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잇는 여자들 <엄청난 가치> 13강_ 글쓰기
갑자기 생긴 개인 일정들로 4월 수업은 거의 참석하지 못했다. 마음을 다잡고 5월부터 다시 시작. 첫 시간은 ‘글쓰기’였다. 4월에 이미 두 시간 정도 ‘나를 이해하는 글쓰기’가 진행되었고 모두 10회에 걸쳐 글쓰기에 집중하게 된다.
우리의 글쓰기는 ‘고백해’라는 제목의 교재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 교재에는 총 100개의 질문이 존재한다. 나머지는 각자가 채워나가야 한다. 그렇게 시간마다 10개의 질문에 답을 적어야 한다. 의무는 아니다. 떠오르지 않거나 굳이 적고 싶지 않은 것들은 빈 채로 두어도 무방하다. 다만, 선생님은 나중에라도 틈틈이 이 책을 펼쳐 보면서 답을 적을 수 있을 때 빈칸을 채워나가면 좋겠다고 조언해 주셨다.
선생님이 시작 전에 부담을 많이 덜어주었음에도 질문들은 하나같이 무겁거나 막막했다. 좀체 받아본 적 없는 아주 어린 시절 기억에 대한 질문들은 답하기가 어려웠다. 나중에 참여자들과 얘기를 공유하다가 ‘아, 나도 비슷한 기억이 있었지’하고 떠오르는 경우가 많았다. 또, 상처로 남아 꽁꽁 묻어두었던, 이제는 잘 잊고 지낸다고 생각했던 기억들은 차마 구체적으로 적어 내려 가기가 힘들었다. 이 작업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이 아닐까 싶었다.
우리는 영화 <인사이드 아웃>중 핵심기억을 다룬 장면을 같이 보았다. 글쓰기 작업에서 다루는 부분이 바로, 이 핵심기억 또는 장기기억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주인공인 라일리의 처음 기억창고를 보면 대부분 ‘기쁨’의 색인 노랑으로 물들어 있다. 나의 기억창고는 어떤 색깔이 주를 이루고 있을지 궁금했다.
감정을 털어놓아야 하는 글쓰기를 하기 위해서는 내 기억들부터 차분히 훑어보아야 할 것 같아, 집으로 돌아와 <인사이드 아웃>을 다시 보았다. 약 1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인데, 처음 볼 때와는 또 다른 차원의 감동이 느껴졌다. 그때보다 10년을 더 살아온 시간이 더해진 것은 물론, 당시는 라일리를 온전히 나 자신에 대입시켰다면 지금은 나를 포함해 그때는 없었던 나의 아이를 더 많이 떠올리게 됐다.
나는 아이에게 행복한 기억을 심어주고 있을까? 아이가 자랐을 때 나와 함께한 시간들이 힘이 될 수 있는 부모로 살고 있는가? 많은 생각이 오갔다. 동시에 다시 나로 돌아와, 내 안에 있는 아이의 기억을 살폈다. 영화 속 표현대로,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의 기억이라도 기쁨이나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의 감정들이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었다. 이러한 점을 영화가 분명히 시각화해 줌으로써 내 감정을 파악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됐다. (곧 나올 2편에서는 더 많은 감정들이 합류한다는데 더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inside out’
우리말로 풀면 ‘안팎을 뒤집다’라는 뜻이다. 지금 이 프로젝트 내에서 하고 있는 글쓰기 작업이 정확히 속을 뒤집어 바깥으로 꺼내어 놓는 ’ 인사이드 아웃‘ 시간이 아닐까 한다. 솔직히 새로운 질문을 마주할 때마다 낯선 느낌 때문인지 ’ 굳이 이런 것까지 끄집어내야 하나?‘ 하고 내면에서 까칠이가 외친다. 어떤 질문을 앞에 두고는 마음이 먹먹해진 슬픔이가 가만히 질문만 바라본다. 그래도 꾹 참고 과정 하나하나를 따라가 보려 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나만의 ’인사이드 아웃‘ 구슬이 이 책 안에 차곡차곡 채워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