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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Feb 09. 2023

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을 그들이 싫다고 한다

내 마음이 편히 쉴 수 있는 곳 휴심재(休心齎)라 부르는 나의 스위트홈은 7층이다. 

한라산을 향해서 남향으로 자리 잡은 집은 앞이 저지대라 전망이 훤하다. 

거실에 누워만 있어도 한라산과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갸울날, 눈이 그치고 하늘이 맑은 날이면 

발코니의 창틀이 만들어낸 거대한 캔버스에는 눈 덮인 한라산은이 한 폭의 동양화로 다가온다. 



우리 가족이 이곳 외도동으로 이사 온 건 2001년,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다.


당시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택지개발이 되고 동네에 건물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전이다. 9동 1,000세대가 조금 안 되는 우리 아파트는 홀수동만 입주가 가능했다. 아직 건물이  준공되지 않아서다. 홀수동마저도 분양이 안되다 보니 입주도 듬성듬성 이루어졌고, 단지 내 형편도 말이 아니었다. 밤이 되면 이 건지 저 건지 구별이 안 되는 말 그대로 공사현장, 아수라장이었다.


어쩌다 정시 퇴근하고 집에 오는 날, 저녁에 여유가 있어도 동네마실을 나갈 수가 없다. 갈 데도 없고 갈 수도 없었다. 깜깜한 밤 거실에 서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한라산 방향을 보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밖에는 짙은 어둠이라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 개구리와 맹꽁이 우는 소리가 유난히도 맑고 크게 들리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한라산 방향으로는 불빛을 낼 건물이나 집들이 아예 없다. 밭들과 과수원들만이 있고, 이곳을 넘어서면 사람들이 별로 거주하지 않는 중산간 마을이기 때문이다. 이따금 차량의 불빛인지, 과수원집의 불빛인지 하나 둘 작은 불빛이 전부였다. 말 그대로 몇 개 정도, 손가락을 폈다 오므리면 될 정도의 숫자였다. 동화 속 산골 오두막집에서 나오는 희미한 몇 개의 등불이라는 표현이 어울일 정도다.



이제 20년이 흘렀다. 요새는 거실에서 멀리 한라산을 쳐다보는 날이 손꼽을 정도다. 내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늘 볼 수 있는 것이어서 식상한 것 같기도 하다. 또 막상 본다고 해도 미세먼지나 구름 때문에 한라산이나 오름능선이 보이지 않는 날이 많기 때문에 이제는 잊고 사는 날이 많다.  




이따금 눈비가 내린 다음날은 하느님도 미안한지.  쾌청하고 선명하게 하늘을 보여 주는 날이 있다. 얼마 전 눈 때문에 제주가 고립되고 제주공항이 난리 나던 때가 있었다. 그 다음날 하늘이 모처럼 쾌청했다. 거실에서 보이는 눈 덮인 한라산이 장관이길래 카메라에 담았다. 오랜만에 보는 한라산의 네이티브 한 모습이다.

혼자 보기가 아까워 SNS에 올렸다. 난 포스팅을 별로 하지 않는데 이런 날은 종종 게시글을 남기기도 한다. 이곳저곳에서 "좋아요"가 난리다. 한라산의 사진도 좋고, 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자네 집도 좋다고. 사실 요새는 미세먼지다 뭐다 해서 한라산의 자태를 이렇게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날이 많지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사진을 촬영하면 PC로 옮겨서 날짜하고 장소로 저장을 해둔다.
훗날 자료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와우.. 이렇게 많이 변했어?  엄청 건물들이 들어서고 개발이 된 모양이네.."


사진을 PC에 옮기면서 사진을 확대해 본 순간 나는 놀랐다. 멀리 한라산 앞자락(애월읍 광령리 인근)으로 보이는 지역이 너무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수목과 과수원이 있어서 녹색의 편안함을 주던 곳곳에 길고 높다란 건물이, 형형색색 크고 작은 집들이 여기저기 꽤나 보인다. 길게 벗은 도로 위로는 자동차가 달리는 모습이 보인다. 이러한 모습은 여기서 볼 때 고지대라 할 수 있는 평화로 위까지 넓게 산재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밤이 되면 보이는 밝게 보이는 빛줄기가 저것 때문이었구나. 20년 동안 슬금슬금 변하다 보니 나는 느끼지를 못했던 것 같다.   


제주가 국제자유도시라는 비전을 내걸고 달린 지 20여 년의 세월이 지났다. 상전벽해다.  예전 제주가 아니다. 이제 어디를 가나 예전 제주의 모습을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아무리 중산간 마을, 농촌 속을 찾아간다 해도 이주민, 펜션, 카페가 없는 곳이 없다. 제주다운 제주가 싫다고 그들이 살던 모습을 그대로 만들어 놓았다. 제주 토박이들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곳까지 개발의 흔적들은 침투해 있다.     


제주를 찾는 사람이면 누구나 제주의 깨끗한 바다와 눈길만 돌리면 바로 볼 수 있는 한라산과 오름을 최고로 꼽는다. 파랑과 초록의 하모니를 보고 싶어 한다. 여기 더해서 예전에 어디서 잃어버린 듯한 고향의 냄새와 맛을 찾는다. 이제 제주다움이라고 한다.   


그러나 제주는  20여 년 전 국제자유도시를 한다고 투자유치와 개발을 하면서 제주다움을 포기했다. 제주다움이 있던 곳은 모두 개발과 자본으로 덧칠을 해 버렸다. 이제 제주다움은 모두의 것이 아닌 개발과 자본의 소유가 돼버렸다.       


제주다움을 포기하는 정책은 제주도(?)가 만들었다. 오색 찬란한 꿈을 꾸면서 말이다.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당초 계획대로 이루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많은 부분이 실행이 되었다. 그 중심에는 중국을 비롯한 외국자본과 육지부의 대형자본, 이주민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제 길가에서 만난 관광객, 공항에서 마주친 방문객 등 제주를 찾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제주다움이 없어졌다고,

제주에 볼 것이 없어져간다고, 

수도권의 대도시 주변과 다를 게 없다고 한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을 그들이 싫다고 한다. 

내로남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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