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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Apr 07. 2023

갈 때 마음, 올 때 마음 다른 인간, 처음처럼..

나는 오늘부터 또다시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사람이 참 간사해이.. 아플 때는 아픈 게 치료만 될 수 있다면 의사가 허랜헌거 뭐든지 다 열심히 죽자 살자 할 것 같았는데.. 아픈 게 조금씩 나아가니까 다 잊어불언.. 원 위치로 돌아완, 요새는 의사가 마시지 말랜 헌 소주도 가끔 마시맨.. "


컥이다. 오랜만에 만난 누나가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누나는 작년부터 어디가 아픈지는 모르지만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라서 병원을 다니고 있다. 정기적으로 병원진료를 받고 처방약을 먹으면서 컨디션이 많이 올라왔다. 약을 먹고 치료를 받는데 의사가 부탁부탁 하길 술은 절대 마시면 안 된다고 한 모양이다.


누나는 이제 칠순이 다 되어간다. 원래 사교적이고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니 친구도 많고 모임도 많다. 사람을 만나다 보니 식사와 술자리가 많아지고 이젠 제법 소주 몇 잔 정도는 습관적으로 하는 모양이다. 아프기 전에는 우리와의 식사자리에서도 반주를 할 정도였으니 주당이라고 해야 할 정도다. 그렇게 좋아하던 음주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외부활동을 거의 하지 말라는 얘기와 같은 지시다. 좋아하던 음주를 거의 1년간 참아낸 것을 보면 얼마나 아팠던지 짐작은 간다.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날은 덤으로 누나를 만나게 된다.

오늘은 어머니가 병원 정기검진이 있는 날이다. 어머니는 움직임이 불편하다. 이렇게 외부 출입이 있는 날이면 내가 가서 캐어를 해야 한다. 서귀포 가는 길, 시내 들어가기 조금 전인 호근동이라는 마을에 누나네가 산다. 어머니를 만나러 갈 때면 종종 누나를 같이 모시고 간다.

어머니는 큰딸인 누나가 편한 모양이다.


"오당 호근리 들려 누나 데리고 오라"

서귀포에 간다고 내가 전화를 하면 대부분 어머니는 오는 길에 누나를 같이 데리고 오라고 한다. 어머니를 만나면 같이 점심도 먹고, 마트도 가고, 병원도 가야 하니 몇 시간이 소요된다. 긴 시간 말없고 퉁명스러운 아들보다는 만날 때마다 다투지만 그래도 딸인 누가가 더 필요한 모양이다. 나는 운전기사 노릇만 하면 된다. 오늘도 어머니의 명을 받자와 누나네 집에 들렀다.


"어! 누나 얼굴이 되게 좋아졌네? 걱정 많이 했는데.. 괜찮은 거야?"

"응, 요새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운동하고 하니까 많이 나아진 것 같아, 요번에는 고사리 꺾으러도 갔다완"

자랑하듯 부엌에서 고사리가 담겨있는 소쿠리를 가져와서 보여준다.

"요새는 모임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허다보난 소주도 몇 잔 허맨" 자랑스럽게 얘기를 한다.

"그래도 되나? 아픈 때는 죽을 듯하더구먼"

"게메, 그때는 병만 낫게 해 준데 허민 죽어도 술을 안 먹젠 했져마는.." 말끝을 흐린다.

"그래도 다행이네, 소주 몇 잔 정도라도 마셔도 괜찮을 정도면... 조심합써.."


즐거운 마음으로 누나와 같이 어머니를 만나고, 밥도 먹고, 시장도 보고 내가 사는 제주시로 돌아오는 길이다.


뒷간에 갈 적 마음 다르고 올 적 마음 다르다


집에 도착할 즈음, 누나가 했던 얘기가 떠오르면서 운동이 하고 싶어졌다.  

나도 가만히 생각하니 오늘 누나가 한 얘기가 내 얘기였다. 누나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나도 찔리는 게 있었다.

 

나는 내가 직접 운동을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태생이 양반(?)이라 그런지 남이 하는 것을 팔짱을 끼고 보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TV에서 중계하는 모든 스포츠는 열공이다.

 

나는 지금까지 병원진료 기록이 거의 없다. 잔병 치레가 없다. 감기를 걸려도 자연치유를 한다. 작년 9월경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특별히 어디가 아픈 것은 아닌데 몸이 그냥 불쾌하다고 해야 하나, 오른쪽 배에서 기분 좋지 않은 감을 느꼈다.  

"혹시.. 아픈 데가 오른쪽 배 위쪽이다, 그러면..혹시.." 인터넷을 찾아보면서 온갖 잡 생각이.들었다.

