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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Oct 13. 2016

‘정상’은 20퍼센트, 나머지는 ‘비정상’ 아이들?

너희가 10대를 아느냐 (25)

1     


영수(가명)는 친구와 다투던 중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았다. 주먹이 올라갔다. 다행히(!) 친구 얼굴 대신 나무가 덧대어진 벽채를 향해 있는 힘껏 주먹을 내질렀다. 단단한 벽채가 박살났다. 영수 손등에 피가 철철 흘렀다. 뼈와 근육이 망가졌다.


강철(가명)이는 한 선생님의 훈계를 들었다. 납득할 수 없었다. 친구 잘못까지 덤터기 쓴 것 같았다. 분을 이기지 못한 채 교실로 들어섰다. 문이 눈앞에 보이자 주먹을 날렸다. 살이 찢기고 피가 튀었다. 그 얼마 전에는 강철이가 휘두른 주먹에 유리창이 날아갔다. 힘줄까지 다쳤다.


영수와 강철이 모두 중학생이다. 영수가 2학년, 강철이가 3학년 때 벌어진 일이다. 막강 ‘대한민국 중딩’의 사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북한 인민군 운운하는 우스갯소리가 허수룩히 들리지 않는다. 그들의 폭발적인 충동 성향은 가히 독보적이다. 수년 전 중2 담임을 맡았던 한 동료 교사가 술자리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 반 아이들 중 ‘정상’은 20퍼센트도 되지 않았어. 80퍼센트는 ‘비정상’이야. 당해내기 쉽지 않아!”   

  

동료 교사는 아이들에게 조금 엄한 편이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의 말을 잘 받아주고, 몸과 마음으로 잘 소통한다. 반 아이들과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면서 살가운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런 그조차 조금은 자조적인 어조로 중학교 아이들의 ‘정상’과 ‘비정상’을 했다. 어쩔 수 없는 중학교의 현실인가.

     

2     


10대들은 왜 그렇게 충동적인가. 주변에 있는 10대 자녀나 조카들을 유심히 살펴보라. 수시로 바뀌는 말과 행동이 낯설다. 듬직한 신사이자 요조숙녀 깉던 자녀나 조카가 순식간에 예측할 수 없는 ‘괴물’이 된다.


데이비드 월시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 가족교육부 교수는 <10대들의 사생활>(2011, 시공사)이라는 책에서 10대 문제를 첨단 뇌 과학을 동원해 풀어나갔다. 10대의 수수께끼 같은 행동이 자신들의 의지와 관계 없이 뇌의 지배와 발달적 특성에 따라 일어난다는 게 월시 교수의 주요 논지였다.


월시 교수의 입장은 일종의 뇌 결정론이다. 여기저기서 뇌 연구의 황금기를 말하지만 아직은 빙산의 일각을 조금 훑은 정도라고 한다. 맹신은 위험하다. 그래도 이런 점만 주의한다면 눈여겨볼 대목이 적지 않다. 피니어스 게이지(Phineas Gage, 1823~1860)라는 사람의 사례를 들으면 귀가 쫑긋해질 것이다.     


3     


월시 교수의 책 제3장(‘10대들의 충동적인 생활’)에 게이지에 관한 일화가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그는 성실하고 다정다감한 철도 노동자 주임이었다. 1848년 여름 미국 버몬트 외곽의 철로 공사장에서 일을 하던 그는 급작스러운 다이너마이트 폭발로 치명상을 입었다. 땅에 묻어놓았던 1.4미터짜리 5.9킬로그램 무게의 선로 쇳덩어리가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그의 왼쪽 뺨을 뚫고 머리 위쪽을 관통해 버렸다.


놀랍게도 그는 죽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정신을 전혀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에게 일어난 그 모든 과정을 두 눈을 뜬 채 지켜보고 있었다고 한다. 사고 직후 병원으로 옮겨진 게이지는 몇 주 간의 치료 덕분에 금방 건강을 되찾았다.


게이지는 치료를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났을 즈음 옛 일터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의 동료들이 그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으며 다정다감했던 게이지 주임이 잔인하고 모질며 폭력적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1867년, 게이지를 치료했던 의사 마틴 할로(Martyn Harlow)가 유족들의 동의를 얻어 게이지의 머리를 부검했다. 그는 게이지에게 일어난 일련의 극적인 변화가 뇌 전두엽의 광범위한 손상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전두엽이 손상되면 이성적인 능력과 동물적인 성향 간의 균형이 파괴된다는 게 할로의 주장이었다.     


뇌의 CEO 역할을 하는 전전두엽은 신체와 뇌 영역의 다양한 기능을 조절한다. 전전두엽 피질은 의사결정자이며 뇌의 다른 영역들이 제시하고 있는 여러 가지 선택 사항의 비중을 가늠하는 계획자이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것은 전전두엽 피질은 10대 청소년의 뇌 영역 중 중요한 부분이라는 사실이다. - 데이비드 월시(2011), <10대들의 사생활>, 시공사, 85쪽.     


게이지와 같이 손상을 입지 않더라도 청소년기에는 전전두엽 피질이 지속적으로 변화한다고 한다. 월시 교수는 이를 ‘피니어스 게이지 증후군’으로 불렀다. 청소년기에 나타나는 성격의 극적인 변화, 이를테면 충동적인 면을 전전두엽 피질의 변화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     


4     


어른들이 이해하기 힘든 10대들의 행동 중에 수면만한 게 있을까. 나는 잠을 잘 잔다. 잠을 사랑(?)하므로 교실에서 잠자는 아이들을 비교적 관대하게 바라보는 편이다. 오죽 피곤하면 저럴까 하고 넘어갈 때가 많다.

 

주변 동료 교사나 대다수 어른들은 잠자는 아이들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한다. 잠을 자고, 또 자는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잠이 모자라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다는 식이다. 10대들의 수면 패턴을 알고 나서도 계속 그런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     


사춘기에 들어서면 두 가지 큰 변화가 일어나는데 이로 인해 10대들의 수면 패턴이 바뀐다. 변화 중 하나는 뇌의 수면 조절 방식과 적절한 수면의 양이 변하는 것이고 또 다른 변화는 수면 및 기상 주기가 바뀌어 10대들이 졸음을 느끼는 시간과 의식이 분명한 시간대가 우리가 흔히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시간대와 완전히 반대가 되는 것이다. - 데이비드 월시(2014), 위의 책, 280쪽.   

  

사춘기에는 멜라토닌(수면을 조절하는 호르몬)이 점점 더 늦은 시간에 방출되고 멜라토닌의 수준이 떨어지는 시간도 점점 늦춰진다고 한다. 이에 따라 다른 사람들이 피곤해하는 밤 11시나 12시에 10대들은 말똥말똥해지고, 반대로 일반인들이 힘을 내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오전 8시에 10대들은 녹초가 되기 쉽다고 한다. 월시 교수에 따르면 미국에서 이러한 수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1교시 시간을 바꾼 학교도 있었다.


몇 년 전 9시 등교 정책이 부상한 이후 10대들의 아침을 보장해 주자는 분위기가 널리 공감대를 얻고 있다. 한편에서 많은 어른이 여전히 잠은 의지 부족 탓이라는 말로 10대들을 막다른 곳으로 내몬다. 세상 살 만큼 살아본 내(어른)가 잘 아니 너희는 말만 잘 들으라는 식이다. ‘10대들의 사생활’은 아직도 어른들에게 잡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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