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소원은 남편이 갖다 주는 월급 받고 살아보는 것이었다. 맞선 당시만 해도 아빠는 경찰청에서 준 공무원 급으로 일하고 계셨지만, 결혼 3개월 만에 직장을 잃었다. 의도치 않게 사기결혼 아닌 사기결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엄마는 결혼과 거의 동시에 생활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미용실을 하면서 얇디얇은 팔목으로 가위질을 하느라 손목이 성할 날이 없었는데, 중국집을 할 때는 남자도 잡기 힘든 '웍'을 잡고 흔드셨다. 팔뚝 여기저기 기름에 대인 자국으로 성할 날이 없었고, 쉬는 날이면 침대에 누워 아픈 손목을 주무르고 계셨다.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 한 칸 한 칸에 부모님들의 모습이 서려있다. 미용실 곁 방 세 살이로 시작해서, 같은 건물의 집주인이 되기까지, 고되었던 만큼 기쁨도 컸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대전집에는 편안한 고향의 감정보다 힘든 시절을 추억하는 애잔한 심정이 담겨있다.
강릉 장모님 댁에 들렀을 때도 추억여행을 갔다.
"여기가 내가 다녔던 학교야. 저기 저 골목으로 가면... 어, 아직도 있네. 저 집, 저기가 우리가 살던 집이야. 요 며칠간 저 집이 꿈에 나왔었거든."
그 시절을 얘기할 때의 니콜 역시 나와 닮아있다. 깔끔하신 장모님 덕에 주인집 보다 좋아 보였던 셋방, 술과 사람을 좋아하셔서 많이 다투셨던 부모님. 감정이 뒤섞여 울다 웃다 하게 되는, 그런 곳이 니콜의 고향이다.
영화 <리셀 웨폰 3>에서 주인공 멜 깁슨과 르네 루소가 흉터를 가지고 자랑하는 장면이 나온다. 멜 깁슨이 요건 요래서 생긴 거야 하면, 르네 루소가 후훗~ 그 정도 가지고 하면서 더 큰 흉터를 보여준다. 흉터 자랑은 스트립쇼로 이어지고 결국 격렬한 러브신이 펼쳐진다.
우리들 역시 서로의 시절을 추억하며 흉터를 내 보였다. "우린 저 집의 1층 셋방에서 시작했어." 하면, "그랬구나, 우리 집 미용실 할 때는 방이 없어서 가벽을 세우고 그 뒤에서 잤어." 하는 식이다.
이렇게 싹튼 사랑은 불타는 감정보다 저 불쌍한 사람이 잘 됐으면 하는 애잔한 마음이다.
밤 산책을 나왔다가 나의 마지막 국민학교까지 걸었다. 평소 같으면 가지 않았을 곳인데 웬일인지 니콜이 먼저 가보자고 했다. 학교 앞의 문방구들은 사라지고 거대했던 운동장은 아담하게 느껴졌다.
캄캄한 운동장에는 저녁 운동을 나온 사람들이 팔을 흔들며 걷고 있었다. 아스팔트를 벗어나 흙으로 된 운동장에 발을 딛는다. 딱딱했던 바닥이 푹신하다. 세월이 흘러 많은 것이 변했지만 이 흙만은 그대로다. 우리 역시 많이 변했지만 그대로 인 것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