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밝아 오는 아침을 보다가..
오늘도 여느 때처럼 아침이 밝았다. 똑같은 아침이다. 동쪽에서 해가 뜨고, 아침 여명이 밝아오더니, 잠시 후 세상이 훤히 보인다. 어제의 아침과 오늘의 아침이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구분해서 어제와 오늘이라고 부른다. 이런 하루가 쌓이면 한 달이 되고, 1년이 된다. 다들 그렇게 부르고,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이건 우리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올가미이자 거대한 약속이다. 내가 혼자 부인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그렇다. 내가 직접 약속을 한 적은 없지만, 내가 태어난 순간, 내 의사와는 관계없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거대한 약속의 올가미속에 던져진다. 아침이면 일어나야 하고, 밤이면 잠을 청해야 하고, 하루 세끼 식사를 한다. 어른들에게는 존경을, 아이들에게는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남 모르는 사람끼리 결혼이라는 약속을 했으니 미우든 싫든 같이 살아야 한다. 자식을 나면 키우고 학교를 보내면서 혼자 세상을 살 수 있도록 키워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은 내가 하고 말고를 선택할 수 있는 나의 약속이 아니다. 그저 묵묵히 지켜야 하는 이 사회의 지탱원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만병통치의 수단이다. 그다지 고급스럽지도 않은 종이쪼가리다. 이 돈을 가지면 못하는 것이 없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 목숨도 아끼지 않는다. 나는 돈이 없기에 그 약속을 지키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그렇게 얘기를 하는 순간 그 사람은 사회에서 미친놈이 된다. 이렇듯 내가 하지도 않은 약속이라도 내가 어쩔 수 없이 지켜야 하는 공동체의 약속이 부지기수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어울려 살 수 있게 하는 우리 사회의 약속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내란이니 계엄이니 하는 무시무시하고 낯선 용어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작년 12월 3일은 황당한 충격의 밤이었다. 연말이라 한 해를 마무리하고, 다가오는 한 해를 준비하는 일만으로도 바쁜데, 짧은 몇 분 간의 뉴스특보는 우리들의 모든 일상을 헝클어 놓았다. 충격이 워낙 거대하고 황당했기에 우리나라를 넘어 전 세계의 이슈 거리가 되었다. 지금도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이 상황이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를 얻고자 수십 년간 노력했던 우리 사회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우리 사회에 드리워질 고통은 너무나 클 것이다. 그러기에 많은 국민들이 비폭력 비무장으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나서고 있다.
방송이나 언론의 전매체가 뉴스특보와 특집으로 도배가 되고 있다. 벌써 두 달 넘게 비정상적인 일상으로 "특"자의 세상이 되고 있다. 금방 정리가 될 줄 알았는데 장기화되면서 이슈가 이슈를 낳고, 해석과 시각의 차이를 한 달이 넘게 지속되고 있다. 온갖 설들이 난무하고 있다. 일어난 일들 못지않게, 호사가들이 주장하는 갖가지 추측과 엉뚱한 해석들이 국민들을 더 불안하게 만들고 불쾌하게 만들고 있다. 서로의 대응들은 상식선이나 예측의 범위를 벗어나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대통령과 그 주변 인물들의 행동이 헌법을 위반했는지 여부다. 헌법은 우리나라를 존재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국민들 간의 약속이다. 모두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지금, 그 법속에 갇힌 사람들은 적법함을 주장하고 있고, 법 밖에서 보는 사람들은 위법임을 주장하고 있다. 플래시 메모리라도 된 듯 자기가 한 행동을 잊어버린 것 같다. 그리고 자기의 행동에 대한 의미를 모르는 모양이다.
문자화된 약속인 법의 해석은 그리 어렵지 않다. 문자 그대로, 문구 그대로, 문장 그대로 해석하면 된다. 그리고 다른 법조문과의 논리적인 연결성과 입법 취지만 생각하면 된다. 법이 어렵다는 사람들은 자기감정이 이입돼서 법을 해석하겠다는 사람들이다. 법은 연애소설을 읽듯이 주인공의 내면을 읽어야 하고, 행간의 의미를 꿰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들이 필요한 부분만 얘기하고, 자기들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자의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건 법을 조금 알면서 많이 아는 척하는 법기술자들이 하는 짓이다. 법으로 지위를 보장받고, 법으로 평생을 호가호위하면서, 법이라는 잣대로 수많은 사람을 평가했던 사람들이 할 행동은 아니다. 자신의 걸어온 길을 부정하고, 법조인이라는 자신의 가치를 떨어 뜨리는 일이다.
약속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지도 않고, 그들의 의견을 모두 반영하는 것도 아니다. 약속은 모두의 뜻을 반영한 만장일치가 가장 좋으나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다수결의 원칙에 따를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원칙이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다수결에서 밀린 소수의 사람들이 그 약속이 부당함을 주장하는 것은 같이 어울려서 살지 말자는 얘기다. 민주주의 사회를 사는 사람으로서 기본적 소양이 부족한 사람일 것이다. 자기 것이 아닌 남의 의견을 수용하거나 따를 수 없는 자신감이 없는 소인배의 얘기다. 서로가 약속을 하면서 같이 어울려 살 수 있는 이웃이 아니다. 하물며 수천만이 어울려 사는 나라의 법은 오죽하겠는가?
약속은 시대의 변화를 자동으로 반영하는 유연성이 있으면 좋겠으나, 문자로 명문화하는 성문법인 우리나라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약속은 한순간의 상황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일 일어날 일을 예측할 수는 있으나, 맞힐 수는 없다. 그러니 법은 변하는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가장 시대에 뒤떨어지고 보수적이라고 한다.
뉴스를 가만히 보다 보면 허탈한 웃음이 필요할 때가 종종 있다. 자칭 법을 잘 안다는 사람들의 얘기다. 자기네는 법을 집행할 뿐이고, 법을 지키지는 않아도 된다는 듯이 말한다. 마치 치외법권이라도 있는 것 같다.
늘 그들은 "법과 원칙"에 따라 법을 집행하겠다고 한다. 그들이 말하는 법과 원칙은 "내 맘대로"라는 말로 알아들으면 된다는 현직 검사의 얘기를 들으니 이해가 가긴 했다. 그 후로는 그렇게 알아들어 보려고 노력하는데, 왠지 서글플 때가 많다.
가끔 웃고 지나가는 얘기로 "약속은 깨기 위해서 하는 거다"라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이들이 무안함을 달래기 위해서 하는 말일수도 있다. 그러나 "말이 씨가 된다"라는 말이 있다. 제대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불평불만도 많다. 지키지 못할 약속이면 하지를 말고, 약속을 했으면 지키는 게 어울려 살아가는 사람들의 도리다. 자기주장은 하되 자기가 주장하는 범위만큼 상대방의 주장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속 좁은 사람의 아집이 될 수 있다. 같이 어울려 살 수 없음이다.
어린 시절, 내가 법을 전공하겠다는 말을 듣고 있던 선친이 하던 말이다.
"법(法)이 물(水) 수에 갈 거(去)라, 물이 가고 싶은 데로 가다가 멈추듯, 법도 마음대로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물은 갈 수 있는 길, 물길이 없으면 가지를 않는다.”
1980년 어느 날, 선친이 밥상머리에서 미래의 법학도에게 세상을 걱정하면서 해주던 말이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선친의 걱정은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