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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Jun 15. 2023

어르신들의 단골 병원이 생기는 이유가 궁금하다

여름이라 무더위의 계절이다.

요즘 무더위는 젊은 사람도 힘들게 하는데 하물며 나이 드신 어른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집에만 있어도 숨이 턱턱 넘어간다고 한다.


유심재에서 우영팟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나한테서 전화가 왔다.

" 어머니가 요즘 뭘 먹지도 못하고 몸이 막 빠지는 것 닮다, 영양제(수액)라도 한번 맞아야 됨직 허다 "


94세 노모는 힘이 떨어질 때쯤 주기적으로 병원에서 영양제(링거액)를 맞곤 한다. 그런데 움직임이 불편해지면서부터는 혼자 병원을 갈 입장이 못되니 때가 되면 전화가 온다.


" 이번주에 아무 때나 시간 내서 한번 왕 가라 "

" 예, 집에 가서 일정 보고 연락허쿠다 "


누나와 통화가 끝나고 나니 어머니 상태가 궁금했다. 직접 어머니 상태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어머니한테 전화를 했다.


" 몸이 안좋텐 허멍 마씸, 어떤햄쑤과(제주어: 몸이 안좋다면서요, 어떤 상태이신지요) "

자초지종을 얘기한다. 결론은 영양제를 맞고 싶으니 이번주 토요일이라도 와서 병원 픽업을 해달라는 말이었다. 그러겠노라고 했다.



지녁시간 아내는 외출을 하고 집에서 혼자 TV를 보고 있는데, 마음이 영 편치 않다.

내일 일정표를 보니 저녁 6시까지는 시간이 비어있었다.

 

" 내일 서귀포를 갔다 왔으면 하는데, 당신 일정이 어떻게 되지? "

어머니는 움직임이 불편해서 옆에 누가 같이 있어야 하기에 아내에게 동반을 권유하는 질문을 했다.  

" 난 괜찮아요, 그럼 내일 다녀오지 뭐 " 아내가 흔쾌히 수락을 했다.


나이가 들면 어르신들은 늘 다니던 동네병원을 선호한다. 주기적으로 가지 않으면 안달이 날 정도다. 장모님이 그러셨고, 어머님이 그러신다. 장모님이 살아 계실 적 우리는 그 이유가 무척 궁금했다.  


" 무슨 이유일까? " 우리는 장모님이 병원을 다닐 때 몇 번을 따라가 본 적이 있다.

 

일단 병원을 들어서는 순간 간호사 분들이 전부 알아보신다. 접수도 얼굴만 보고는 척척이다.

" 저기 않아계십써 "

" 응, 오늘은 나 물리치료도 받젠 " " 나 오늘은 주사도 맞을 거 " 

이런 식으로 주문을 한다. 완전 VIP다.


진찰실에 들어서면 의사도 마치 동네 삼촌이나 어머니를 대하는 듯 친절하게 대한다.


" 어머니 오랜만이우다. 한동안 안 보연게.. 난 어디 가부러시카부덴 했쑤다.. "

' 저번에 드린 약은 다 먹었쑤과? "

" 요샌 병원에 안왕게 마는, 괜찮으꽈 , 오늘은 어떵허영 마씸 "

(제주어: 요새는 병원에 안오던데, 괜찮으신지요, 오늘은 어떻케 오셨는지요?)


의사는 손으로 진찰을 하면서 부지런히 립서비스를 한다. 차트에 모든 게 기록이 돼있겠지마는 마치 모든 걸 외는 것 같이 의사는 술술 얘기를 한다. 내가 배 아파서 난 자식도 지금의 부모님의 상태를 모르건만 남인 의사라는 양반이 나에 대해서 별거를 다 안다. 건강을 묻고, 요즘 근황을 묻고, 덕담을 한다. 그 순간 부모님은 완전히 무장해제가 된다. 마치 어린애가 어머니에게 응석을 부리면서 여기저기 아프다고 얘기하는 듯, 의사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털어놓는다.


