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라는 노래의 의미를 알던 날

"응답하라 1988"을 보면서 새롭게 다가온 노래

by 노고록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


대중가요가 그렇듯 노랫말은 이별의 추억과 아픔을 담은 평범한 서사다. 단지 이별의 주체가 ‘님’이 아니라 세월 따라가 버린 ‘청춘’ 일뿐이다. 하지만 나에게 이 노래는 아주 오랜 시간 단순한 노래가 아닌 장송곡이었다. 갓 스물을 넘긴 시기, 이 노래로 친구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면서 애달파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이 노래를 처음 알았다.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장지까지 가고 오는 길 하루 종일 이 노래를 불렀다. 친한 친구를 저 세상까지 바래다주었던 이 곡은 내게 노래라기보다는 아픔과 그리움의 다른 이름이었다.

이 노래는 1981년 김창완이 부른 청춘이다. 영문도 모른 채 장송곡으로 불렀던 이 노래는 "응답하라 1988"의 OST로 들으면서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요즘은 군대를 제대한 아들과 추억 쌓기를 하는 중이다. 아들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지금 집에 있다. 이제 복학을 해서 제주를 떠나면 다시는 부모님과 오붓하게 지낼 시간이 없을 것 같기에 그전까지 집에서 머물고 싶다고 했다. 아들 얘기로는 부모님들과 추억을 만드는 일이라고 한다. 덕분에 정적만 감돌던 우리 부부의 성에는 기분 좋은 침입자가 나타나 집안이 매일 북적인다.


추억 만들기 1탄은 <응답하라 1988>을 다시 보는 일이다. 2015년 방영된 드라마는 벌써 10년이 되었다. 10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 이 드라마가 어떤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궁금하기도 했고 나 역시 1988년의 기억을 되새기고 싶었다. 하루에 한두 편씩, 시간이 맞으면 하루를 정리하는 기분으로 우리 부부와 아들이 나란히 앉아 시청한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2015년은 아들은 중학생이었고, 나는 퇴직 직후라 서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아마 간헐적으로 보기야 했겠지만 같이 요즘같이 TV를 같이 보면서 웃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금은 화면 속 연기 하나, 대사 하나에 함께 웃고 울며 공감의 온도를 맞춘다.


1988년이면 대략 40여 년 전 내가 20대 후반이었다. 동네 골목도 그렇고, 이웃끼리 반찬을 나르는 모습, 친구들과 어울려서 한 이불을 덮고 밤새 얘기를 하던 모습, 연탄불을 갈던 풍경까지.... 모두 다 타임머신을 타고 건너온 1988년이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장면 하나하나가 그때 내가 갈던 모습 그대로다. 무릎을 탁 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공감 200%의 드라마다.


여기서 뜬금없이 나오는 노래가 바로 청춘이다. 김필이라는 가수가 리메이크한 버전으로 편곡과 노래, 연주가 모두 다르지만, 잔잔하게 우리의 마음 밑바닥을 흐르는 시냇물 같은 분위기는 여전하다. 전주 도입부에 기타의 떨어지는 듯한 선율은 마치 눈물이 툭 떨어지는 느낌으로 가슴깊이 간직하고 있었던 뭔가를 건드리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철 모르게 지내던 20대 초반, 평화롭던 일상에 청천벽력 같은 비보가 날아들었다.

친구가 낚시를 갔다가 실족사를 했다는 소식이었다. 비바람이 치던 날, 친구는 서귀포 앞바다 바위에서 여느 때와 같이 낚시를 하다가 파도에 휩쓸렸다는 것이다. 말도 없고 조용하던 친구, 큰 키에 멀쑥하게 생겨서 학교에서도 인기가 좋았지만, 친구들하고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있는 것을 즐겼다. 취미가 낚시일 정도다.

갑작스러운 친구의 부고가 입소문을 타고 전해지자 친구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모두 모여들었다. 집 마당은 갑자기 장남을 잃은 부모님의 통곡소리만 채우고 있었다. 제주에서는 집 밖에서 사망을 한 경우 집 안으로 시신을 들일 수 없다는 풍습에 따라 이런 경우 마당에 천막을 치고 장례를 치른다. 울부짖음으로 가득 찬 천막 안 친구의 영정 앞에는 장례식 기간 내내 잔잔하게 이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친구가 떠나는 마지막 길을 동행하기로 했다. 당시는 매장이 보편적이었던 시대라 마지막 손길에 사람이 필요하기도 했다. 장지는 집에서 1시간여를 가야 하는 가족 공동묘지였다. 워낙 많은 친구들이 모이자 부모님께서 친구들 전용으로 버스 한 대를 내주셨다. 생소하고 낯선 분위기가 감도는 버스 안을 가득 메운 우리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늘 보던 창문밖을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었다. 그때 누군가 노래를 시작했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3절까지 꽤 긴 노래였지만 반복되는 리듬 때문이라 그런지 애들이 곧장 따라 불렀다. 히나 둘 따라 부르기 시작한 노랫소리는 어느새 버스를 가득 채웠고, 1시간여를 달려서 장지에 도착할 때까지 무한 반복되었다. 아마 한 곡의 노래를 이토록 부르고 부르고 처절하게 무한 반복으로 부른 적은 없었을 것이다. 구슬픈 단조 멜로디에 독백을 하듯 읊조리면서 부르는 노래는 마치 길거리에 나뒹구는 낙엽의 신세를 얘기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제목도 모르는 노래와 함께 그 친구는 우리들의 기억 속에 묻었다.




노래 제목이 청춘이라는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에 알았다. 우연히 방송에서 나오는 익숙한 멜로디를 듣고 내 눈과 귀를 의심했다. ‘왜 이런 장송곡을 방송에서 들려줄까?’. 그때까지 이 노래는 나에게는 장송곡이었기 때문이다.


내 오해의 근원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친구와의 슬픈 추억이었고, 둘째는 노랫말에 대한 착각이었다.


1절 마지막 부분 "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라는 대목을, 나는 여태까지 불교에서 망자를 지칭하는 영가(靈歌)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니 내게 이 노래는 영혼을 달래는 장송곡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흐르고서야 그것이 죽은 이를 기리는 '영가(靈歌)'가 아니라, 삶을 사랑했던 '연가(戀歌)'였음을 알았다. "응답하라 1988" 다시 보기, 아들과의 추억 쌓기를 하면서다.


가사를 제대로 알고 나니 이 노래는 한층 더 나에게 친밀하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어느덧 60대 중반에 접어든 내가 가고 오면서 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가 되었다.

속절없이 흘러가 버린 청춘과 삶을 애틋해하면서 말이다.


오늘도 수없이 내 입속을 맴돈다..


"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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