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깨달음

부모님의 사랑의 크기는 깨닫는 순간

by 노고록

대중가요는 사람들의 일상의 감정들을 잘 대변해 준다.

문득 생각지 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삿말이 당시의 내 감정코드와 딱 맞을 때 그 느낌은 상상 이상으로 강하고 오래간다. 그 노래는 내 인생의 노래가 된다.


어머니를 뵈러 다녀오는 길이다. 어머니와의 사소한 감정다툼에 오는 내내 불편했다. 죄송한 마음을 어찌해야 하나 해소할 방법을 찾던 차에 툭 던져진 익숙한 노랫소리에 멈칫했다.

"언젠가 당신이 말했었지...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면서..." 철부지 시절 한참 들고 다녔던 노래다. 오늘 이 노래의 울림은 남다르게 와닿는다.




구순이 훌쩍 넘은 어머니는 혼자 생활하신다. 작년에 요양등급을 받고 요양보호사가 시간제로 집을 방문했으나 낯선 사람에게서 도움을 받자니 조금은 불편했던 모양이다. 거동이 어렵기는 하지만 정신이 온전하시기에 혼자 생활해 보겠노라고 얘기를 하셔서 의견을 존중하는 중이다. 인근마트 정도는 지팡이에 의지해서 혼자 다녀온다. 병원출입이나 외출이 필요할 때면 일정을 맞추어서 내가 겸사겸사 한라산을 넘어가곤 한다.

가서 어떤 얘기를 하기보다는 주로 어머니의 얘기를 듣고 오는 편이다. 평소 말하기를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말벗이 없는 게 건강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해서다. 구순이 훨씬 넘은 나이에 치매도 없이 혼자 생활한다는 것은 자식들에게는 복이다. 우리는 그 점에 항상 고마워하며 지낸다.

어머니가 말을 시작하면 기본 1시간이다. 상황을 보고 내가 필요하거나 기억해야 할 일은 얼른 휴대전화의 녹음을 한다. 나중에 얘깃거리가 수집이 되면 어머니의 일생을 기록으로 정리를 해드리고 싶어서다.

4·3을 직접 현장에서 겪으신 분이다. 부모님(나의 외조부모)이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조부모님 밑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리고 산 넘어 반대편에 있는 머나먼 곳에서 아버지를 만나 평생을 사셨다. 무려 5남 4녀 구 남매를 맨손으로 키웠다.

이젠 세월이 흘러 구 형제를 함께 키웠다는 흔적은 없다. 저마다의 생활과 삶을 찾아 떠났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이미 십수 년째 혼자 살고 있다. 세월의 무상함이다.



오늘은 병원 두 곳에서 대리처방받은 약을 전해드리는 게 주목적이다. 인근에 사는 누나를 불러서 같이 맛있게 점심도 먹었다. 집에 모셔다 드리고 돌아가려는데 불쑥 말을 꺼냈다. 이것저것 서운한 감정을 털어놓으신다. 예나 지금이나 어머니들은 그렇다. 한번 얘기를 시작하면 범위나 한계는 없다. 좌충우돌 한참 전 있었던 얘기로 서로 잊었거나, 마무리가 된 걸로 알았던 일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른다. 오늘도 상황은 비슷하다. 나중에 동의해 준 얘기도 꺼내고, 좋다고 이해해 준 얘기도 꺼내고 이야기가 끝이 없다. 그냥 평소 가슴에 담아두었던 얘기를 순서 없이 하는 중이다. 나의 답변이나 해명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논리적으로 따져서 될 일이 아니다. 자초지종을 얘기해서 풀 수 있는 일이 아닌 듯했다.


어머니에게 부지런히 대답을 하던 나를 발견하고서는 불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구순이 넘은 어머니한테 지금 내가 논쟁을 하는 것도 아니고 따지는 것도 아니고 무엇을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저 하는 얘기를 들어주기만 하면 되는데, 왜 반박과 해명을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어처구니없는 나의 행동에 자책감을 느꼈다.

