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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보로 Nov 01. 2022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법

22.10.31(월)

그동안 나아지나 싶었던 좌측 편두통이 다시 심해지더니 하루 종일 관자놀이 근처가 두근거렸다.

드라마를 보던 중 속보로 떴던 이태원 소식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고, 어느 채널 어느 SNS 건, 하루 종일 관련 내용이 흘러나왔다.


니콜은 새벽 시간에 기사를 접하고 모자이크 처리도 안 된 날것을 보고 말았다. 이게 뭔가 납득이 안되어 몇 번이나 다시 보다가 황망한 마음에 그로기 상태가 되어버렸다. 가뜩이나 우울증으로 힘든 상황에 하루 종일 골골거리는 모습이 안돼 보인다.


"우리 빨리 요가원 가서 털어버리자. 수련에 집중하면 많이 나아질 거야."


낮에는 에어비앤비 손님 때문에 가시리에 다녀와야 해서 처음으로 저녁반에 들어갔다. 저녁반은 아침 시간과 달리 수련 전에 차담을 나누었다. 다른 수련생들도 뉴스 때문에 정신적으로 힘든 상태였는지, 요가원의 공기가 무겁게 느껴졌다.


주말 동안 쉬어서 몸이 많이 굳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는 잘 움직여 줬다. 반면에 땀은 비 오듯이 쏟아졌다. 머리칼을 적시고 얼굴을 타고 흘러 티셔츠까지 흠뻑 젖어간다. 독소가 빠져나가니 머리는 가벼워지고 수련에 집중하면서 산란했던 정신도 안정되는 것 같았다.


수련의 하이라이트는 '살람바 시르사 아사나'자세였다. 물 그 나무 서기와 비슷한데, 손바닥을 땅에 짚는 대신 깍지 낀 손을 머리 뒤에 얹고 팔꿈치와 정수리로 땅을 짚고 서야 한다. '살람바'는 지탱하다 '시르사'는 머리를 의미한다고 한다.

물 그 나무 서기가 건강에 좋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다양한 효과가 있을 줄은 몰랐다. 전신 순환, 기억력과 집중력 향상, 하체 부종 완화, 척추와 복부 근력 강화까지, 앞으로 실력이 늘면 직립보행이 아니라 물 그 나무 서기로 다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전적으로 실력이 늘었을 때의 이야기, 현실은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썩은 고목나무 신세였다. 다행인 건 나 말고도 고목나무가 여러 그루 있어, 요가원 여기저기서 쿵 쿵 소리가 났다는 것. 저녁반은 아직 이렇다 할 고수가 없어, 나 같은 초짜라도 부담이 없다.


비 오듯 땀을 흘리고 집으로 돌아오니 머리가 가볍다. 역시 몸을 굴려야 잡생각이 없어진다. 

이 나라에서 좋은 소식 따위 바라지도 않으니 그냥 하루하루 무탈하게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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