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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Oct 26. 2016

‘괴물’들

 독재권력과, 이를 추종하거나 방관하는 사람들의 평범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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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의 ‘괴물’ 박정희가 20년 가까이 권력을 차지한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 “캄보디아에서는 300만 명을 쏴 죽이고도 까딱없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폭동이 일어나면 한 100만 명이나 200만 명 처치하는 게 무슨 문제겠습니까”라며 1979년 부마항쟁에 대해 초강경 대응을 추동했던 차지철 경호실장이나, 유신헌법 초안을 마련한 머리 비상한 김기춘 검사 같이 용감하고 유능한 부하와 참모들의 보좌 덕분이었을까.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총탄을 발사했을 때, 차지철 실장은 ‘주군’을 버려두고 화장실로 도망쳤다. 총격을 받은 박정희를 부축한 것은 이른바 ‘대행사’(박정희 대통령의 비밀 술자리를 가리키는 말. 중앙정보부장, 비서실장, 경호실장 등 최측근과 두어 명의 여성이 함께하면서 술과 여흥을 즐겼다고 함.) 진행요원이던 가수 심수봉과 여대생 신재순 두 사람이었다. 박정희 장기 독재 권력의 비법이 부하들의 ‘충성’은 아닌 것 같다.


김재규의 항소심을 변호한 강신옥 변호사는 1980년 1월 21일 자로 ‘사건일기’를 남겼다. 그 중 한 대목에 ‘괴물’ 박정희의 장기 독재 비결이 나와 있다.

    

유신독재를 비판하면서 감옥에 들락거리는 국민은 전체 국민의 숫자에서 별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자유민주주의가 실종된 체제 속에서도 저항만 하지 않으면 큰 불편 없이 살아갈 수 있다. 게다가 지금 한국 사회는 물질적 풍요를 가장 큰 가치로 생각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그것은 박정희의 개발독재가 심은 가치관이다. 독재가 나쁜 줄은 알지만 5·16 이후부터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가치관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왔다. 박정희의 국장이 치러질 때 목 놓아 울던 국민들은 박정희가 오랫동안 자유민주주의를 실종시킨 독재자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었다. 문영심(2013),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시사in북, 2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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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괴물’들이 출몰하고 있다. 익숙한 스테레오타입이다. 통제되지 않은 권력, 무소불위와 불통의 통치자, 국정을 농단하는 비선 라인, 추잡한 공모자들의 돈놀이와 협잡.


그 ‘괴물’들을 키운 것은 “박정희의 국장이 처리질 때 목 놓아 울던” 순진하고 인간적인 국민들, 바로 그 ‘평범한 괴물’들이 아니었을까. 그들은 박정희가 예의 대행사 후에 동석한 젊은 여성과 잠자리를 같이 하고, 자국민 100만 명쯤 죽이는 게 무슨 문제겠느냐는 부하 말에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짓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몰랐을까. 짐작할 만했더라도 더는 알고 싶어하지 않았을 것이다.

     

박정희는 카메라가 돌아가는 동안에 소박하고 선량한, 혹은 자상하고 인자한 모습을 연출하는 데 능숙했다. 밀짚모자를 쓰고 막걸리 잔을 든 채 논두렁에 앉아 농민들과 담소하는 모습으로 수백만 표를 긁어모으는 데 재능을 발휘했다. 반면에 사람들의 눈길을 피할 수 있는 장소에서는 인면수심의 야비한 행동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양면성을 보였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일본군 장교 복장에 일본도를 휘두르며 일본 군가를 부르는 엽기적인 행동도 예사로 했다. - 문영심(2013), 위의 책, 77쪽.

     

그 조그만 ‘괴물’들이 여전히 살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박근혜 대통령은 숙명의 고난을 받는 비련의 ‘유신 공주’일 테니까. 칼 마르크스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모든 죽은 세대의 전통은 악몽과 같이 살아 있는 세대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다!


* 제목 커버의 사진 이미지는 10·26의거 현장 검증을 하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다. <머니투데이>(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6102513303483236&outlink=1)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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