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니가 망할 줄 알았어
제주 태풍이 어떤 느낌인지 묻는다면?자동 세차 기계에 들어가 있는 차와 운전석에 앉아 있는 나를 떠올리면 딱 맞다. 제주의 비와 바람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네가 자연 앞에서 한낱 작은 존재임이 느껴지느냐!” 호통을 치고 떠난다. 그것도 매년.
나는 태풍 예보가 뜨면 부랴부랴 가까운 철물점부터 간다. 엄청나게 크고 두꺼운 비닐을 구매하기 위해서다. 그 비닐로 매장 출입문과 창문을 손타카로 꼼꼼하게 막는다. 비가 들이칠 틈이 없도록. 며칠 간의 임시휴무는 당연지사. 일기예보를 실시간으로 체크하며 태풍아 빨리 지나가라 밤새도록 기도 하는게 일상이었다.
2020년 9월 2일. 제주바이브 지붕이 홀라당 날아갔다. 평생 못 잊을 최악의 생일선물. 제주바이브 슬레이트 지붕 몇 장이 초강력 태풍 ‘마이삭’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덕분에 내가 늘 앉아있는 카운터의 머리 위로 조명보다 훨씬 밝고 환한 자연광 조명이 생겼다. 오픈카 대신 오픈 카운터를 장만한 나의 심정. 이건 아니잖아요! 흑흑흑
마이삭은 내가 제주 입도 후 겪은 가장 세고 강력한 태풍이었다. 방 안에서 웅크리고 일기예보에 귀 기울이며 밤을 지새우는 동안 에어컨 실외기에서 불어온 역풍이 송풍구로 휭휭~ 불어와 불안에 떨게 했다. 동네마다 정전과 단수 소식이 빗발쳤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리 충전해 둔 보조배터리를 옆에 두고 별일 없기만을 기도 했다. 커튼을 걷어 창밖을 보니 비가 옆으로 춤을 췄다. 때론 회오리바람처럼 건물과 집 앞 텃밭, 주차된 차 사이를 쉴 새 없이 휘감았다. 문밖으로 나섰다간 세탁기 탈수 모드를 경험하게 될 것 같은 그런 느낌.
태풍 마이삭이 제주바이브 지붕을 날려버린 건 사방이 캄캄해진 밤이었다. 사실상 예견된 일이었다. 지붕은 제주도가 태풍 직접 영향권에 진입하기도 전에 강풍을 이겨내지 못하고 처마 끝부분부터 펄럭펄럭 날리기 시작했다. 불안해서 119에 신고했고 구조대원 분들이 임시방편으로 지붕을 루프로 고정해 주셨다. 119 출동 당시 엄청난 비바람을 뚫고 제주 방송국에서도 동행했다. 나는 구조대원분들의 만류로 실내에서 기다렸는데 정작 방송국 뉴스 인터뷰는 구경하던 뒷집 할머니께서 하셨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 (우스갯소리지만 친구들은 뉴스 출연 기회를 놓쳤다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아무튼 낮에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날 밤 제주바이브 옆 카페 사장님의 “지붕이 날아갔어요”라는 카톡이 왔다. 바로 달려가지도 못하고 ‘어쩌겠어. 폐업해야지’ 생각했다. 다시 생각해도 자연의 무시무시한 힘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보잘것없는 내가 떠오르는구나.
지붕을 고치는 동안 영업을 할 수 없어서 일련의 소식을 인스타그램으로 알렸더니 가족, 지인, 손님들 모두 난리가 났다. 이후에 손님들이 지붕을 가리키며 “여기가 뚫렸던 거기 맞죠?” 할 때마다 나는 손님에게 “이래도 제주살이 하고 싶으시냐” 반문하며 너털웃음을 짓곤 했다.
아. 이 책의 표지가 바로 그날의 훈장이다. 구멍 뚫린 가게 지붕을 보며 내 가슴에도 휑 구멍이 뚫려 바람이 숭숭 불던 그날.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났고 혼자서 이걸 어떡하나 막막했지만 주변의 따뜻한 도움으로 며칠 만에 보수를 하고 생일은 부모님과 함께 육지에서 보낼 수 있었다.
망연자실해서 성수기 영업도 못 하고 지붕 수리업자만 찾아 헤맸을 걸 생각하니 아찔.
사람이 다치지 않았고 피해복구는 빠르게 되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
비를 쫄딱 맞고서도 무슨일 생기면 또 연락 달라던 말씀에 울컥했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