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질 때 많이 구경 다니고, 이가 이성 씹어질 때 맛있는 거 많이 사 먹으라. 늙엉 걷지 못하고, 이가 어성 씹지 못허민, 볼게 하고, 돈이 하도 아무 소용없다."
(*제주어: 걸어 다닐 수 있을때 많이 구경 다니고, 치아가 있어서 씹어질 때 맛있는 거 많이 사 먹으라. 늙어서 걷지 못하고, 치아가 없어서 씹지 못하면, 구경할 게 많고, 돈이 많아도 아무 소용이 없다)
94세 노모가 60대 중반인 아들과 며느리에게 건네는 말이다.
구십 평생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니 회한이 남는 듯한 표정이다.
발길을 돌리는 내내 무겁기만 하다.
예전 우리나라 경제가 힘들었던 60~70년대, 그때는 돈이 있으면 소비가 아닌 저축이 먼저였다. 국가에서도 경제개발을 하기 위해서는 재정이 필요한데 돈이 없다 보니 국민들이 보유하고 있는 돈이라도 저축해주기를 바랐다. 그래야 일부라도 경제개발을 위한 국가재정으로 활용이 가능했다. 당시에는 국민들이 돈이 있어서 소비하고 싶어도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이 그리 좋지는 않은 것도 사실이다. .
내가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만 해도 저축은 학교 활동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먼저 모든 학생은 학년이 올라갈때마다 학교에서 저금통장을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매주 하루를 정해서 저금하는 날이 있었다. 단돈 5원이라도 가져와서 저금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선생님이 저금돈을 받고 며칠 후에 금액이 기재된 저금통장을 나누어 준다. 가정형편이 돼서 매주 저금을 한다는 것은 일단 가장 모범 학생이 되었다. 통장이 여러 개 쌓이면 학년 수료식 때, 졸업식 때 표창장, 저축상을 주기도 했다.
아마 우리 자녀들이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인 2000년대, 이때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통장을 만들고 저축하는 제도는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저축을 할 테니까 정기적으로 저금 돈을 달라고 했던 기억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이제는 모두들 가정에서 부모님들이 알아서 적절하게 할 정도가 됐으니 말이다.
IMF 대란은 우라나라의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특히 국민들에게도 경제와 소비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끔 만들었던 계기가 아닌가 한다. 저축을 위한 국민들의 환경과 생각도 그시기에 많이 바뀐 것 같다.
한국은행 자료에 의하면 가계부문의 저축성향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지표인 가계순저축율(국민계정 상에서 세금과 이자 등을 제외하고 개인이 쓸 수 있는 처분가능소득 중 소비지출을 제한 나머지의 비율임)이 1990년 21.2%에서 IMF를 겪은 2000년 6.5%대로 급격히 떨어졌다. 추후 이런 추세는 지속되다가 2020년 이후 10%대를 회복하고 있다.
신용카드 문화는 현금 사용에 대한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소비의 일상화를 촉진시켰다. 현금이 있어야만 소비가 가능한 시대, 현금이 없으면 그나마 신뢰가 있어야 단기간 외상으로나마 소비가 가능한 시대가 있었다. 외상도 현금이 들어오는 월급날은 어김없이 결제 해야한다. 누적되면 월급날 회사 경비실이 시끄러워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현물이 우선하는 시대 손에 잡히는 현금이 있어야만 소비가 가능했기에 소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신용의 시대, 신용카드는 우리 사회에 크나큰 변화를 가져왔다. IMF 사태 이후 2000년대 초반 한창 신용카드 붐이 일었을 때 알바생은 물론 소득이 없는 대학생 등에게도 마구 신용카드를 뿌려댔던 시절이 있었다. 결국에는 그게 일시적으로 소비를 촉진시켜 경기 회복에 도움은 되었지만, 훗날 카드 대란이 발생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신용카드 사용에 맛을 들인 소비생활은 그 후에도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
소비에 대한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변화 온라인 쇼핑 역시 무시할 수 없다. 백화점이나 시장, 매장에 가서 일일이 물건을 확인 할 필요가 없다. 책상 앞에서 인터넷쇼핑을 하면서 클릭만 하면 된다. 거실에 누워서 홈쇼핑을 보면서 선택만 하면 된다. 물건을 받아 보고 아니면 콜센터로 전화만 하면, 지정된 택배가 와서 수거를 해 간다.
신용카드와 휴대전화, 인터넷만 있으면 되는 세상이다.
쇼핑을 위해서 움직일 필요 없이 안방에서 손가락 몇 번 움직이고 전화하면 된다.
우리 주위가 온통 소비를 위해 잘 만들어진 성벽으로 둘러쌓여 있다.
소비는 사회의 흐름이다..트린디하게 살자 ???
"친구 따라 강남간다"는 말이 있다.
소비도 옆집에서 하고, 친구도 하니 나도 따라 한다. 물론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겠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무시하기란 쉽지않다.
몇 해 전 가까운 친지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조금 힘든 시기임에도 가족여행으로 남유럽을 다녀왔다고 자랑 하길래..
"비용도 많이 들었을 텐데.." 부러움 반, 걱정 반의 소리였다.
"남들도 다 하는데 우리도 해야죠, 그리고 다 늙어서는 걷지도 못하니 여행도 못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