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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Mar 16. 2023

내가 버스(여행)를 좋아하는 이유

나는 가끔 버스를 타면 마음이 편해지고 여유로워진다. 약속장소가 버스 노선에 가까운 곳일 경우는 스스럼없이 시내버스를 타게 된다. 물론 버스를 타러 오가는 시간과 버스가 나와 필요 없는 경유지를 돌아다니는 시간을 생각한다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일정이 없는 날,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날 버스여행은 나름대로의 여유와 편리함을 준다.

버스 창밖에 비치는 세상 모습

어린 시절 버스를 탄다는 것은 굉장한 행사였다. 버스가 많지 않던 시절이다. 버스노선이 많지도 않았다. 배차 간격도 길어서 중산간이나 해안지역은 하루에 몇 번 정도만 운행하던 시절이다. 버스 시간표를 볼 수 있다는 것은 하루에 네다섯 번 이상의 버스가 다니는 마을이라는 얘기다. 예전 버스정류장은 대부분 담배를 파는 구멍가게다. 이 가게에서는 차표(예전에는 승차권이라는 말을 안 쓰고 차표, 버스표라고 했다)도 팔았다. 돈을 받고 검정색 묵지를 바친 조그마한 갱지에 종착지 하고 금액을 적어서 쫘악 찢어서 주던 시절, 이 구멍가게 유리창에는 주인아저씨가 서툰 글씨로 만든 버스 시간표가 붙어있었다.    


내가 버스를 좋아하고, 버스여행이 편안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돌아가신 선친과 함께 했던 몇 번 안 되는 버스의 추억 때문이 아닐까 한다.  

난 어린 시절 서귀포시내에 살았다. 가을이면 조상님 묘소에 벌초를 해야 한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내가 집안일을 챙기다 보니 할머니 산소였다. 지금 행정상 애월읍 고성2리 원광요양원 남쪽 붉은 오름이다. 중산간 마을에서도 조금은 더 한라산쪽이다. 당시는 이주민들이 모여서 양잠업을 주업으로 하는 개척단지를 만드는 중이라 양잠단지라 불렀다. 주위는 온통 임야와 오름, 벌판이라 길이나 민가가 별로 없다. 시간이 흘러 한참 후에야 원광요양원이라는 건물이 생겼지만 당시만 해도 모두 풀밭 가시덤불과 소나무가 우거진 밀림지대였다.


벌초하러 가는 날이면 선친과 나는 이른 아침 집을 나선다. 손에는 어머니가 정성껏 싸주신 밴도(도시락)와 호미(제주에서는 낫을 호미라고 함) 2개가 들어있는 포따리가 들려있다. 당시 어린 나에게는 하루종일 걸리는 고행길이다. 서귀포에서 제주시행 버스는 비교적 많은 편이다. 출발 시간을 선택할 수가 있다. 그러나 제주시에서 양잠단지까지 가는 버스는 오전 오후 1회씩 밖에 없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 오전 버스를 타야 할머니 산소 벌초를 하고, 다시 걸어서 다음 산소로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저녁 무렵 아버지의 고향인 애월읍 수산리 친척의 집에서 숙박을 해결할 수가 있다.


제주시행 버스는 제2횡단도로(지금의 1100 도로)를 다니는 삼화여객을 타야 한다. 우리의 목적지는 시내에 있는 버스터미널 가기 전 지금의 노형5거리 인근에 있던 매표소 겸 간이정류장이다. 이 버스를 타야 제주시내를 거치지 않고 노형5거리 근처 우리가 원하는 곳에서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양잠단지를 가는 오전 버스를 타기 위한 스케줄링이다. 간이정류장 매표소는 지금으로 치면 컨테이너 3M*6M 정도의 넓이의 임시건물이다. 한쪽에는 과자 몇 개를 전시한 구멍가게가 있고, 반대쪽에는 버스를 타기 위한 손님들이 기다리는 공간으로 비워둔다. 그사이 주인아저씨가 쪼그려 앉아서 행선지를 물어보고 차비를 받고 차표를 끊어준다.

   

지금 노형5거리 주변은 제주에서 제일 발달한 번화가다. 제주의 강남이라고도 한다. 제주에서 최고로 인구가 많은 동네이다. 상가도 높고 많다. 당시에는 온 동네가 밭과 과수원이었다. 사람이 거주하는 민가를 손꼽아 찾아봐야 하는 정도이다. 대표적으로 지금의 노형5거리 일본대사관이 있는 곳은 예전에 소나무가 울창한 숲이었다. 지금도 삼계탕으로 유명한 비원이라는 식당이 1980년대만 해도 소나무 밑에서 야외테이블까지 준비하고 영업을 하던 곳이다. 노형이 대규모 택지개발이 가능했고, 지금과 같이 현대식 건물들이 대단위로 들어서는 게 가능했던 이유다.  


