, 혼자 있다가 뜻하지 않은 긴 투병 생활을 하게 되었다. 옆에서 간병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마지막 남은 혈족인 아내가 친가에 머물면서 장모님 병간호를 할 수밖에 없었다.


구순을 넘으신 내 어머니는 9남매를 다 출가해서 내보내고 서귀포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다. 어려운 시절, 없는 집 살림에 많은 자식을 낳아서 뒷바라지하느라고 온 청춘 다 보냈다. 그 많던 자식들이 모두 저들의 살 길을 찾아 떠나고 지금은 독거노인이 되었다. 

      

다섯 식구가 어울려 지내던 우리네 동그라미 가족(우리 가족 5명이 원형식탁에 둘러앉은 모습을 보고 막내가 지어낸 우리 가족의 별칭이다)도 뜻하지 않는 이산가족이 되어 버렸다. 딸 둘은 서울에, 아내는 갑작스러운 친정생활로 친가에, 이제 넓다란 집에는 재수한다고 자기 방을 지키는 아들과 나만이 달랑 남았다. 대부분의 시간을 거실에 혼자 앉아 있자니 적막만이 감돈다. 예상치도 못하고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이다. 가끔 모든 식구가 외출하고 혼자 있는 경우도 있는데 그 경우하고는 좀 다른 느낌이다.


만만한 휴대전화만 자꾸 만지면서 화면을 열었다, 닫았다 해본다.

누군가가 전화해주지 않나, 나를 찾아주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럴 때 애들은 아빠가 혼자서 뭐 하는지 궁금하지 않나?

밥은 먹었는지, 컨디션은 어떤지?

걱정돼서 전화해 볼 만도 한데...

휴대폰을 열고 카톡을 보내본다.

조회를 안 한다. 답변이 없다. 바쁜 모양이다..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발코니로 가서 속도를 내면서 휙휙 달려가는 자동차를 본다. 바쁜 모양이다.

나도 저렇게 바쁜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갑자기 혼자 있을 어머니가 생각이 난다. 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반갑게 전화를 받는다. 벨이 2번 정도 울리지도 않았는데, 전화기 저편에서 어머님의 목소리가 나온다.


" 응, 무사, 혼자서 어떵 저녁은 먹어시냐?, 무슨 일이 있니?  "

" 아니우다. 아무 일 없고,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전화 했쑤다"

" 저녁은 드십디가?  뭔 일 있으면 연락할 거니까 걱정 마시고 주무십써"

 

홀로 계신 어머니도 나와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안부를 굉장히 기다렸다는 느낌이다. 전화기 벨이 울리자마자 전화를 받았다. 자식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전화를 기다렸다는 것이 누군가에게 들킨 모양으로 허겁지겁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내 뱉은 거다. 

   

" 밥은 먹었냐고, 혼자 어떻게 지내냐고.."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온다. 

조금 전 내가 자식들의 연락을 애타게 기다리며 전화기를 만지작 거리던 시간,

어머님도 내 연락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나와 같은 그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구나...


왜! 나는 어머니에게 안부전화를 하지 못하면서

내 자식들은 부모인 나에게 안부전화를 해주기를 기다린 거지? 애들은 나를 보면서 배웠을 텐데... 


도둑질하기 위해서 염탐하다가 딱 걸린 심정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식과 부모의 역할을 하게 된다. 처음 가는 길이다. 선택이 아니고 당연시 돌아가는 자연의 순리다. 부모의 역할을 먼저 하고 자식의 역할을 한다면 먼저 공부한 부모의 마음으로 자식의 역할을 한다만, 자식의 역할이 먼저라 부모의 마음을 어떻게 먼저 읽을 수가 없다. 그래서 무엇을 요구하지 않는 부모의 마음을 읽어서 자식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게 어렵다.


우리 부모가 자식으로서 내가 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마도 내가 우리 자식들이 내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누구나 처음 가보는 부모의 길과 자식의 길

단지 순서가 바뀔 뿐이지 같은 길, 서로의 소통과 배려, 사랑이 필요할 뿐이다. 


이제 내 나이 60대 중반,       

이제 환갑을 넘은 나이! 이제 나도 자식을 낳아서 길러보니 부모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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