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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Nov 08. 2016

뇌가 없어도 말을 한다?

사람의 두뇌와 언어 능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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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카 실어증과 베르니케 실어증은 실비안 열구를 기준으로 그 앞뒤에 위치하는 브로카 영역과 베르니케 영역에 손상이 생겼을 때 나타난다. 이들 두 영역은 모두 좌뇌에 속한다. 문제는 이들 실어증의 주요 증세가 각 영역의 부분적인 작용 때문에 나타나는 것인지, 아니면 이들 영역을 포함한 좌뇌 부위의 전체적인 작용으로 나타나는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된 설명법에는 크게 두 가지 입장이 맞서 있다. 우리의 다양한 언어 능력을 통제하는 뇌 영역이 서로 다른 특정 부위에 나타난다고 보는 ‘국재화 가설(localization hypothesis)’과, 언어 능력은 뇌 영역 전반에 걸쳐 분포한다고 보는 ‘전체적 가설(the holistic view)’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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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재화 가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언어 장애를 겪는 환자의 98퍼센트 정도가 좌뇌의 ‘깊은 협곡’인 실비안 열구 가장자리 어딘가에 손상이 있다고 본다. 전체적 가설론자들은 언어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부위에 실비안 열구의 양쪽을 감싸고 있는 불특정한 영역까지 포함된다고 본다. 브로카나 베르니케 같은 명칭이 붙어 있는 부위는 그러한 영향이 아주 뚜렷하게 나타나는 곳일 뿐이다.


뒤집어 말하면 전체적 가설을 지지하는 이들은 브로카나 베르니케 영역 이외의 다른 부위들도 미세하기는 하지만 언어 능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언어와 관련된 두뇌 영역이 하나의 연속적인 지형으로 인접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최근에는 언어 능력에 관여하는 두뇌 부위가 어느 특정한 영역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는 전체적 가설이 큰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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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28일 미국 볼티모어의 존스 홉킨스 병원에서 ‘반구 절제 수술(hemispherectomy)’이라는 이름의 특별한 시술이 진행되었다. 수술을 받은 주인공은 레이시 니슬리(Lacy Nissley)라는 어린 소녀였다. 니슬리는 태어나기 전에 두뇌 좌반구가 자리를 잘못 잡는 불행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자라면서 점점 커지기 시작한 우반구가 발작을 일으켜 고통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니슬리의 발작은 점점 심해졌다. 유일한 해결 방법은 발작을 일으키는 뇌의 한쪽, 곧 우반구를 제거하는 길밖에 없었다.


네 명으로 이루어진 존스 홉킨스 병원의 진료팀이 수술을 결정했다. 네 시간에 걸쳐 진행된 수술을 통해 니슬리의 전두엽과 아기 주먹 크기만 한 두정엽이 제거되었다. 그 전에도 존스 홉킨스 병원에서는 약 100여 명의 아이들이 니슬리가 받은 반구절제수술을 받았다. 아이들은 수술 후 재활 치료를 통해 걷거나 말하고 생각하는 법을 성공적으로 익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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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대학의 카뎀(Faraneh Vargha-Khadem) 교수가 조사한 알렉스(Alex)의 사례는 좀 더 극적이다. 여덟 살 반의 나이로 반구절제수술을 받은 소년 알렉스는 수술 전에 말을 거의 하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알렉스는 겨우 네 살 먹은 아이 수준의 단어 이해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알렉스는 좌반구를 제거하고 10여개월이 지나면서 처음으로 한 개의 단어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뒤부터 알렉스의 언어 습득 속도가 급격하게 빨라졌다. 최종적으로 알렉스는 명확한 발음과 문법적으로 정연한 문장 구조와 상황에 적절한 표현을 완전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알렉스를 담당한 연구자들이 여섯 살 이후에 말을 습득한 아이가 그렇게 완벽하게 말을 구사한 예는 없었다고 감탄할 정도였다고 한다.


