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숫자가 끝나는 날까지 함께 살자"

내가 받았던 가장 아름답고도 아득한 사랑 고백

by 제주껏

"엄마! 어제 하늘에서 반짝이던 물체가 또 떠 있어!"

"정말이네! 저게 뭘까?"

"진짜 UFO 아닐까?"


잘 준비를 마치고 아이와 나란히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며 얘기를 나눈다. 하루 동안 끌어안고 있었던 온몸의 긴장을 풀어내며 크게 심호흡을 한다. 내 몸은 조금 더 바닥 쪽으로 편안하게 밀착한다.


어둠 속에서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이 시간은 이제 나만의 명상과도 같은 잠자리 의식이 되었다. "빨리 일어나!", "하루종일 영상만 보고 뭐하는 거야?", "밥 먹을 땐 가만히 앉아서!" 하루 종일 호통에 잔소리를 이어가던 나도 이 시간이 되면 나긋하고 친절한 엄마로 돌변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우리 딸, 잘 자!", "우리딸은 엄마의 천사인 거 알지?" 술을 마시지 않고도 밤에 취하면 이런 말들이 술술 나온다. 더욱이 그건 진심이다.


이런 현상은 딸도 마찬가지다.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면 "사랑해, 엄마." 하며 침이 범벅이 되도록 볼에 뽀뽀를 해준다.


하루는 아이가 둘리에서 봤던 재미있는 대사라며 한 문장을 말한다.

"아저씨는 병들어 죽고 말 거야."

둘리 만화를 보고 '둘리'에 공감이 되면 어린이, '고길동'에 공감하면 비로소 어른이 된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섬뜩하기 그지없는 말을 서슴없이 뱉는 둘리가 디시 보일 정도다. 딸은 역시 어린이인지 이 대사가 재미있어 혼자 말하고는 낄낄 웃어댄다.


어둠 속에서 나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래, 맞아. 엄마도 언젠가 병들어 죽게 될 거고, 모든 사람이 그렇지."


아이가 웃음을 뚝 그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 이게 아닌데? 하는 표정으로. 그러고는 다시 말한다.


"아니야, 다시 말할게. 우리 오래오래 '숫자가 끝나는 날까지' 함께 살자!"


숫자가 끝나는 날까지... 며칠 전, 아이는 내게 세상에서 가장 큰 숫자는 뭐냐고 물었고 나는 억, 조, 경, 그다음은? 생각하다가 '숫자는 끝이 없'다고 얼버무렸다. 아이는 '숫자를 세고 또 세다가 못 세는 순간의 그 숫자가 끝일 것 같다'고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이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었을까. 궁금해졌다. 아이에게 숫자가 끝나는 날, 그러니까 자신이 셀 수 있는 숫자의 끝은 어디인 걸까? 마음이 뭉클해졌다. 이런 아름답고도 아득한 프러포즈를 내 생애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하늘의 UFO는 여전히 반짝이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 옆에는 세상에서 나보다는 소중한 존재, 사람의 형상으로 이 세상에 내려온 나의 천사가 누워 있었다.


숫자가 끝나는 날은 언제일까? 알 수 없다. 아이는 종종 '나는 9억 살까지 살 거'라며 당차게 포부를 밝혔다. 그러니까 우리가 함께 살 날은 최소 '9억 년' 이상이라는 것. 그거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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