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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Mar 05. 2023

저지문화예술인촌의 백서향을 찾아서

오랜만에 저지예술인마을을 다녀왔다.

한 20여 년 전 제주에 생소한 예술인마을을 조성한다길래 직장일로 몇 번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 후로는 이 근처를 승용차로 지나치면서 변해가는 모습을 여러 번 보기는 했었다. 생각하는 정원이나 방림원도 이곳에 있어서 곁가지로 들른 적은 있었는데 본격적인 방문은 굉장히 오랜만인 것 같다.    


오늘은 같이 활동하는 동료가 저지리 곶자왈 백서향 향기축제를 기획, 진행한다고 연락을 주었기에 겸사겸사 들른 길이다. 아침 11시에 행사가 시작이라 일찍 일어나서 움직였다. 네비를 찍으니까 40분 코스다. 10시 30분 동료들과 행사장 인근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모르는 길이라 좀 서두르는 게 좋을 듯해서 9시 반 승용차로 집에서 출발을 했다. 만나기로 한 장소가 처음 가보는 곳이라 일단 비에 의존하기로 했다. 내비게이션은 낯선 중산간 도로를 안내해 준다. 하귀에서 소길로 올라가서 서쪽으로 난 길을 열심히 달렸다. 개통된 지 오래되지 않은 도로라 평소에도 교통량이 많지는 않은 길이다. 막힘없이 쭉 달렸다. 당초 출발할 때 내비게이션은 도착시간을 10시 25분으로 예상했는데 갈수록 짧아진다. 5분 정도는 단축할 수 있을 듯하다. 납읍, 상가, 어음, 금악을 거쳐서 저지예술인 마을 입구 생각하는 정원과 방림원을 지났다.


저지문화예술인촌이라고 멋들어진 안내판이 보인다.  

"아니 이렇게 변했다고?" 처음 풍기는 모습에 놀랐다.

예전에 내가 알고 있던 그 마을이 아니다. 마을 가운데로 큰 도로가 나 있고, 양옆에는 현대미술관, 창렬미술관, 김흥수 아뜰리에, 공공수장고 등등 이 나지막한 모습으로 그러나 여유 있고 넉넉한 모습으로 들어서 있다. 길가는 깨끗하게 정리되 있고, 가로수며 건물들이 모두 정갈하게 보인다.  


"와우! 멋진데, 나중에 미술관 투어를  좋아하는 애들이 오면 꼭 한번 같이 와야겠다"

       

혼자 중얼거리면서 약속 장소인 제주영상문화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지어진 지 얼마 안 되는 이곳은 제주영상문화상업진흥원에서 영상제작을 위한 세트장 겸 스튜디오로 지었다고 한다.


주자창에 파킹을 했다. 맞은편이 행사장이라고 쓰여 있었고, 주차 안내원이 부지런히 루라기를 불어댄다. 하나, 둘.. 동행인들이 도착을 하고 안내원이 안내를 따라 들어갔다. 곶자왈 숲길이었다. 100m여를 지나니 꽤 넓은 잔디밭에 오늘의 메인 행사장이 나왔다. 메인부대를 가운데 두고, 한 30여 개의 몽골천막에 체험부스들이 둥그렇게 들어서있다. 깔끔하고 정리된 모습이 오늘의 행사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공식적인 행사는 시작이 안된 상태였다. 등록을 하고 오늘의 주제인 백서향 향기가 있는 곶자왈을 먼저 가보기로 했다. 일행 중 한 명이 이 지역 길을 빠삭하게 안다고 주장을 해서 따라나섰다. 난 사실 백서향이 꽃인지 나무인지 향기가 어떤 것인지도 모른다.


행사장에서 나와 마을의 큰길인 저지 12길을 따라 한라산 방향으로 2km여를 걸었다. 아침에 올 때는 승용차로 달려왔던 길이다. 길가에 멋들어진 카페로 기웃거려 보고, 미술관도 쳐 보면서, 우리는 느림의 미학을 느끼면서 걸었다. 날씨도 엄청 따뜻하다.


" 윽, 이건 무슨 냄새지?  처음부터 나던데. 이거 혹시 축산분뇨 냄새 아닌가?" 냄새에 민감한 내가 말했다.

" 나도 아까부터 무슨 냄새가 남쑤다, 돈사 냄새 같은데" 일행 중 한 명이 냄새를 맡은 듯 거들었다.

" 그럼, 이거 아마 옆동네 금악에 있는 양돈장에서 나는 냄새일거우다. 중간중간 바람 타고 넘어오는 것 담쑤" 길 안내를 자처했던 동료가 얘기를 한다.

" 이거, 많은 예산을 들여서 멋들어지게 문화예술인마을이라고 만들어 놨는데, 분뇨 냄새가 난다고!!!"


