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3형제가 다 모이면 전화한다고 했는데 기다려도 전화가 오지 않길래 톡을 했더니 올라온 답변이다.
"막내가 중간고사도 끝나고 하니까 주말에 누나네 집에 놀러 간대"
"그래, 그럼 주말에 다 같이 모이겠구나, 그럼 그때 통화해서 얼굴이나 보자.."
우리 동그라미가족은 제주에는 우리 부부, 서울에는 자녀들 셋이다.
멀리 떨어져 산지가 짧게는 2년, 길게는 15년이 넘지만 시도 때도 없이 톡으로 서로의 상황을 얘기해 주는 편이어서 오랜만에 만나더라도 떨어져 사는 기분이 덜하다.
딸 둘은 같이 살지만, 셋째는 기숙사에 살기 때문에 시간을 내서 누나네 집을 가야 서로 얼굴을 볼 수 있다.
요즘 대학생들은 이모저모로 참 바쁘다. 기껏해야 한 달에 두어 번 이런저런 이유로 누나네 집을 간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셋이 모이면 집에서 서로 얼굴만 보면서 얘기를 해도 1주일은 거뜬히 지낼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화젯거리가 많은 건지, 우애가 좋은 건지는 모르겠다.
서로가 웃으면서 뭔가는 계속 얘기를 하는데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를 때도 있다.
어쨌든 부모 입장에서 자녀들이 서로 의지하고 우애 있게 사는 것 만치 기쁜 건 없다.
그러기에 우리 부부는 자녀들이 서울에 있어도 걱정을 많이 덜고 사는 편이다. 항상 고마워한다.
어린이날 연휴를 전후해서 어버이날까지 첫째가 집에 왔다간 터다.
모두들 오고 싶어 했지만 다들 근무고, 수업이고 뺄 수 없는 일정이라, 맏이가 대표로 다녀갔다.
대신 전화통만 불이 났다.
오늘은 모두 모여서 집을 다녀간 후일담을 나눌 모양이다.
마침 셋째가 중간고사도 끝나고 하니까 시간적인 여유가 된다고 한다.
막내는 쪽지시험 준비를 하다가 늦게 누나네집에 도착했다. 거하게 기념비적으로 먹을 생각으로 같이 시장을 보러 갔다. 마침 시간이 마트의 영업종료가 다다른 세일타임 인지라 먹고 싶은 것들을 저렴하게 많이 살 수 있다고 한다. 요즘엔 일부러 세일시간인 마감시간을 맞추어서 마트를 가는데 그걸 요즘엔 "마트를 털러 갔다"라고 표현하는 모양이다.
유통기한이 있는 신선식품 같은 경우는 영업시간이 다다르면 세일을 해서라도 모두 팔아야 하는 게 마트의 입장이다. 반면 손님의 입장에서는 저렴하게 물건을 많이 살 수 있어서 좋다. 어쨌든 모두가 win-win이다.
저녁을 먹고 TV를 한참 보고 있는 시간 "사랑해" 카톡소리가 울렸다.
나는 가족단톡의 벨소리는 "사랑해"로 세팅을 해놓았다.
소리만 들어도 가족단톡임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요새는 단톡이 너무 많아서 바쁠 때는 일일이 챙겨보기가 힘이 들 때가 있다.
그래도 가족들의 얘기는 챙겨봐야 하기에 벨소리로 구분할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가족단톡에는 사진 1장이 올라와 있고,
이미 판을 벌였으니 내일 전화하겠다는 글귀만 올라와 있다.
술상을 시작했으니 혹시 실수할까 봐, 혹은 분위기를 깰까 봐 내일 전화하겠다는 통보였다.
애들이 나를 닮아서 그런지 음주가무를 좋아한다. 만나면 술 한잔을 놓고 얘기하는 걸 즐기는 모양이다.
나를 보고 배운 것이니 뭐라고 탓할 수도 없다.
다음날은 일요일이라 늦게 일어나서 TV를 보고 있었다.
시간 개념이 다소 느슨해지는 일요일이라 그저 무심코 있었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어, 영상전화네.."
애들이 어제 하지 못한 얘기를 하려고, 얼굴을 보자고 영상전화를 걸어왔다.
어제저녁에 상황부터, 첫째, 둘째, 셋째..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얼마간의 상황들을 얘기하고 공유를 하고 공감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5명이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하는 시간이라 정신이 없다.
회사얘기, 학교얘기, 친구얘기 소재도 다양하다.
어릴 때부터 하던 습관들이라 얘기를 꺼내고 얘기를 하는데 자연스럽다.
"부모와 자녀들 간의 대화가 없다"고들 하는데 우리는 왜 그렇지 하고 의문을 갖는다.
자녀들이 자라면서 다소 얘깃거리의 방향이나 소재가 달라질 수 있어도 얘기는 마르지를 않는다.
20~30분은 보통이고 길면 시간을 넘겨야 한다.
첫째는 퇴근을 하고 지하철을 타러 가는 시간이면 1주일에 몇 번씩은 전화를 한다. 그냥 혼자 걸어가는 시간이라 이런저런 생각에 전화를 한다고 한다. 한 20분 내외로 통화를 하게 된다. 통화가 끝이 나는 시간은 지하철을 타는 시간이다.
예전에는 둘째가 하던 패턴이다. 회사하고 집이 가까워서 가끔씩은 걸어서 퇴근을 하곤 했다. 그때는 엄마한테 전화를 해서 집 문 열고 들어갈 때까지 통화를 하는 거다. 이제는 회사가 다른 데로 이사를 가면서 어려워졌다. 서로가 닮아가는 모양이다.
막내는 기숙사 룸메이트를 피해서 방밖에 나와서 전화를 한다. 추운 겨울날도 밖에서 추위에 떨면서 엄마한테 전화를 하는 걸 보니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서로의 생활을 공유하기에 오랜만에 만나도 우리는 서로 어색하지가 않다. 그냥 얘깃거리가 이어진다. 오랜만이라는 개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