알렉스의 사례는 앞 장에서 소개한 ‘결정적인 시기 가설’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좌반구가 언어 능력을 좌우한다는 일반적인 상식이 100퍼센트 ‘진실’이라면 열 살 무렵에 완전하게 언어를 구사한 알렉스의 경우를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런데 최근 몇십 년 동안 쌓인 사례는 이런 상식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음을 말해 준다. 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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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안토니오 로페즈 차이(Antonio Lopez Chaj)는 평범한 페인트공이었다. 2010년 어느 날 한 술집에서 싸움에 휘말렸다. 곧이어 경호업체 직원들이 싸움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했다. 차이는 경호업체 직원에게 금속제 몽둥이로 머리를 맞아 큰 부상을 입었다. 살아남으려면 뇌의 25퍼센트와 두개골 일부를 적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차이는 수술을 받았다. 그 충격적인 수술 후 차이는 혼자 걷거나 말을 할 수 없게 돼버렸다. 차이의 뇌에서 적출된 부위는 좌뇌 쪽이었다. 차이는 소송에서 경호업체로부터 600억 원이 넘는 돈을 배상받기로 했다고 한다. 평범한 걷기 능력과 언어 능력을 잃어버린 그에게 600억 원이라는 거액의 돈이 의미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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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좌반구에 있는 브로카 영역이나 베르니케 영역이 언어 구사와 관련하여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연구자들은 그와 같은 영역이 뇌의 특정한 한두 곳이 아니라 수십 곳, 심지어는 수백 곳에 걸쳐 있다고 말한다. 언어 능력의 전체적 가설이 터를 잡고 있는 지점이다.


필립 리버만(Philip Liberman)과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는 미국의 유명한 인지학자들이다. 이들은 공동 연구를 통해 언어를 ‘학습’할 때와 이미 학습된 언어를 ‘사용’할 때 활성화하는 뇌 부위가 다르다고 주장했다. 단어를 이해하거나 범주를 구분하고, 번역 활동을 하거나 문법을 결정하는 등의 구체적인 언어 활동에서도 활성화하는 뇌 영역이 각기 다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첨단 장비를 활용한 뇌 영상 기술을 통해서 언어 사용에 따른 뇌 활성화 양상이 각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점도 증명했다.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뇌의 작용이 ‘가소성(plasticity)’ 때문이라고 말한다. 플라스틱은 일정한 조건에서 자유자재로 모양을 바꿀 수 있다. 인간의 뇌 역시 최초 상태를 끝까지 유지하지 않고 특정 상황에서 달라지는 성질을 갖는다. 어떤 사람이 언어 습득에 가장 적절하게 형성된 뇌의 특정 영역에 문제가 생겨 언어를 상실할 위기에 처하게 되면 뇌의 다른 영역이 그 부분이 담당하는 기능에 끼어들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뇌가 어떤 동일한 기본 기능에 대해 다른 경로를 취할 수 있는 성질이 가소성이다.


 가소성은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들에게서도 발견된다. 수 새비지 럼버(E. Sue Savage-Rumbaugh)는 보노보 ‘칸지’와 ‘타물리’를 대상으로 한 언어 습득 연구로 유명한 영장류 학자이다. 럼버는 보노보들이 어떤 결정적인 단계에 인간의 언어 정보에 충분히 노출된다면 그 수준이 높지 않더라도 인간의 문화 활동에 참여할 수 있을 만큼 뇌가 적응하고 재조직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일군의 연구자들에 따르면 영장류의 뇌가 주변 환경 구성의 조그마한 변화에도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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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연구 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오늘날 두뇌 연구는 매우 활발하다. 뇌를 실험하고 영상으로 촬영하는 기술 또한 과거에 비해 월등하게 나아졌다. 그런데 1000억 개의 세포 조직 덩어리인 사람의 뇌를 샅샅이 뒤지기에는 아직 갈길이 멀다. 뇌에 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어린애 걸음마 수준에 있는지 모른다.


언어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뇌 부위를 콕 짚어 말하는 것도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실어증 환자가 계속 생겨나고 그것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한 뇌 속의 언어 프로그램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일이 전혀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언어 프로그램을 침팬지나 코끼리의 뇌에 이식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침팬지도 사람들처럼 말을 할 수 있을까.


* 제목 커버 배경 이미지는 안토니오 로페즈 차이다. <중앙일보>(http://news.joins.com/article/11970999)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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