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by 노고록

"미안해" 일상에서 우리가 자주 하는 말이다.

너무 자주 해서도 문제지만 너무 안 해서도 문제인 경우도 있다.


인터넷에서 미안이라는 단어를 검색했더니, 떡 하니 한자가 나온다.

아닐 미(未)에, 편안 안(安)을 해서 미안이다. 그대로 풀이하면 "편안하지 않은 것", 즉 불편함이다.

누구에게 무엇 때문에 인지는 모르겠지만 편치 못한 마음을 풀어보자는 사과의 말이다.

순수 한글인 줄 알았는데, 한자라는 데서 일단 의외였다.




길을 가다가 상대방의 어깨를 의도치 않게 치는 경우, 아니면 만원 버스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상대방의 발을 밟은 경우가 있다. 이때 우리는 습관적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 내 행위가 상대방에게 육체적인 고통과 불쾌한 기분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이런 일에 대한 충격은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잊힌다. 그러나 어깨를 친 사람이 바로 현장에서 머리를 숙이면서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라는 사과의 말을 하면 상대방의 불쾌감은 보다 빨리 사라진다. 그리고는 아무런 상처도 남지 않는다. 이때 미안하다는 말은 적절하고 꼭 필요한 말로써 서로의 불편했던 감정을 씻어준다.




우리는 사회생활은 사람과 만남의 연속이다.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면 이해관계의 충돌로 말다툼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논리나 지식을 가지고 토론은 하는 경우는 좀 다르다. 토론에서 상대방과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거나 반대를 하는 것이 미안한 일은 아니다. 오히려 자기의 의견에 관심을 가져주는 경우라 고맙다고 해야 할 일이다.


감정이 앞서는 대화인 경우가 문제다. 대화를 벗어나 다툼의 지경에 이를 때, 아니 다툼의 도를 넘어설 때, 이성보다는 감정이 우선하면서 평소 상대방에게 품고 있던 감정을 가감 없이 말로 내뱉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쉽게 말해서 본인 감정이 제어가 안 돼서, 욱하는 성질에 평소 상대방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안 좋은 감정과 평가를 쏟아내 버린 경우다. 마치 다시 안 볼 사람처럼 말이다.


그리고 잠시 돌아서면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지?" 혀를 빼버리고 싶을 정도로 후회가 밀려오는 경우가 있다. 상처뿐인 만남, 후회뿐인 대화다. 지금 당장 내가 생각해 보니 불편한데, 나의 그런 말을 들은 상대방은 얼마나 불편할까?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상대방을 찾아가서 용기를 내고 "미안해"라고 사과의 말을 건넨다. 그 "미안해"라는 사과의 말을 들으면 다시 보지 않아도 될 사람이 아닌 이상 "그래 알았다, 나도 미안해"라고 웃으면서 악수를 청할 수밖에 없다. 서로가 화해는 했고,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 감정싸움에서 들었던 나에 대한 모진 말들까지 기억 속에서 지울 수 있을까? 안 들었던 말로 다시 떠오르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상대방이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것이 문제다. 그 말들은 아마도 그 사람을 만날 때마다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마음 깊숙이 남아있다가 결정의 시간, 선택의 시간마다 불쑥불쑥 떠오를 것이다. 겉으로는 아닌 척하면서 속으로는 나를 이렇게 생각할 건데... 상대방을 보는 다른 눈이 된다. 속 좁은 인간들이 사는 세상인데 어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과정에서 "미안해"라는 말은 아무런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서로의 표리부동함을 감싸주는 가면이 될 뿐이다. 때로는 "그런 말을 해놓고 미안하다고만 하면 다냐?"라는 제2차 전쟁을 유발하는 빌미가 될 수도 있다.

가끔은 "내가 할 말 다해놓고 미안하다고 사과해야지, 그러면 이해해 주겠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건 상대방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내고서는 1회용 대일밴드를 붙여주겠다는 심보를 가진 사람이다. 공기를 타고 세상에 공개되고 상대방에 세 전달된 말은 취소가 되지 않는다. "미안해"라는 말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미안해"라는 한마디로 모든 상처와 아픔, 불편함이 치유되지는 않는다.

애초에 미안해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게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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