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공원을 다녀오는 길
오늘따라 날씨가 스산하다. 그동안 잠잠했던 초겨울의 정취가 물씬 풍겨온다.
늦은 아점을 먹고 아내와 함께 한라산 자락에 있는 납골당인 양지공원으로 향했다.
순탄치 않은 생을 살다가 몇 해 전 고인이 되신 처형을 보러 가는 길이다.
첨단과학단지를 막 벗어나 5.16 도로 길목에 들어서자 싸라기 눈발이 차 앞 유리창에 산산이 뿌려진다.
“ 진짜 초겨울의 날씨인데.. 눈이 올 것도 같다.”
적막감을 깨뜨리기 위해서 무심코 옆자리에 앉은 아내에게 던지는 말이다.
자연산인 날것의 수목이 즐비한 양지공원 입구는 햇빛이 내리는 오뉴월에도 왠지 모르는 적막감을 더해주는 곳이다. 초겨울인 오늘, 이따금 싸라기 눈발까지 날리는 한라산은 말 그대로 황량함과 쓸쓸함을 더해준다.
양지공원에 오는 날,
입구 숲길을 들어설 때가 되면 아내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 슬프기도 하고 외로워 보이기도 한다.
그때쯤이면 나는 적막감을 꺠기 위해서 뭔가 의무적으로 한마디를 던져줘야 한다.
세상없이 의지하고 지내던 오빠와 언니를 생각지도 못했던 이유로 젊은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보냈다.
그날 이후 아내는 생각이 날 때마다 해마다 몇 번씩 이곳을 찾아오곤 한다.
“ 어제 언니가 꿈에 나타난!... ”
“ 꿈에 오빠가 우리 집에 놀러 완! ”
아내가 아침에 일어나면서 종종 던지는 아침 인사다.
그 말이 나올 때면,
아! 오늘은 양지공원엘 다녀와야 하겠구나 하고 직감적으로 느낀다.
언니, 오빠가 꿈속에 나타난다는 것은
우리가 너무 오래 동안 양지공원을 찾지 않아서
언니나 오빠가 "동생아, 보고 싶다"라고 부르는 일종의 신호라고 느끼는 것같다.
하지만 오늘 양지공원 행은 경우가 좀 다르다.
며칠 전 중요한 시험을 보러 서울로 올라간 딸이 평소 친자식처럼 아껴주었던 이모가 꿈에 나타났는데,
이모를 못 보고 올라가게 돼서 안타깝다고 한마디 던져주고 간 게 시작이었다.
" 양지공원가서 이모 보고 가야하는데, 괜히 찝찝한데 " 큰애가 푸념반 희망반 말을 던졌다.
" 걱정마, 아빠랑 같이 가서 잘 말할께 " 아내가 큰애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 거들었다.
사실 우리는 몇 달 동안 처형을 보러 다녀오지 못했기 때문에 언제쯤 갈까 날짜를 고민 중이었다.
그러던 차에 툭 던진 딸의 한마디가 계기가 된 것이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 아니어서 그런지 양지공원 내 주차장은 텅텅 비어 있었다.
우리가 오던 날은 늘 주차장이 북적북적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처형이 있는 제2추모관으로 갔다.
항상! 늘 생전에 그랬듯이 활짝 웃는 모습으로 처형은 우리를 반긴다.
아내는 그동안 못했던 이런저런 얘기, 큰딸이 서울 가면서 남기고 간 얘기를
처형이 마치 옆에서 듣는 듯 두서없이 두리번 두리번 보고를 했다.
"여기와서 사진을 보고나면 이상하게 맘이 편해지는 것 같아" 한참 후 무안한 듯 아내가 던지는 말이다.
" 그럼 좋치, 다행이다."
짧은 만남, 어색한 만남을 뒤로하고 추모관을 나섰다.
집으로 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