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습관이라는 것은 참 무서운 거다. 제주는 모두가 삼다수라 수돗물을 그대로 음용수로 마셔도 된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물이 판매되면서 제주에서도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는 경우가 드물어졌다. 이젠 아예 물을 사서 마시던지 정수기를 설치해서 물을 마신다. 우리 가족들은 비교적 물을 많이 마시는 편이다. 삼다수 2L*6개 한 묶음을 사도 며칠이 못 간다. 물을 사러 다니는 게 귀찮아서 가족 모두의 희망 사항으로 마음껏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정수기를 설치했다. 3년 임대기간이 지났다. 정수기 상태가 멀쩡하길래 필터를 정기적으로 교체하면서 사용중이다. 오늘이 정기점검이 있는 날이었다. 방문 기사가 우리가 사용하는 정수기가 오래되서 단종이고 부품이 없으니 교체를 권장 했던 것 이다.
나는 종종 궁금해지는 게 있다.
도대체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제품이나 기계들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 수명은 누가, 어떻게, 무슨 기준으로 정하는 것일까?
제조사에서 일방적으로 정하는 수명이 과연 타당한가?
수명은 인위적이어야 하는가? 자연적이어야 하는가?
이미 판매된 제품을 단종 처리하고, 부품 생산을 중단해버리는 것은 괜찮은 것일까?
작년 말 정도인 것으로 기억한다.
집에서 사용하는 오래된 압력밭솥이 있다. 언뜻 모양만 보더라도 오래됨을 직감할 수 있다.
그런데 밥을 하면 굉장히 맛있다. 하는 과정이 칙칙하면서 좀 요란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밥맛이 조금 이상해졌다. 심심하다고나 할까?
"여보, 밥맛이 요새는 조금 심심하네..."찰치고, 윤기 나는 맛이 없길래 아내에게 물어봤다.
"응, 그거..밥솥이 오래돼서 고무 패킹이랑 일부 부품이 헐거워져서..공기가 새는 모양이야"
"그럼 고쳐야 하는 거 아닌가?"
"고쳐야 하는데, 너무 오래돼서 부품이 있는지도 모르고, 외제품이라 제주에 A/S 센터가 있는지 몰라"
밥솥을 뒤집었다. 독일 H사의 제품 이었다.
처형이 오래전에 구입했는데 사용을 안 한다고 물려준 거란다.
우리 집에서 사용한 세월만 해도 족히 20년은 되는 듯하다고 한다.
너무 오래되긴 했다. 일단 인터넷을 찾아 보기로 했다.
주부들의 "Must Have Item"이라고 인터넷에서 극찬한다. 비용도 꽤 비싸다.
그런데 비용이 많이 들어서 그런지 부속품만도 판매하고 A/S가 꽤 잘되는 모양이다.
온라인 쇼핑몰에 부품만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곳도 있고, 쿠팡 같은 데서도 구입이 가능했다.
비용도 천차만별 이었다.
몇 시간을 뒤지다 보니 제주에 얼마 전에 생긴 A/S 센터를 찾았다.
아내에게 직보하고 내 검색 능력을 자랑했다.
"그럼, 오늘 내친김에 한번 가볼까요?" 아내는 생각이 날 때 해야 한다.
"글쎄, 위치를 보자, 그리고 오늘 하나?" 어라 A/S 센터가 아파트다. 상가가 아닌 주택이다.
전화를 했다. 언제 올거냐고 들어본다. 주로 방문 A/S를 하는 편이라 사무실에 없을 수도 있다고 한다.
지금 간다고 예약을 하고 출발을 했다.
"이거, 허탕 치는 거 아닌가? 궁시렁 궁시렁 밥솥을 들고 나섰다" 꽤 무거웠다. 양손으로 공손히 들어야 할 정도다."
내비게이션의 도움으로 어렵게 A/S 센터를 찾고 들어갔다.
압력밥솥이 A/S가 필요하다고 얘기를 하고 탁자위에 올려 놓았다.
"밥솥, 이거 오래돼서.고무패킹, 조임 나사가 헐거워서 공기가 새는 것 같은데..수리가 가능한가요?'
하도 오래되고 낡은 제품이라 아내는 조금을 미안한 듯, 쑥스러운 듯 말을 꺼냈다.
"우리 제품은 단종되더라도 부품은 계속 공급되기 때문에 부품이 없어서 수리 못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몇 십 년 전 제품도 다 가능합니다."비용이 문제가 될 수는 있습니다만..
훅하고 던져주는 사장님의 멘트가 무척이나 맘에 든다. 내심 안심 덩어리가 푹 떨어진다.
"이게, 부품들 많이 교체해야 하쿠다"아내가 내민 밥솥을 쭉 둘러보신 사장님의 걱정 어린 반격이다.
"교체할 부품은 전부 이서 마씸?"
"예, 모두 다 있습니다." 당연한 듯, 뭐 그런 말을 하느냐는 듯 대답을 해주신다.
"지금도 이런 제품이 나오나요?"
"예, 요건데 가져오신 제품과 아주 유사한 겁니다. 용량과 디자인이 다를 뿐"
"얼마 정도 하죠? "
" 크기에 따라 60~80만 원 정도 합니다."
허걱이다. 가격이 보통이 아니구나. 그래서 A/S가 잘되는 모양이구나.
우리 부부는 서로 얼굴을 보고 멋쩍은 듯 웃었다.
"얼마 정도 사용하다가 교체할 거니까, 당장 사용하는 데 무리만 없도록 수리해 주세요"
부품 몇 개를 교체하고 받아 드니 밥솥이 더 무거워 진 듯 하다.
새로운 밥솥을 하나 얻은 듯 마음이 가볍고 즐거웠다.
생각지도 않았던 친구한테서 내가 가장 받고 싶었던 선물을 받은 듯 한 기분이었다.
소비자를 배신하지 않는 회사라고 한다.
17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회사라고 한다.
자기들이 생산한 제품은 끝까지 책임을 진다는 회사다.
단종이니 부품이 없다느니 하는 말은 없다.
소비자를 배신하지 않는 회사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글로벌한 전자제품 회사, 자동차 회사들이 많다.
그들은 세계적인 명성과 네임밸류를 자랑한다고 한다.
그들이 외국시장에서도 제품의 단종과 부품 수명을 얘기하면서 A/S를 하고 있는지 무척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