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창석 Feb 08. 2023

우리의 추억을 지우는 것들..

따따따 따.. 굴착기(포클레인)가 지나간 자국들

" 따따따 따, 쾅쾅쾅 쾅" 

바위를 때리는 금속성 굴착기의 소리가 요란스럽다.

이 놈은 자비가 없다. 


조용한 아침 산책길

얼마 걷지 못해서 나는 가던 길을 멈추었다. 

굴착기와 덤프트럭이 내가 가는 좁은 농로인 올레길을 막았기 때문이다. 




제주 올레길은 바닷가를 끼고 있는 해안가길, 오름과 들판사이를 걷는 들길, 밭과 농촌을 끼고 걷는 농로가 대부분이다. 제주 선조들의 삶을 더듬어 볼 수 있는 원도심길도 있기는 하다. 

초창기 제주 올레길에는 제주다움이 살아있었고,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많았다.


2007년 1코스를 시작으로 현재 27개 코스 437KM, 방문객이 1,000만 명을 넘는 시대가 되었다. 

그동안 올레길은 폭발적인 유명세를 타면서 짧은 기간 내에 탐방객이 급증했다.

이들의 의식주를 해결할 문명의 도구가 필요했다. 



"기회는 찬스"다. 

인간이 그대로 둘 수는 없었던 것 같다.

편의를 앞세운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돈으로 팔고 사고 매매를 하다 보니, 니 거 네 거 구분이 필요했다. 


제주는 예전부터 올레길을 사이에 두고 온 가족, 괸당들이 모여 살았다. 

올레길 제일 안집은 부모님이 살고, 그 바깥은 큰 아들, 그다음 작은 아들이 산다.

집으로 가는 올레길은 모두의 땅이다. 니땅, 네 땅이 아니다.

제주는 올레길을 사이에 두고 이런 경우가 많았었다.

지금의 의미로 따지면 안쪽집들은 모두 오가는 길이 없는 맹지가 된다. 

제주 사람들끼리 집을 사고팔아도 이러한 통행권은 대부분 보장되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개발과 자본이라는 괴물이 들어오면서 제주의 관습과 마을의 관행은 퇴물이 되었다. 

몇십 년을 아무런 간섭 없이 다니던 올레길에 측량과 등기부등본이 등장한다. 

" 사유지이니 여기로는 다닐 수 없다"라고 팻말을 걸어놓는다. 

관습과 관행, 풍습은 퇴물이 되고, 낡은 것이 되었다. 

제주와 마을, 제주인, 동네 삼춘의 마음에 개발이라는 붓으로 지워지지 않을 금을 긋는다.


수십 년을 농사짓던 밭과 과수원에는 농작물 대신에 멋들어진 건물이 들어섰다.

밭에서 나던 한라봉, 천혜향, 보리, 고구마, 당근, 양파, 마늘 등이 사라지고 

카페와 레스토랑, 커피숍, 펜션, 민박 등 인간을 위한다는 각종 편의시설이 자리를 잡았다. 


밭을 일구고, 농부를 태워주던 소와 말도 사라지고

번쩍번쩍 빛나고, 멋있는 차들이 줄지어 서서 주인님의 호출을 기다리고 있다.



제주의 오랜 문화의 유산인 따뜻한 "올레"에

"길"이라는 현대적 수식어를 붙여서 이제는 외래어가 돼버린 듯한 "올레길" 

오늘도 그런 현장을 걸어본다.  


올레길에서 개발의 대명사가 돼버린 굴착기가 나대는 현장은 제주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다.


오늘은 인근에 대단위 주택단지가 들어서면서 진입로 확장작업을 하는 중이다.

원래 농로이기는 하나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거대한 암석들이 있어서 방치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이 거대한 암석을 제압할 수 있는 인간의 힘이 생겨서 제거 중이다.    


건설현장의 상징인 굴착기는 못하는 게 없다. 


그동안 인간이 하기에는 너무 힘들었던 굴착 작업, 토사 운반, 건물 해체, 지면 정리에는 선수다.

또한 바위를 깨는 착암기의 역할도 하고, 집게를 장착했을 때는 운반하지 못하는 게 없을 정도다. 




그동안 꿈쩍도 않고, 땅속 깊이 박혀있던 거대한 암석이 제대로 주인을 만난 거다. 

굴착기가 바위를 부수고, 산산조작난 바위들을  덤프트럭에 실어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제 평탄작업이 끝나고 레미콘 차량이 두어 번 왔다 가면 여기는 여느길과 마찬가지로 평편한 신작로가 될 것이다. 그러면 콘크리트 포장이 된 올레길이 된다. 이 길에 있었던 수많은 추억과 역사들은 없어질 게다.   

 

굴착기는 개발의 상징으로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무엇이든지  갈아엎고, 부수고, 없애 버린다. 

그들이 왔다간 자리는 모두가 새로워진다. 모두가 없어지고,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척이나 그를 사랑하는 것 같다. 

우리의 추억, 어쩌면은 우리까지 지워버릴 수 있는 그를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어떤 색을 원하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