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밤, 뜬금없는 노래 한 곡이 가져온 인연

결혼관문에서 불렀던 "울어라 열풍아.."

by 노고록

뜬금없는 노래 하나가 우리 삶을 좌우하는 경우는 많다.

그게 의식적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아내를 만나고 결혼하기 전 인 1990년 일이다.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와 만나고 결혼하기까지는 여러 번의 관문과 절차가 있다.

그걸 통과하기 위해서는 남자는 못하는 것, 안 하는 것은 없다.


손윗 동서에게 처제인 아내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었다.

장모님이 자주 일본에 다니다 보니 아내는 거의 처형 집에 같이 살았다고 한다. 아내와 처형의 나이 차이는 그리 많은 것도 아닌데 그런 보살핌 때문에 그런지 처형은 어떤 면에서는 단순한 언니를 넘어선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다. 그러니 동서한테도 아내는 처제를 넘어선 아주 각별하고 특별한 관계였다. 동서는 아내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동서에게는 죽고 못 사는 동네 불알친구들이 있었다.

이들도 마찬가지로 아내에게는 동서만큼이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사람들이었다. 어쨌든 이들을 넘어서야 내가 아내하고 결혼을 하든 뭐를 하든 할 수 있었다.


동서의 친구들은 어릴 적부터 같은 동네에서 크고 자랐던 사이라 그런지 만나면 허물도 없지만 나이도 별 의미가 없다.

동서는 알코올 하고는 남남이다. 술은 전혀 입에 대지도 못하지만 사람들과 모여서 유흥을 즐기는 것은 술 몇 병을 마신 것 이상으로 잘 어울리는 것으로 유명한 조금은 특이한 사람이었다. 반면 동서의 친구들은 음주가무에 아주 능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처음으로 어울리는 동서 친구들과 이 자리는 어색하고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는 노래방이 나오기 전 단란주점과 스탠드바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음주를 하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은 비슷하나 단란주점은 대부분 룸이나 칸막이가 있었고, 스탠드바는 오픈형이었다. 오픈된 바에서 술 한잔하고 노래도 할 수 있었는데 대형 스탠드바인 경우는 홀도 있었다.


아마 그날 내가 기억하는 스탠드바가 동네였던 것으로 볼 때, 처형집에서 저녁을 먹고 2차로 갔던 것 같다.

집에서 5분도 안 걸리는 거리, 서사라 길가에 있는 지하 스탠드바였다.

나는 음주를 안 하면 가무를 안 하는 편이라 저녁을 먹으면서 어느 정도 술은 마셨던 것 같다.

2차를 콜 했다는 것은 모두 얼큰한 기분으로 딱 한잔이 더 필요했다는 증거다.


이럴 때 적당량의 술은 사회에서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만들어주는 윤활유가 되기도 한다.

대화와 사교문화가 익숙지 않은 우리네 한국 사회에서 술은 더 필요악이다.

어색한 자리, 낯선 관계에서 술은 분위기를 녹여주기도 하지만

대담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용기를 주기도 한다. 물론 어느 정도의 범위 내에서의 일이다.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동서 친구들이 신고를 하라는 의미로 내게 마이크를 먼저 주었다.

노래책을 두리번거리다가 뜨끔 없는 노래를 골랐다.

누나가 부르는 것을 숱하게 들었지만 내가 전혀 불러보지는 않았던 노래다.

워낙 유명한 노래라 부를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신청했고 마이크를 잡았다.


"못 견디게 그리워도 울지 못하고..."로 시작하는 전통 트로트인 이미자 님의 "울어라 열풍아"라는 노래다.


내가 아무리 트로트를 좋아한다지만

당시 자리의 성격을 볼 때 내가 왜 이 노래를 골랐는지는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사실 노래도 그리 쉬운 노래는 아니었고, 뭐를 어필할 수 있는 노래도 아니다.

내게 특별한 사연 있거나 한 노래도 아니다.


전주가 나오자 모두 놀랬던 기억밖에 없다.

갓 서른 되는 내가 처음 만난 사람들 앞에서 부르는 "울어라 열풍아"


"못 견디게 괴로워도 울지 못하고 가는 님을 웃음으로 보내는 마음

그 누가 알아주나 기막힌 내 사랑을 울어라 열풍아 밤이 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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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밤 중에 홍두깨다.

만남을 허락받으러 온자리에서 애절한 이별의 노래를 불렀다.

나의 간절함이 통했는지, 아니면 내가 노래 한 자락을 제대로 한 건지,

노래가 끝나고 돌아서니 모두들 알 수 없는 표정이었고, 자리에 들어오니 "아쭈"였다.

그리고 더 이상의 질문과 대답은 없었고, 남자들의 음주가무 행사로 마무리되었다.


어쨌든 그날 이후로 아무런 일 없이 나는 아내와 결혼을 하게 도었고

동서나 동서친구들과는 좋은 형님 동생으로 잘 지내게 되었다.


그 후로 이 노래는 한 번도 불러보지 않았다.

가끔 TV에서 이 노래가 나올 때면 그날 그 자리가 생각이 날 뿐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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