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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으로 수레국화가 보이네..

어느 빈하루 갑자기 다가온 행복

by 노고록

흔히들 갈 때 마음과 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한다.

그냥 들으면 인간의 변덕을 얘기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들린다. 그러나 이면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목적을 향해가면서 부담을 가지고 보는 세상과, 목적을 달성하고 내려오면서 보는 세상은 똑같은 대상이지만 보는 느낌은 확연히 다를 수 있다. 아마도 우리 마음의 여유가 주는 감정적 차이가 아닐까 한다. 즉 눈을 통해서 세상을 보기는 하지만 보이는 대상을 해석하는 것은 당사자의 심적인 상태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여유를 가지고 나의 글방인 유심재를 찾았다.

매년 찾아오는 봄이지만 유심재의 봄은 항상 푸르름으로 가득하다. 그런 푸르름 가운데 군데군데 피어있는 꽃들은 유심재라는 캔버스에 화룡점정이다. 꽃들이 있기에 나비와 벌들이 그 아름다움을 더욱 출렁거리게 한다. 잔디마당에 꽃밭과 텃밭이 같이 있다. 봄날 유심재를 찾는 날은 대부분 텃밭을 가꾸는 일손으로 바쁘다. 10여 가지 작물을 재배하기에 줄기유인을 하고, 지주대를 세워주고, 적심을 하고, 가끔 성질 급한 작물들은 수확도 해야 하기에 항상 시간에 쫓긴다. 여유를 가지고 이런저런 생각도 정리하고 글도 쓰려고 만든 유심재이지만 생각지 못하게 일터가 되어버렸다.


가끔은 "오늘은 방에서 책을 보고, 글만 쓰다 와야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출발을 한다. 순전히 힐링이 목적이다. 노트북도 챙기고, 작업하다만 파일은 드라이브에 올려놓고, 몇 가지 자료도 백팩에 쑤셔놓고 가볍게 출발을 한다.


유심재 올레를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게 집의 현관이 아닌 텃밭이다. 넘치는 푸르름으로 나를 맞아주는 텃밭을 보면 "아, 이거지.." 하는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마당 테이블에 가져온 것을 올려놓고는 발은 어느덧 텃밭으로 향한다. 휘 둘러본 텃밭은 온통 일거리를 만들고 주인장을 기다린 듯하다. 하늘로 쳐 닫고 있는 지주대위의 작물과 수확시기를 넘쳐서 어른 호박이 돼버린 애호박, 며칠 못 봤다고 짧은 치맛자락이 넓은 롱 치맛가 되어버린 상추와 그 동네 친구들을 보면 그날 일과는 거기서 시작이 되고 끝나버린다.

복잡한 일이 있거나 괴로운 일이 있을 때 밭에 가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간다던 동네 삼촌들의 얘기가 정답이 되어 돌아오는 순간이다. 그렇게 하루는 속절없이 지나가버린다.



오늘은 그냥 텃밭을 아이체킹하고 그대로 방으로 향했다. 사실 텃밭 일을 하고 싶어도 도저히 할 수 있는 날씨가 아니다.

그리고 블라인드를 올렸다. 동향으로 난 창문이라 오전 햇살은 뜨거운 게 아니라 강력하다.

아주 오래된 창문, 나지막한 창문을 열었다.

문은 열 때마다 창틀은 덜커덩거리는 소리가 난다. 50년 정도밖에 안 된 창문인데도 말썽이다.

앉은뱅이 탁자를 앞에 두고 앉았다.

창틀의 높이가 딱 내 눈높이다. 조그만 창틀만큼만 바깥세상이 보인다. 그러기에 더욱 아름다운지도 모르겠다. 내게 불필요한 것들은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 자리는 내가 맘에 들어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온통 파란 텃밭정원에 이따금씩 내 눈을 자극하는 하얀 것들이 있다.

하나는 지주대 끝에 매달려 있는 비닐이다. 잔디밭에 새와 고양이들이 무단으로 칩입을 해서 응가를 하기에 비상수단으로 아내가 만들어 놓은 조치다. 비닐은 바람이 불 때마다 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뒤에 하얀 것들은 나비다. 꽃들이 있기에 부지런히 들락날락 거린다. 색다르게 멀쑥한 남색꽃이 보인다. 사실 요새 비가 없어서 그런지 식물들의 상태는 그리 양호하지가 않은 편이라 눈에 확 들어오지는 않는다. 꽃들이 작기에 10여 미터가 떨어진 방안에서는 희미하게 보인다. 조그마한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살펴봤다. 지난 4월 씨앗을 직접 심었던 수레국화다.

오늘 갑자기 자라서 꽃을 피운 것은 아닐 텐데 오늘에야 내 시야에 들어오고 내 눈길이 닿았다. 오늘에야 꽃을 살펴볼 여유, 주변을 볼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수레국화는 샤스타데이지와 함께 내가 좋아하는 꽃이다. 딱히 이유는 없는데 직감적으로 좋아하기 시작했다. 몇 해 전 마스터가드너 활동을 할 때 익힌 꽃이다. 둘은 다른 듯 비슷하다. 가냘프고 기다란 외줄기 끝에 피우는 단 한 송이 꽃이 슬플 정도로 아름답다. 그리고 꽃들은 바람이 부는 대로 하늘거리다가도 제자리를 찾아옴을 반복한다. 바람이 없는 오늘 수레국화가 흔들리지 않으니 부지런한 나비들만 왔다 갔다를 반복한다.


오늘 마음의 여유를 가지니 내 눈높이만큼, 내 시야만큼 수레국화가 보인다.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이 달라 보인다는 어느 고승이 말이 와닿는 순간이다.


(수레국화의 꽃말은 행복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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