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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Feb 21. 2023

인간은 자연을 복원할 수 있을까?

오랜만에 내가 사는 동네 한 바퀴를 걸었다.


내가 사는 동네는 제주시 외도동이다. 특별자치도가 되기 전 제주시의 서쪽 끝 마을로 공항에서 애월로 가는 길목이다. 교통상황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한데, 공항에서는 10분~20분, 제주의 강남이라는 신제주에서는 10분 내외면  도착할 수 있는 마을이다.  


원래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우리 마을도 큰 변화를 겪었다. 마을의 터전이었던 농지를 밀어내고 대대적인 택지로 개발하는 경험, 현대화의 경험이다.


1999년부터 택지개발을 하고 2001년 대단위 공동주택 입주가 시작되었다.

나도 이때 공동주택으로 이사를 왔다. 택지개발하고 첫 입주민이다. 이제 20년이 넘었다.

IMF라는 홍역을 치르고 난 후라서 그런지 이사 온 지 10여 년간은 마을에 별로 달라지는 게 없었다.

휑하니 파헤쳐진 여기저기에 건물 몇 채만 들어서있고, 짓다만 건물, 파다만 토지, 이곳저곳 정리 안된 건설자재들이 흩어져 있는 어쩜 으시시한 동네이기도 했다.


2010년을 지나면서 마을은 아주 빠르게 변했다.

제주로의 거센 이주 광풍이 불었다. 중국과 타지자본에 의한 개발과 건설의 붐이 불었다. 우리 마을도 흔한 표현으로 자고 나면 동네 이곳저곳에 우뚝하니 나홀로 아파트가 들어섰다. 돌아다니다 보면 어제 공터였는데 오늘은 굴착기가 땅을 파고 있을 정도였다.


사실 이 동네는 제주공항으로 이, 착륙하는 비행기가 통과하는 지역이라서 주거환경이 그리 쾌적한 편은 아니다. 그러나 이 비행기 소음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선호할 수 있는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는 공항에 인접한 지역으로 공항을 자주 이용하는 이주민들이 선호하는 지역이다. 10분 내외의 거리다.

둘째는 이주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애월읍을 갈려면 공항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이자, 애월읍과 붙어있는 마을이다. 공항 -> 외도동 -> 애월읍이다.

셋째는 생활의 편리함이다. 제주의 최대 상권인 신제주를 10분이면 갈 수 있다.

넷째는 이주민들이 선호하는 바다가 있다. 외도바당, 내도바당, 연대바당이 해안선을 직접 끼고 있다. 덤으로 마을을 가로지르는 용천수 하천인 월대천이 있다.

마지막으로는 이런 편리함을 갖추었는데도 신제주 보다는 집값이 저렴하다는 것이다.


2010년을 넘어서고 건물과 상가가 빽빽하게 들어서면서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다. 통계를 보면 몇 년 전 만 해도 제주시내에서도 인구가 가장 많이 증가하는 마을이었다. 인구의 평균 연령이 30대로 가장 젊고, 노인연령 인구가 10% 정도로 가장 적은 마을 중의 하나다. 이제는 전형적인 도농복합도시이다.


나는 가끔 무료하거나 바깥공기가 그리울 때 그냥 나선다.

지금까지 제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지만 항상 제주의 공기는 새로움을 나에게 가져다준다.  

 

밤이면 밤의 운치가, 낮이면 낮의 풍광이 있기에 지루하지만은 않다.

바람이 그리우면 바닷가까지, 들녘의 풍요로운 모습이 보고 싶으면 올레코스를 따라 무수천까지 걷는다.  

사시사철 용천수 흐르는 월대천을 찾아 징검다리를 건너 보는 것도 쉽게 맛볼 수 없는 경험이다.


오늘은 마을 번화가를 지나서 바닷가로 향했다.

1.5KM 정도 걸어 내려오면 바닷가를 만날 수 있다. 오랜만에 찾은 연대포구는 겨울이라 그런지 꽤나 춥다. 여름철 발 디딜 틈 없이  북쩍이던 연대등대의 강태공들도 보이지 않는다. 여름을 기약하나 보다.

여기서 외도바닷가까지는 바다로 돌출되 있는 해안산책로 테크를 따라 걸어야 한다. 오늘은 겨울바람이 차서 한산하다.


자전거를 타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있나? 입구에는 자전거 통행금지 안내문과 함께 통행방지턱이 돼있다. 처음 보는 모습이다.


불편하다. 입구를 씩씩하게 달려갈 수도 있고, 친구하고 같이 얘기하면서 나란히 걸어갈 수도 있는데, 이젠 몸을 있는 틀에 맞추어서 비비 꼬면서 들어가야 하는 게 불편하다.

불쾌하다.  해안에 테크로 만들어 놓은 산책로에 어느 누가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는 말인가? 불쾌하다.


나무 테크로된 해안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진짜 겨울 바닷바람은 차다. 얼굴이 얼얼하다.

그래도 저 멀리 도두봉, 사라봉까지 시원하게 탁 트인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다. 파란 바다도 좋다.  

SNS 인기를 타고 있는 카페들로 한산하다. 여름이면 노천카페들이 불야성을 이루었었는데..


주섬 주섬 걷다 보니 월대천이다. 곳은 무수천(광령천)의 하류지역으로 여름에는 축제가 열린다.

월대천은 옛날 선인들이 노송사이로 보이는 달이 아름답다 하여 붙인 정자 이름이다.

음주가무에 시 한수를 띄어 보내는 그런 낭만이 있는 곳이다.  

지금도 300년이 된 노송들이 휘늘어진 가지를 월대천에 담근 채 그날의 비밀을 간직하고 싶은 듯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곳은 광령천, 어시천, 도근천과 바닷가가 만나는 지역, 즉 담수와 해수가 직접 만나는 드문 곳이다.

제주도 하천은 대부분 건천이다. 그러나 월대천은 주위에 많은 용천수가 있어서 사시사철 물이 흐른다.

물이 좋아서 상수원으로 사용을 한다. 하류에는 은어, 장어도 꽤 많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상류지역의 개발과 오염으로 많은 홍역을 앓고 있다. 주위의 용천수들은 대부분 말라가고 있다. 우리의 생명수인 상수원도 고갈되고 있다. 월대천이 대대적인 아픔을 겪고 있다.


2014년 월대천의 원형을 보존한다고 많은 돈을 들여서 외도수원지 생태복원사업을 했다.

은어가 다닐 수 있는 어도도 만들고 주위에 생태공원도 만들었다. 깔끔하고 깨끗하게 정리를 해버렸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가 좋은데.. 계획은 좋았으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나 보다. 이후 더 망가져만 가고 있다.


오늘도 주위는 온통 공사 중이다.

" oo 개발, OO 복원, XX 현대화, XX 정비사업,....."

" 참 명분도 좋다. !" 

과연 인간은 자연을 복원할 수 있을까? 그런 자격과 능력이 있을까? 

  

올레길옆 생태복원사업으로  만든 공원에는 오라는 사람은 없고 견공들만 보인다

저멀리 물끄러미 인간이 만들어 가는 작품그저 지켜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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