매표소를 출발한 버스는 노형과 광령을 지나 고성2리까지 운행을 한다. 지금 생각하면 원노형과 월랑마을, 광평마을을 통화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이 밭과 과수원사이 좁은 길이다. 마을을 돌면서 몇 안 되는 민가와 농가에 일일이 손님을 내려주고 버스는 광령1리를 향한다. 광령 1,2,3리는 마을이 생긴 지 꽤 오래된 곳이다.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거주했던 광령리를 지나 양잠단지로 도착할 때쯤이면 버스는 전세버스가 되어있다. 양잠단지 버스 종점, 넓은 마당에 썰렁하게 허름한 무슨 건물이 하나 있었고, 나무 몇 그루가 있었던 스산한 기억이 난다. 여기까지가 아버지와 나의 버스여행기다.        


지금도 승용차로 종종 이 길을 지난다. 그때쯤이면 항상 예전 아버지와의 버스여행길이 생각이 난다.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자꾸 생각이 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다.

   

" 예전에 아버지와 벌초를 갈 때 버스를 타고 가던 길인데..."


당시만 해도 비포장 길이 많았다. 버스를 타면 울퉁불퉁 멀미를 한다고 했다. 휘발유 냄새로 지독했다. 많은 사람들이 거북하다고도 했다. 그런데 나는 멀미도 없었고, 코를 찌르는 휘발유 냄새도 마냥 좋았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서귀포 집에 갈 때는 종종 일주도로로 가는 버스를 이용했다. 한라산을 횡단해서 가는 버스는 서귀포까지 1시간이면 가능했다. 그러나 해안선을 따라가는 일주도로는 2시간 40분이 걸린다. 당연히 버스요금도 배로 비싸다. 그래도 나는 시간이 허락하면 일주도로로 가는 버스를 탄다. 머리가 복잡한 날, 뭔가는 고민을 해야 하는 날도 장거리 버스를 탄다. 이 버스는 완행이라 서귀포까지 가는 길 모든 마을에 멈춘다. 버스 손님이 많다. 음악은 운전기사 아저씨의 취향에 따라서 조금 다를 수 있지만 대부분 뽕짝 음악을 방방 틀어준다. 당시 라디오는 한라산을 넘어서면 주파수가 달라서 지지찍 거린다. 그래서 더 음악을 들려주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그 모든 풍경들이 모두 좋았다. 아니 관심 밖 이었다. 단지 창밖을 스치며 지나가는 인간세상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멍을 때렸던 기억이 난다. 요즘말로는 버스멍인가?  

난 직장을 다니면서 승용차를 운전하기 시작했다. 30여 년 전의 일이다. 자녀들이 태어나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 같다. 그동안 가까운 길, 먼 길 가리지 않고 승용차를 운전하고 다녔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모든 일정이나 미팅들이 승용차 이동시간 기준으로 잡힌다. 하루에도 4~5개씩 잡히는 미팅이나 방문일정은 아무리 시내라 할지라도 버스일정으로서는 해결하기가 어렵다.  

이제는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일정들이 대부분 승용차의 이동시간을 기준으로 잡히는 것 같다. 승용차의 보유대수가 증가하고 도로의 교통체증, 주차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퇴직을 하고 대부분 개인일정이 잡히면서 부터는 가능하면 버스를 이용하려고 한다. 특히 회의일정이 끝나고 음주를 곁들인 저녁회식이 있는 날이면 더욱 그러하다. 덕택에 편안하게 아무 걱정없이 소주잔을 기울일 수 있는 여유도 생긴다. 그러나

그런 경우가 많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약속장소가 대중교통의 혜택을 못받는 곳인 경우, 2번이상 갈아 타야하는 경우, 시간이 퇴근시간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빨리 빨리와 승용차 위주의 생활패턴이 지배를 하고 있다.



버스를 타면 일단 손이 자유롭다. 휴대폰도 만지고, 문자도 보낼 수 있고, 카톡도 할 수 있다.

반드시 전면을 주시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신호등이 어떻게 바뀌는지 신경을 안 써도 된다. 하고 싶은데로 눈이 가는 데로 두리번두리번거려도 좋다. 창밖 멍을 때려도 좋다.

버스는 차가 높다. 승용차 높이에서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보인다. 이 재미는 상당하다.

"어, 저런 것이 있었어? " 완전히 다른 것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시야가 팍 넓어지는 느낌이다.

내가 안 보던 곳, 못 보던 곳을 보게 된다. 승용차로는 직선거리만 간다. 불필요하게 경유지를 거치지는 않는다. 버스를 타면 기사님이 이곳저곳  내가 원하지 않는 곳을 구경시켜 준다. 새로운 것을 보게 된다.

뜻하지 않던 친구, 동창, 이웃을 만나게 된다. 계획에 없던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누구냐에 따라서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다.

내 뜻대로가 아닌 상대방의 뜻을 이해하고 따라줘야 한다. 상대방의 노선과 계획을 어쩔 수 없이 말이다.

느림의 미학이다. 빠르게만 가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어차피 인생의 끝은 같을  것이다.


단지, 내가 계획에 없던 시간을 좀 빼앗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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