말은 못 하고 혼자 끙끙댄게 거의 2주 정도 되었다. 병원은 가야 할 것 같은데 가는 게 무서워졌다. 우리 나이가 되면 병원 가는 게 무서운 게 아니고 청천벽력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병원 가기가 무서워진다.


고민고민 하다가 아내가 없는 상황에서 혼자 병원을 찾았다.  의사가 혈액검사, 복부 초음파를 하더니만 지금 큰 이상은 없다고, 그러면서 나이도 있고 해서 모든 수치가 위험선에 왔으니 약을 먹는 게 좋다고 주문을 했다.

퇴직 전 정기검진 때마다 종종 듣던 얘기다. 의사들은 수치가 기준선을 조금만 넘으면 무조건 약을 권유한다는 생각이다.


"지금 위험선을 넘은 게 아닌데 굳이 약을 먹어야 하나요? 혹시 다른 방법, 가령 운동 같은 것으로 조절할 수는 없나요? " 내가 조심스럽게 의사 선생님에게 중재안을 제시했다.

" 그럼 운동을 해서 체중을 줄이세요. 지금이 80kg니까 70kg 초반으로 10% 감량을 해야 합니다" 단호하게 그러나 조금은 우려스러운 눈으로 나에게 답을 주었다.

"아예, 걱정 마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엊그제부터 하루에 10,000보 걷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하루 10,000보 걷기 운동은 9월부터 11월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었다. 동반자가 있어야 한다며 항상 아내가 동참을 해주었다. 집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이호테우 해수욕장까지 갔다 오면 10,000보가 된다. 집에서 올레길 17코스를 따라 무수천 다리까지 갔다 오면 10,000보가 된다. 내가 사는 동네가 바다와, 하천, 올레코스를 끼고 있어서 저녁시간 걷기에는 좋은 곳이다.

부득이 저녁일정이 있는 날에는 아침에 걸었고, 술을 마신날도 집에 들어오기 전에는 동네 한 바퀴를 걸었다. 비가 오는 날은 지하주차장을 뱅글뱅글 돌았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굳은 생각이었기에 가능했다.


오늘도 걷고, 내일도 걷고, 자꾸 걷다 보니 몸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아프다고 느꼈던 부분도 사라졌다. 이젠 내가 아파서 걷는 게 아니고 걷는 게 좋아서 걷는다는 기분이다.


내가 운동을 시작하면 비가 오던지 날씨가 변덕을 부려서 자연재해로(?) 운동을 어쩔 수 없이 그만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그때마다 조용히 없던 일로 하면서 운동하고의 인연은 뒷전으로 밀렸던 기억이 있다. 때마침 12월이 지나면서 눈도 오고 날씨가 추워졌다. 12월까지는 부득이한 날씨가 아니면 패딩을 껴입고, 가죽장갑을 끼고, 마스크까지 끼고 걸었다. 살아야 하니까...

 

" 아, 너무 춥다. 바닷바람이 너무 센데"

내가 사는 외도동은 바다와 하천을 끼고 있는 마을이라 겨울바람은 예상외로 차갑다.   

" 그럼 바람 안 부는 방향으로 걸어보자"

" 오늘은 눈비가 오는데 쉴까? 1주일에 3일 이상만 걸면 된다고 하던데.."

" 걷는 게 하루 7.000보만 넘으면 마찬가지래, 굳이 만보를 걸을 필요가 없데.."

이런저런 이론과 논리, 주워들은 정보들이 머리를 스치면서 합리화 방안을 강구한다.

그렇게 오늘 쉬고, 내일 안 나가다 보니 운동하는 횟수가 점점 줄었다.


운동으로 만들어 놓은 효과가 다 된 건지, 컨디션이 작년 9월경으로 돌아왔다.

지난달부터 끙끙 안 좋은 기분을 느끼면서도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오늘 누나가 툭하니 던지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나는 내 상태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 그거였구나, 나도 운동을 안 하니까 그렇구나.." 머리가 번득 정신이 들었다.

똑같은 상황이니까 똑같은 처방을 하면 되는 게 나는 그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그러게 뒷간 갈때 마음하고 올 때 마음이 다르다는게 이거구나.

상황이 좋아 지니까 금세 은혜를 잊는게 인간이구나.

잘되면 모두 자기가 잘나서 잘된 줄 안다는 어른들의 말이 또다시 떠 오른다.


오늘 월대천과 월대바다를 빙 둘러서 한 바퀴 돌았다. 기분이 상쾌하다. 은혜를 입었다. 잊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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