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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Jun 19. 2024

70-80년대 지금 매일올레시장의 추억(#2)

2. 그곳에는 다양한 시장들이 있었다.     


 명절 옷을 사러 다니던 상설시장     


우리네 삶이 어려웠던 어린 시절 새 옷을 산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일이다. 그래서 명절옷이라는 말이 생겨났는지도 모르겠다. 1년에 2번(설날과 추석) 명절 때에는 어려워도 옷을 새로 사주었다. 내가 어린 시절 명절옷을 사기 위해서 어머니하고 같이 다니던 단골집이 있는 곳이 상설시장이다.


상설시장은 오일시장이 지금의 솜반천(당시에는 선반내라고 불렀음)으로 옮긴후인 70년대 중반 새로운 건물로 들어섰다. 당시에만 해도 건물 규모가 워낙 커서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매우 궁금해하던 곳이다. 시장통에 어울리지 않는 대형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시장하면 꾀죄죄한 모습과 노천이나 천막에서 보쌈 장사만이 연상되던 시절이다. 그런데 집도 아닌 시장이 크고 멋있는 건물로 들어선다는 것은 당시 충격이었다. 3층 건물에 수도 못 셀 정도의 점포가 성냥갑같이 들어선 채 개장을 했다. 


건물 외벽에는 상설시장이라는 표지가 있어서 상설시장으로 불렀던 것 같다. 시장에서 주로 기억나는 것은 1, 2층에 들어선 옷 가게다. 물론 다른 가게들도 있었겠지만 유독 기억나는 것은 내 명절옷을 살때마다 찾던 어머니의 단골 가게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매일 시장에서 옷을 살 수 있는 곳은 상설시장 밖에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좌)건물외벽에 상설시장이라는 글자가 보인다(출처: 서귀포시청 사진db), (우)현재 건물이 철거되어서 펜스가 쳐진 모습


잡채와 튀김의 맛을 알게 해 준 목화백화점     


상설시장이 생기고 얼마 없어서 바로 옆에 목화백화점이 생겼다. 지금도 그렇지만 제주에는 백화점이 익숙하지 않던 시절이다. 서귀포의 랜드마크인 동명백화점이 들어서고 얼마 없어서 문을 열었다. 목화백화점은 여성 의류와 화장품, 액세서리 가게들이 인기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점포주인 들도 젊은 여성분들이 많았지만, 목화백화점을 찾는 고객 역시 젊은 여성분들이 주류였다. 80년대 초 친구들하고 헤어질 때 막차가 오기 전에 마지막 코스로 목화백화점을 들르는 친구들이 많았다.      


지하에는 저렴한 가격에 여러 가지를 맛볼 수 있는 분식 가게들이 있었다. 당시에는 유행하던 스넥코너라고 부르기도 했다. 삼일빌딩이나, 동명백화점, OK 백화점 앞에는 단일 제품으로 어묵이나 붕어빵, 김밥, 우동을 파는 노점상 가게들은 몇 있었지만, 떡볶이, 잡채, 튀김까지 파는 분식점들은 별로 없었다. 목화백화점 지하에는 분식의 백화점이었다. 아예 지하층 자체가 음식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히 여기서 먹었던 잡채의 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아마 내가 본격적으로 잡채를 좋아하게 됐던 시발점이었을 거다. 어머니는 국수를 나는 잡채와 튀김을 시켜서 먹었다. 내가 제주시로 이사를 하고서는 가끔 서귀포 가는 날 특별한 추억은 어머니와, 누나와 함께 분식 가게를 들리는 일이기도 했다. 지금 살설시장과 목화백화점은 헐려있다. 

무엇을 할려고 이 큰 부지를 매입했고, 기존 건물을 헐었는지 관심이 매우 가는 부분이다.


          

당시 목화백화점의 모습

   얼마전 언론기사에 의하면 목화백화점이 있던 자리에는 대형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4357㎡ 부지에 지상 12층, 지하 2층 건물 2개 동을 건축한다. 연면적은 2만 683㎡ 규모이다. 서귀포 도심권에서는 가장 높은 건축물이다. 지상 3층까지는 근린생활시설과, 판매시설을 조성하고, 4층부터는 공동주택 99세대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2016년에도 그런 계획이 제출된 바 있으나, 2017년 2월 시민들의 생명과 재산 보호 및 불편의 방지 등을 위해 서귀포시에서 건축허가 신청을 불허 처분을 내린 바 있다. 이번에는 건축규모를 130세대에서 99세대로 줄여서 재신청을 했다고 한다. 지난 2016년도와 같이 경관,건축심의위원회에서는 심의 통과를 했고 아직 건축허가라는 절차가 남아있는데 소관부서인 서귀포시의 결정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ㅅ상설시장과 목화백화점이 철거된 현재 상태(다음지도)



다양한 시장의 맛을 알게 해 준 중앙시장


중앙시장은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생겼으니 70년대 후반 정도다. 고등학교 친구가 이 시장 안에 살고 있어서 기억한다. 이 장소는 동네 사람들에게는 참 다사다난했던 장소다.      


첫 기억은 약을 파는(?) 가설형 천막 유랑극단이 오랫동안 있었던 자리다. 

원래는 밭이었는데  집이 하나둘 생기면서 점포가 들어섰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어느 날 객석이 있는 대형 무대가 생겼다. 당시에는 꽤 큰 규모의 공연장이었다. 매일 오전 11시가 넘어갈 때쯤이면 공연이 시작된다. 여자가수들이 흘러간 가요를 메들리로 불러댄다. 중간에 건물 등 장애물이 없을 때라 꽤 거리가 있는 우리 집에서도 선명하게 들렸다. 가수들의 공연 모습이 보일때도 있다. 무심코라지만 매일 같은 노래를 몇 개월 반복해서 듣다 보니 자연 암송이 되었다. 덕택에 나는 웬만한 흘러간 노래는 다 알게 되었다. 한참 공연을 하노라면 관람객들이 모여든다. 공연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뭔가를 선전과 함께 판매가 시작된다. 이런 모습은 예전 시장에서는 꽤 익숙한 모습이다.        


이동 극단이 가고 얼마 없어서 다시 천막이 세워졌다. 국산품애용이라는 지금 말하면 빙고 게임으로 경품을 주는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다. 이 빙고 게임은 그 시대 사람들이라면 다 기억할 거다. 시장만 서면 생기는 코너였으니 말이다. 천막을 치고 테이블을 두른 다음 마이크로 국산품애용을 외치면서 손님을 끌어모은다. 사람들이 돈을 내면 숫자가 적힌 조그만 종이를 준다. 주최자가 불러주는 숫자가 있으면 동그라미를 쳐서 가로, 세로로 몇 개 이상 맞추면 경품을 주었던 게임이다. 지금 흔히들 하는 빙고 게임이다. 경품은 주로 생활필수품인 소쿠리나 간단한 생필품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상품이 국산품이라서 국산품 애용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군사정권에 의해서 국산품 애용 운동이 한참이었던 때다.    

   

왔다가는 뜨내기 상인들이 떠나고 그 자리에 들어선 게 중앙시장이다. 좀 특이한 형태였다. 가운데는 천장이 개방된 시장을 두고 사방으로 돌아가면서 점포를 지었다. 점포에서도 다양한 물건을 파는 가게도 있었고,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도 있었다. 친구네도 그런 점포에 살았다. 가운데에는 일시적으로나마 주로 수산물을 팔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주변이 너무 복잡하게 상가와 점포들이 들어차 있어서 구분하기가 힘들 정도다.     

다음지도에 표시한 옛 중앙시장


다음 얘기는 3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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