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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보로 Oct 26. 2022

경계가 없는 방

 취향의 자리를 찾아서 / 목포 샹그리아 호텔

호텔에는 경계가 없었다. 어느 집에 가든 현관과 거실 사이에 있는 경계. '여기에 신을 벗으세요.'라고 말하는 경계. 경계는 없고, 카펫이 바닥을 덮고 있다. 처음 본 낯선 풍경에 살짝 당황했지만 입구에 비치된 1회용 슬리퍼를 보고는 감을 잡았다. '오, 신을 벗고 요걸로 갈아 신으란 거구만.'


호텔방에서 폼롤러라니 여행을 일상처럼 즐기는 딸


부끄럽게도 호텔의 천국 제주에 살면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딱 한번 호텔이라고 되어 있는 곳에 가긴 했지만 상상했던 모습은 아니었다. 그냥 깔끔한 모텔에 간판만 바꿔놓은 느낌. 드라마에서 본 럭셔리한 로비도 카페도 없었다.

민박집을 운영하다 보니 다른 숙소에 가기가 꺼려진다. 우리 집이 중국집인데 뭐하러 남의 집 짜장면을 먹겠는가. 사정상 도내에서 여행할 때도 있지만 어디서 자든 그다지 여행의 기분은 아니다. 서울로 치자면 서울숲이나 올림픽 공원정도 다녀온 느낌. 한두 번 숙박을 할 수도 있지만 당일치기로도 충분한. 그래서 육지 사람들이 큰 맘먹고 제주에 올 때, 우리는 육지로 떠난다.


서울 살 때는 마트에서 귤만 봐도 제주에 가고 싶었다. 호주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게스트하우스 문화에 빠져 일 년에 한두 번은 제주를 찾았다. 하루 종일 스쿠터로 해안도로를 달리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낯선 이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인생을 이야기했다. 회사로 돌아와 야근에 시달리다가도 제주에서 찍은 사진을 보며 눈을 감으면 또 한 번 참아 넘길 수 있었다. 그렇게 4~5년 제주 앓이를 하다 이주해서는, 여행이랍시고 서울행 비행기를 탄다. 관광객들이 제주공항의 야자수를 보고 설레어할 때 드림타워를 올려다보며 '역시 서울이야!'를 외친다.


민박집 손님들이 핫 플레이스며 맛집을 물을 때마다 여간 곤란한 게 아니다. 어느덧 제주인이 되어버린 우린 활동 루트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이 많은 곳은 피해야 할 곳 1순위. 비싸고 시끄러운 곳이다. 인스타 감성 카페, 줄 서서 기다리는 밥집보다 콘센트 많은 카페와 도민 맛집을 찾는다. 그러니 물어봐도 알리가 없다. 물론 그런 곳에 한 번도 안 간 건 아니지만, 우리 역시 검색해서 찾아간다. 당신과 내가 별 차이 없다는 얘기.



가끔 드라마를 보다 '어, 저기, 저기 거기 아냐?' 할 때가 있다. 주로 주인공이 과거를 떠올리거나 미래에 대한 각오를 다질 때 등장하던 낙산공원 성곽길이다. "저기가 우리 집에서 걸어서 5분이면 가던 곳이란 말이지."

집 앞 공원이 순식간에 핫플이 되는 순간. 그걸 보고 잠시 그리운 심정이 되어 버린 내 모습이 우스웠다. 제주에서는 서울을 그리워하고 서울에 가면 제주가 그립다. 누구나 아는 얘기지만 사는 다 건 비슷하고 소중한 것들은 너무 가까이 있어 잘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일상 속에서도 얼마든지 여행이 가능하다. 평소 다니던 길을 벗어나 걷다가, 새로 생긴 북카페에서 추천해준 소설도 읽어보고, 때 마침 좋아하는 북토크까지 열린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문제는 우리가 제주에 산다는 것, 대한민국 관광의 메카이며 한 해 1,200만이 넘는 사람들이 찾는 섬. 그 섬에서 에어비앤비를 하며 늘 관광객을 마주하고 살다 보니 어떤 것이 일상이고 여행인지 아리송한 것이다.

호텔 방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확실한 여행객이 되었다. 경계가 없는 룸이 준 낯섦을 통해 일상에서 여행으로 걸어 들어간다. 호스트에서 게스트로 제주인에서 육지인으로, 그렇게 여행의 시작을 선언했다.  


'지금부터 너희는 여행객이야. 다른 건 모두 잊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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