우왕좌왕,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일부는 처음 만난 사이라 인사하고 얘기하면서 한참을 걸었다. 방림원 앞 큰길을 넘어서니 마을모습이 종전과는 아주 다르다. 한라산 방향을 향해서 밭사이로 난 길을 걸었다. 길양옆에는 농사를 짓은 밭들과, 앙상한 가지만 남은 가시덩굴과 소나무가 보인다. 이 마을의 예전모습이었다고 한다.

길은 가다 보니 밭에서 봄동배추를 수확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제 봄이 멀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것 같다.


2km여를 족히 걸었다. 이제 본격적인 저지 곶자왈에 들어서는 것 같다. 올레 14-1코스가 지나는 곳이다. 중간중간에 올레길 안내 리본이 나부낀다.


저지 곶자왈은 인근 도너리오름에서 31,000년 전 흐른 용암으로 형성된 상록수림지역으로 종가시나무, 개가시나무, 예덕나무 등과 양치류, 덩굴식물들이 우거져 약 1,000여 종의 생물이 서식한다고 한다. 생물다양성이 높아 저지곶자왈의 일부가 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 협력(전이) 구역에 포함되어 있다.


한참을 올라가 보니 입구에 "저지곶자왈 연구시험림"이란 안내판이 있다. 희귀 동식물이 많아서 국립산림과학원에서 별도로 관리하는 모양이다. 곶자왈을 훼손하지 못하게 아예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임도도 개설해 놓았다. 길을 따라가니 편하게 다닐 수 있어서 좋았다. 임도옆에는 길을 만들면서 나온 돌들을 쌓아놓은 머들들이 군데군데 있다. 숲길 사이사이 돌담들도 보인다. 농사도 지을 수 없는 땅인데 무슨 경계를 표시하기 위하여 만든 돌담인지 궁금해지기도 하다. 중간중간 만나는 소나무들은 거대함을 자랑한다. 겨울 모습을 다 드러낸 앙상한 가지만으로도 충분한 멋들어짐을 자랑하는 이름 모를 나무들도 있다. 곶자왈의 특징인 가시덩굴도 나쁘지만은 않다.


그런데 저지곶자왈의 군락지라고 하는 백서향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가끔 눈을 크게 뜨고 가시덩굴 속을 쳐다봐야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줄 정도다. 군락지라고는 하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 정도의 군락지는 아니고, 단지 다른 데보다 많다는 뜻으로 보면 된다고 안내를 해준다.  


시간상 10,000보를 걷는 선에서 돌아오기로 했다. 곶자왈의 특성이 다 비슷한 모양이라 다소 지루함도 잇는 듯하다. 우리는 곶자왈 중간에서 다시 마을로 향했다. 내려오는 길 아직도 수확을 포기한 듯한 감귤들이 보인다. 밭담들이 다른 곳 하고는 좀 다르다. 울퉁불퉁함이 더 날카롭고, 작고, 못생겼다. 이런 돌들의 면을 맞춰서 무너지지 않을 밭담으로 쌓았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좀 더 걸으니 돌담안 파란 보리밭이 나온다.

 


꽤 걸었다. 동료들이 카페가 있는 서림미술관 앞 벤치에 푹 쳐져있다. 지금 시간이 12시가 훨씬 넘었다. 지치기도 하고 배고프기도 한 모양이다. 얘기를 들어보니 어떤 형태로든 에너지 보충과 정리가 필요하다고 한다. 일부는 시간상 여기서 다른 일정으로 가야 할 사람도 생겼다. 미술관으로 들어가서 작품도 보고 차 한잔을 하면서 오늘 일정을 정리하기로 했다. 오늘은 미술작품이 있는 곳에서의 차 한잔이다.


따뜻한 차 한잔과 정담을 뒤로하고, 이제 온길을 돌아 집으로 향했다.

오늘의 일정은 다소 낯선 곳을 갔으나, 돌아오는 길은 예상외로 편하다.

가장 제주다운곳에 개발이라는 덧칠을 했으나, 그래도 고향의 포근함과 제주다움을 같이 느낄 수 있는 곳이라서 그런 것 같다.


오는 길 우리 가족 단톡인 동그라미가족에 일정을 하나 추가했다.


"다음 제주에 올 때는 저지문화예술인촌에 가서 미술관 투어 하자고"

장남 왈 " 짱조아유"  

딸들은 "쪼아 쪼아"


* 제주어 사전 : 

  - 냄새일거우다 : "거우다"는 "겁니다"라는 추측성 얘기로 문장의 끝에 자주 사용함 . "냄새일겁니다"

  - 담쑤다 : 쑤다는 제주어에서 문장의 끝에 사용하는 존칭어.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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