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기록] 송길영 작가의『시대예보: 호명사회(교보문고, 2024)』
내 이름은 언제 불렸을까? 아마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 가족들이 제일 많이 불렀을 것이다. 학생 시절에는 가나다 순으로 순서 매겨진 번호로 불리는 일이 더 잦았다. 가끔 상장을 받을 때 이름이 호명됐는데 상장이라는 물질만큼이나 내 이름이 공간이 울려 퍼지는 것을 듣는 기분이 더 좋았는지도 모른다. 이름은 주로 친밀한 관계에서 주고받았다. 내가 내 이름을 언급할 때에는 태어난 곳이나 학번, 전공학과, 부서명, 직급 등을 이름보다 먼저 말해왔다. 진정한 의미의 호명, 온전한 나를 표현하는 호명을 해본 적도 받아본 적도 거의 없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시대예보: 호명사회(송길영, 교보문고, 2024)』는 ‘시대의 마음을 캐는 마인드 마이너(Mind Micer)'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송길영 작가의 '시대예보' 두 번째 시리즈다. 첫 번째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교보문고, 2023)』에서 사회의 변화에 따라 그에 적응해 가는 개인의 모습을 '핵개인'으로 정의 내리고 그들의 특성을 살펴봤다면, 『호명사회』는 핵개인들이 어떻게 자립을 이뤄내고 연대를 향해 나아가는지, 핵개인들을 구성원으로 한 사회의 모습을 그려낸다.
평소 송길영 작가의 책을 빼놓지 않고 읽었기에, 이번에도 습관적으로 펼쳐 들었다. 소비와 비즈니스 측면에서 분석하는 재빠른 트렌드가 아닌 그의 정체성에도 표현된 인간의 마음을 지긋이 관찰하는 그의 통찰을 읽는 것은, 답안지가 없는 트렌드 문제집을 푸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어렵고 머리가 지끈거리기도 하지만 읽고 난 뒤 나만의 세상 읽는 눈을 갖는 데 도움이 된다.
책에서는 지금 사회의 여러 문제점을 거론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개인들의 새로운 움직임을 말한다. 다양한 개념들 속에서 나는 책 내용의 중심이 되는 세 종류의 사람을 키워드로 뽑아냈다.
1. 나(핵개인)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명확히 아는 사람들이 주목받게 될 것입니다. 또한 다른 이들과의 대등한 관계에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집니다. 더불어 스스로 자립할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새로운 기회를 획득하는 시대가 다가올 것입니다. (p. 137)
자립을 위해서는 우선 나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을 ‘축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동안 '선발'당하기 위한 노력’을 하느라 시간과 열정을 과도하게 쏟아부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화폐가치만큼이나 값어치가 떨어진 시간과 열정, 앞으로는 ‘축적’을 추구하며 자신이 스스로 커리어를 만들어가는 것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2. 단골
각자가 자신만의 ‘원 테이블’ 비즈니스를 운영하며 모든 과정을 스스로 처리하고 스스로 관리해 성실하고 진정성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먹고사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음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축적되는 자기만의 일을 하며 단골을 기반으로 성장하는 것이 미래의 안정성을 높이는 방법입니다. (p. 208)
저자는 무엇보다 ‘단골’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 혼자 잘난 것을 뛰어넘어 나를 찾는 단골이 형성될 때 진정한 자립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단골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자신의 호오, 조예, 전문성, 퍼포먼스가 시계열로 쌓이면 비로소 팬덤이 형성(p.183)”된다고 조언한다. 또 하나,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그의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품성을 갖추는 것 또한 폭 필요한 덕목이다. “AI가 시간을 줄이는 일을 한다면 인간은 시간을 채우는 일을 해야 합니다.”(p. 173)라는 문장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3. 도반
젠더와 그간 살아온 사회적 환경, 그리고 각자가 겪은 삶의 굴곡 역시 저마다의 관점을 형성하는 데 있어 주요한 인자로 작용합니다. 이런 이유로 도반의 모임은 성별, 나이, 경력이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 지혜를 나누고 서로 가르치는 구조를 지향합니다. (p.214)
개인의 자립만큼이나 필요한 것은 ‘연대’다. 저자는 연대를 ‘자신의 의지로 연결된 대등한 네트워크’라고 정의한다. 평등함을 기반으로 취향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가 형성되면서, 자연스럽게 ‘다정함’이 중요해지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요즘 들어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을 주위에서 자주 듣게 되는데 이 역시 인생의 도반과의 관계 맺음이 많아지는 데 따른 현상이 아닐까 싶다.
얼마 전 어떤 단체의 잡지에 글을 기고한 적이 있는데, 나만 빼고 모두 필명을 쓴 것을 보고 흠칫 놀랐다. 나도 필명으로 생각한 이름이 있었지만 왠지 나를 숨기는 것 같아 내세우지 않았다. 그 이유를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는 아직 불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다른 사람을 온전하게 부르겠다는 태도가 부족했던 것이다.
내 이름은 누구의 것인가? 나는 지금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가? 책을 덮으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법적 이름 세 글자를 들여다보면 내 피부처럼 나와 딱 달라붙은 것 같다가도, 지금의 나를 설명하기에는 그 어떤 연관성도 찾기 힘들다. ‘호명’되는 개인으로 살기 위해 도반들의 이름을 불러주기 위해, 먼저 ‘작명’을 해야겠다. “‘선발’이라는 단계가 아닌 ‘선언’이라는 행위를 이해하는"(p. 159) 출발점은 스스로 내 이름을 ‘작명’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