어느 정도 얘기가 잠잠하자 일어섰다. 하루 종일 얘기를 해도 풀리지 않을 것 같아서다. 시간이 돼서 가겠노라고 다음에 와서 얘기하자고 마무리를 짓고 황급히 일어섰다.

차에 앉으니 운전대가 쉬 잡히지 않았다. 왠지 모를 허탈감과 쓰라림이 몰려온다.

"아 내가 어머니를 자주 아주 섭섭하게 했던 모양이구나"하는 자책감이 들었다. 나는 노력을 한다고 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혼자되신 어머니는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내 생각과 많이 달랐던 모양이다. 원래 주는 입장과 받는 입장이 다르다. 말도 하는 사람의 생각과 듣는 사람의 해석이 다른 경우는 많다.




나도 부모가 되어서 자식들을 낳고 기르다 보니 이젠 어머니의 마음을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새발에 피" "언발에 오줌 누기"였다. 처자식이 있어서 먹고 살기에도 바쁜데 하는 핑계로, 직장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라는 핑계로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때 반드시 그래야만 됐는지는 모르겠다.

우리 자식들이 성장을 해서 내 곁을 떠날 때가 되었다. 내가 결혼을 하면서 어머니 곁을 떠나던 나이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30여 년 전 그때 어머니의 마음일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쉬이 와닿는다. 시차를 둔 동병상련의 감정이다. 이제 내가 직접 겪고 보니 그 감정의 깊이를 알듯하다. 우리 인생 모두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가정을 꾸리려면 어쩔 수 없다고 얘기하라고 하지만 늦게나마 드는 죄책감과 미안함은 어쩔 수 없다. 돌아보니 수십 년 세월 서로가 속아주고, 잊어주니 살았다.


나이가 들면 사회에서 밀려난다. 모든 혼을 담아서 키우던 자식들까지 저들의 삶을 찾아서 떠난다. 이때부터 하나둘 돌아오는 것은 자기의 지나간 삶에 대한 일종의 평가다. 자기가 의식을 하던 안 하던, 원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그냥 피드백이 되어 돌아온다.

사회에 대해서 좋은 일을 많이 했으면 사회에서 보답을 줄 것이고, 자식들에게 좋은 부모였으면 자식들이 좋은 보답을 할 것이다. 그러나 노력과 평가사이의 차이는 감을 잡을 수 없다. 점수를 주는 사람하고, 평가를 받는 사람하고의 생각의 차이가 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를 주어도 그가 가진 전부를 준 사람이 있을 것이고, 열을 주어도 가진 것의 1%도 안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받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하나를 받아도 이것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100을 받아도 이게 내 인생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고 순전히 나의 노력으로 오늘의 자기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내 품 안에 자식이라 내 생각과 같은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했던 일들이 하나둘 실체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세상일은 직접 경험을 하면 더디지만 쉬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유한한 삶을 살면서 모든 것을 경험하면서 배울 수는 없다. 대신한 게 선배들의 경험과 노력으로 얻은 지식과 지혜를 공부라는 과정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게 인간이다. 그러나 아무리 공부를 해도 머리로는 배울 수 있으나 가슴에 담을 수 없는 게 있는 것 같다. 머리로 하는 공부가 아닌 가슴으로 느껴야 하는 사랑이다. 특히 부모님이 무조건 주던 사랑이다.


"얼마면 돼?" 언 듯 드라마의 유명한 대사 한마디가 생각났다. 부모님의 사랑의 크기가 궁금했다.

무심코 ChatGPT에서 물었다. 상징적인 공식이라며, 의미 있는 대답을 준다. 말 그대로 상징적이다.

ChatGPT가 알려준 부모님의 사랑의 크기를 계산하는 공식

어머니집을 다녀온 후 미안한 마음에 전화는 하지 못하고 며칠간 전화기만 만지작 거렸다.

그래도 일상은 알아야 하겠기에, 휴대전화의 버튼을 누르기를 반복하다 전화를 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힘차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다.

며칠 전 내가 했던 버릇없는 행동은 여느 때와 같이 철부지 행동으로 잊은 듯하다.


그래서 어머니다. 그러기에 죄송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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