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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Oct 26. 2016

“해 먹는다”, 직업만족도 교장 1위에 숨은 비밀

방향 잃은 교장공모제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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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을 꿈꾸는 교사들이 바라는 최종 목표는 교장이다. 교장은 학교교육과 학교행정의 전권을 행사한다. 업무 압박감이 클 만한데, 직업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2012년 한국고용정보원의 직업 만족도 조사 결과가 눈에 띈다. 초등학교 교장이 1위, 중․고등학교 교장이 49위로 나타났다. 평교사는 90위였다. 2년 간 우리나라 759개 직업의 현직 종사자 2만6000여 명을 대상으로 사회적 평판, 정년보장, 발전가능성, 시간적 여유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주관적으로 평가한 결과였다고 한다.


교장은 교사 교육노동의 핵심인 ‘수업’을 하지 않는다. 학교 내에서 행사할 수 있는 권한, 대외적 위상 등이 높다. 권재원 서울풍성중학교 교사가 <교장 제도 혁명>에서 일갈한 바, “별로 일 안 하고도 월급 받는다. 누구의 제어도 받지 않는 유일한 행위자로서의 권력을 만끽한다. 해 먹는다”.[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2013), <교장 제도 혁명>, 68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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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직’인 교장집단에 균열을 내기 위해 만들어낸 제도가 교장공모제다. 응모 자격을 기준으로 교육계 외부 인사에게 교장직을 허용하는 개방형 외에 초빙형(교장 자격증 소지자 대상)과 내부형(15년 이상의 경력 교원 대상)이 있다. 2007년 최초 시범 도입 당시 교장 자격증 소지 여부나 연공서열보다 교육자로서의 자질이나 역량을 평가해 선발함으로써 공교육 혁신을 이뤄보자는 취지에서 나온 제도였다. 기대감이 높았다.


현실은 바람과 달랐다. 교육부 자료 분석 결과에 따르면, 국공립 초・중・고등학교에 교장공모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2012년 1학기부터 2016년 2학기까지 5년간 임용된 총 2472명의 공모교장 중 교장자격증이 없는 공모제 교장은 94명(4퍼센트)에 불과했다고 한다. 자격증 없는 교장 중 평교사 출신은 64명으로 전체 국공립 교장(9860명)의 0.65퍼센트에 그쳤다. [<주간교육신문> 2016년 10월 14일자 “‘제 역할 못하는’ 교장공모제 허점” 기사 참조]


교장 공모제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교장 공모제의 도입 취지를 무력화하는 <교육공무원 임용령(대통령령 제25890호)>의 공모 학교 지정 비율 제한 규정 탓이 크다. 법 시스템상의 문제가 일차적인 배경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교장 공모제 실시 근거를 담은 2005년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에는 “과열된 승진경쟁을 완화하고 교장 자격증을 가지지 아니한 교원이라도 교장 공모제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한다”라는 내용이 명시돼 있었다고 한다. 교장 자격증과 무관하게 평교사도 얼마든지 교장 공모에 지원할 수 있었던 것.


이명박 정부 시기인 2011년 들어 상황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정부는 교장이 공석 상태인 자율학교의 15퍼센트만 내부형 교장 공모제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이 중 또 다시 15퍼센트만이 교장 자격증이 없는 교사 지원이 가능하도록 <교육공무원임용령>을 바꾸었다. 극소수 평교사만 지원할 수 있도록 교장직 진입 문턱을 높인 것이다.


도입 취지에서 벗어난 교장 공모제의 파행 국면은 전국적인 현상이다. 2015년 7월 1일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9월 2학기 인사를 맞아 도내 49개 교를 대상으로 교장 공모제를 시행하기로 하고 지원자를 접수한 결과 69퍼센트에 해당하는 34개 교에서 1명만 단수 지원하거나 지원자가 0명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64개 교에서 공모를 실시한 올 초도 비슷했다. 평균 경쟁률이 0.98대 1이었고, 15개 교에서는 지원자가 한 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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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공모제의 첫 출발은 좋았다. 열정적이고 개혁적인 공모 교장들 일부가 부임한 학교에서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제도 도입 초기 교장 공모제의 효과를 분석한 일련의 보고서들도 공모 교장들의 직무 수행력을 높게 평가했다.