요즘 자식들은 왜 모두 다 바쁜지 모르겠다. 내가 10달 배아파서 난 자식도 집에서 얼굴 한번 보기, 대화한번 해보기가 어렵다. 사람이 그립고 대화가 그립다. 그런데 병원에 오니 얼굴도 보이고 말도 할 수 있는데 더 중요한건 내가 하는말에 리액션도 해주고 들어주기도 한다. 마음치료에 대화까지 척척이다. 오랜만에 사람 얼굴을 보면서 대화를 할 수 있는 데다 아픈 곳까지 치료를 해주는 곳, 이곳이 낙원이다. 그래서 혼자 계시는 어르신들이 동네 단골의원만을 고집하는 모양이다.   



오늘 찾은 병원도 어머니의 오랜 단골이다. 족히 10년은 더 다녔다고 한다.

일반의사가 하는 의원이라 전문시설이 없다. 진료과목도 한정이 되어 있다. 때문에 오래 다니다 보면 자신의 범위를 벗어난 병이 진단되는 경우가 있다.

 

" 친찰해보니까 요건 다른 큰 병원에 가보는 게 조쿠다. 자식들한테 연락허영 큰 병원에 가봅써 "

이런 식이다. 의사들이 혼자 어떻게 치료해 보려다가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 의사는 자신의 범위를 벗어나거나 진단 장비가 없으면 스스로 다른 병원에 가기를 권유한다. 어머니도 그랬고, 누나의 경우도 그랬다. 그러니 어머니는 오랜 단골인 이 병원에 빛을 진 느낌인 모양이다. 가끔씩은 다정한 얘기를 해주던 의사도 생각나고, 어머니 이름을 불러주던 간호사들도 얼굴이 떠오르는 모양이다. 그래서 영양제만은 항상 이 병원에서 맞기를 고집한다.  


병원은 시내 한복판 구도심에 있다. 오래된 건물이라 시설도 썩 좋치는 못하다. 병원에 들어서면 수작업 차트들이 책장에 쌓여있다. 방금 점심시간이 지나선지 손님은 없다.

어머니가 진찰실에 들어서자마자 의사가 어머니를 알아보고는 반긴다. 같이 간 자식들이 미안할 정도다.


" 잘도 오랜만에 왔쑤다. 어떻허연 마씸 ?? "

" 오랜만에 영양제나 맞으카 허연 왔쑤다. 맞아질꺼지 예 "

" 경허주 마씸. 영양제 놔드릴 거고.. 영보난 여름 이때쯤에는 항상 장약을 받아다 먹은 것 닮은디 마씸.."


척척이다. 그래서 단골 병원, 주치의가 필요한 모양이다.

사실 요새 어머니는 "변비다, 설사다" 장이 안 좋아서 컨디션이 전체적으로 나빠진 것이다.

" 예, 경 안 해도 요새 장이 안 좋은 거 닮아신디, 약도 처방해 줍써 "


저녁시간 전화를 드렸다.

며느리가 사다 놓은 재료로 맛있는 것을 해서 먹었다고 아내에게 자랑을 한다. 요즘 탈이 많아서 별로 음식을 안 먹던 어머니다.


"오늘 병원에서 장약도 가져오고 허난 마음놘 저녁핸 먹었쪄. 걱정 말라 "

며칠째 기운이 없던 어머니는 단골 병원에서 마음도 치유받고, 영양제도 맞고, 처방도 받아서 기운이 솟는 모양이다. 다행이다.


" 고맙다. 아프덴 허난 바로완 병원에 데려다주고 "

" 난 큰아들하고 큰며느리만 믿엉 살암쪄, 고맙다이 "


전화기 너머로 아내에게 들려준 어머니의 마음이다.

우리도 마음까지 치료받고 싶은 단골 병원이 생겼다. 그 이름은 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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