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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Feb 20. 2023

팽나무의 추억이 사라지고 있는 제주

유심재로 들어가는 올레길 어귀에는 수명을 알 수 없는 커다란 팽나무(퐁낭)가 있다.

퐁낭 아래에는 커다란 팡돌(댓돌)이 있다, 예전에는 이 팡돌이 마을 사람들의 쉼터이자 대화의 공간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이 팡돌 위에 방부목을 씌우고 도색을 해서 사람들이 앉기 좋은 나무 평상으로 만들어 놓았다.



지금은 추운 계절이라 사람이 없다.

햇볕이 따뜻한 날이면 삼삼오오 동네 삼촌이 모여서 얘기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더운 여름철에는 세상 걱정 없는 폼으로 대자로 누워서 낮잠을 즐기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유심정을 찾는 날, 특히 봄 햇빛이 따스한 날에 아내는 유난히 걱정을 많이 한다.

" 오늘도 팽나무 아래 삼촌들이 모여 있을 건데, 지나가려면 신경이 쓰여"

동네 삼촌들이 모여서 이 얘기 저 얘기를 하고, 새로운 뉴스를 만들어 내는 곳이기에 그냥 무심코 지나는 것이 편안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아내는 이 동네 토박이로 여기서 나고 자랐다.  

집안에 형제자매들이 이 동네의 화제의 중심에 있던 적도 있었기에 동네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오랜만이우다, 건강들 하시꽈?" 입구에 지날 때쯤 아내가 인사를 하면서 던지는 말이다.

"어, ㅇㅇ 구나, OO 동생, 기여, 너도 잘 살암시냐, 어머니 보래 왐꾸나?"

늘 이런 대화로 통과의례를 거쳐서 집으로 발길을 옮긴다.


제주의 마을에는 오래된 팽나무가 있는 곳이 많다.   

몇 가구마다, 올레 마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올레길 어귀(입구)에는 팽나무가 있다.  

팽나무 밑에는 동네 사람 여럿이 앉을 수 있고, 간단한 게 음식도 먹을 수 있는 평평한 팡돌이 있다.

이곳은 동네 삼촌들의 쉼터이자 대화의 공간이다.

무료한 날, 심심한 날, 혼자 나와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하나 둘 모여든다.

동네 누구네집 혼사 얘기, 자식들이 커가는 얘기, 누구 집 소가 송아지를 난 얘기 등등

동네의 모든 사람, 모든 것들의 이야기 소재가 된다.

이 팡돌이 신문사이자, 방송국, 작가의 창작실, 법원, 경찰이 된다.



마을마다의 어귀에 있는 팽나무는 마을의 아픔과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상징이자 역사다.

마을 설촌의 역사이자, 마을공동체 문화의 중심이라고 한다.

수백 년의 긴 세월을 마을 어귀에서 버텨낸 팽나무는  

제주인들이 힘들었던 시절 배고픔을 같이 했고,

타지인들에 의한 수탈과 착취의 시절,

몽고와 일제의 지배에 의한 아픈 시절,

4.3의 총알을 맞으면서도 묵묵히 그 자리에서 마을과 동네 삼촌들을 지켜준 버팀목이었다.  

그들의 삶의 역사와 스토리를 고이 간직하고 있다.


제주의 주요 당())을 지키는 신목(神木) 대부분이 팽나무다.

제주 사람들이 팽나무를 얼마나 신성시함인가?



산림청의 자료에 의하면 제주의 보호수는 155그루라고 한다.

그중에 팽나무가 99그루다. 반을 훌쩍 넘는 숫자다.

보통은 수백 년의 수령을 가졌다.   

그중에서도 애월읍 상가리에 있는 팽나무는 수령이 무려 1000년을 넘는다고 한다.


1000년이 넘었다면 언제 자리를 잡은 나무라는 이야기 인가?




제주 마을의 상징이었던 팽나무들이 언제부터인가 슬슬 사라지고 있다.

시작은 도로확장과 개발이었다.  

처음에는 마을의 상징이자 역사인데 어떻게 제거를 하느냐고 고민했는데,

선례가 있어서 이제는 쉬운 모양이다.   


얼마나 인기가 좋은지, 제주 팽나무는 최근 육지부에 조경용으로 고가에 팔려 나가고 있기도 하다.

제법 자란 것은 수백만 원에 거래되기도 한다고 한다.


이젠 그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어 농촌 마을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최근에는 보호수로 지정되지 않는 팽나무는 아주 공개적으로 매매를 하는 모양이다.


얼마 전 올레길을 걷다가 본 팽나무의 모습이다.

헐!! 올레길옆 과수원을 끼고 있는 팽나무에 "팽나무 삽니다"라는 팻말이 걸려있었다.


언젠가 이 팻말이 유심재 입구 팽나무에 걸릴날도 있겠구나 !!


천년을 넘게 제주의 마을과 사람들이 믿고 보호하던 팽나무들

마을의 역사와 문화, 한을 간직하고 있는 퐁낭들이 사라지고 있다.


‘마을의 혼(魂)"과 "공동체문화"가 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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