나민주 충북대학교 교수가 2009년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 의뢰로 작성한 ‘교장공모제의 공모교장 직무수행에 대한 효과분석’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임명제 교장보다 공모제 교장의 직무 수행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교과부 의뢰로 충북대학교 지방교육발전센터가 작성한 ‘교장공모제 학교의 효과 분석’에서도 내부형(85.1), 개방형(83.5), 초빙형(81.7)의 순서로 직무수행 점수가 높게 나왔다. 특히 평교사 출신의 내부형 공모제 교장이 직무수행 만족도도 높은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교장 공모제 시행 원년인 2007년 내부형 공모 교장은 69퍼센트, 초빙형은 22퍼센트 정도였다. 이 비율은 4년 뒤인 2011년에 내부형 17퍼센트, 초빙형 82퍼센트로 완전히 뒤바뀌었다. 2014년 현재 전체 공모 교장 108명 중 평교사 출신의 내부형 교장은 7명에 지나지 않는다.


10년 역사를 넘기고 있는 교장 공모제는 허울만 남아 있다. 일각에서는 교장 자격증 소지자를 대상으로 하는 초빙형이 공모 교장의 대다수를 점하면서 끼리끼리 나눠먹기, 담합 의혹 등의 비판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교장 공모제는 잔여 재직 연수가 오래 남은 ‘젊은’ 교장들의 임기 연장 수단으로도 악용되고 있다. 현행 법률상 교장직은 4년 중임이 가능하다. 임기를 모두 채우면 8년이다. 이 8년에 교장 공모제에 따른 임기는 제외된다. 퇴임까지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이 남은 교장들이 눈독을 들일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교장 공모제의 이면에는 최근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의 ‘과잉 시행령 통치’ 문제도 깔려 있다. 2014년 4월 30일 국회 입법조사처가 교장 자격증이 없는 평교사의 교장 공모학교 비율(15퍼센트)을 대통령령으로 제한하는 것이 교장 공모제 입법 취지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법률 해석을 내놓은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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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공모제 도입의 취지를 살리려면 초빙형이 공모제 교장직 대다수를 점하는 것을 가능케 하고 있는 <교육공무원임용령>을 손볼 필요가 있다. 내부형을 15퍼센트로 제한하고 있는 조항을 없애거나 비율을 조정하는 방법을 쓰면 된다. 교장 공모제 효과 분석 보고서들이 직무 수행력과 학교 구성원 만족도 측면에서 초빙형보다 내부형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 점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구체적인 선발 과정도 고쳐야 한다. 개방형 교장 공모제가 특히 그렇다. 현행 개방형 공모 교장 선발 절차는 1차 학교(3배수 추천), 2차 교육청(2배수 추천) 심사 뒤 교육감이 1명을 최종 선정해 교육부장관에게 임용 추천하는 방식을 따르고 있다.


문제는 1차 심사에서 지원자들의 교육 전문성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검증할 수 있는 절차를 제대로 진행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개방형 교장 공모제를 택하고 있는 마이스터고의 경우 그 특성상 산업체 인사들이 다수 지원한다. 교육 문외한이자 효율성을 중시하는 ‘기업가 정신’의 소유자들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의 교육 철학이나 역량을 학운위가 구성하는 1차 심사위원단이 제대로 검증해 평가할 수 있을까.


학교운영의 세부 영역별로 개방형 교장 공모제 심사 전문가 인력 풀을 구성해 1차 심사 주체로 활용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실제 교장 공모제 추진 시 인력 풀에서 전문가 심사위원을 무작위로 추첨해 이들에게 1차 심사 과정을 맡기는 식으로 하면 된다. 심사 과정의 불공정 시비로부터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6개월짜리 법정 연수를 성실하게 받으면 주어지는 교장 ‘자격증’이 교장 ‘자격’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교장의 자율성이 학교의 자율성”이라는 말이 있으나 현실에서는 교장‘만’의 자율성에 그치고 말 때가 많다. 교육적 열정과 소신으로 뭉친 평교사나 교육계 외부 인사들의 교장직 입직을 보장하는 교장 공모제가 하루속히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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