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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Oct 31. 2016

학교는 ‘위험한’ 곳이다

민주적 공동체로서의 학교에 대하여

1

     

학교는 ‘위험한’ 곳이다. 언제든 열성적인 ‘나치당원’ 양성소로 돌변할 수 있다. 몇 가지만 있으면 된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다. 1967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팰러앨토의 쿠벌리 고등학교에서 세계사를 가르치던 론 존스 교사가 어떤 ‘위험한 실험’을 통해 이를 입증했다.[실험에 관한 내용은 필립 짐바르도(2007), <루시퍼 이펙트: 무엇이 선량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 웅진지식하우스, 434~436쪽과, EBS <지식채널e>  ‘환상적인 실험’(제1, 2부)을 함께 참조해 정리하였다]


실험의 시작은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영상 시청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제기한 한 가지 질문에서 비롯되었다.

   

“선생님, 나치는 10퍼센트에 불과했는데 왜 90퍼센트의 독일 시민들은 홀로코스트를 막지 않았나요?”

     

학생들은 평범한 독일인들이 비인간적인 유대인 학살에 대해 몰랐다고 말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당시 독일 사회에서 인종차별적이고 사악한 나치즘이 커다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까닭이 무엇이었는지, 왜 대다수 독일인이 평소 이웃해 살던 유대인들이 받은 가혹한 고통에 무심했는지 알고 싶어했다.

    

2

     

존스 교사는 학생들에게 이들 질문에 대한 답을 경험적 학습 방법을 통해 체득하게 하고 싶었다. 그는 다음 주부터 독일인이 겪은 경험의 일부를 모의 실험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수업 시작 당일 교실에서 무조건 복종해야 할 엄격한 규칙 몇 가지를 정했다.

     

가. 모든 대답은 세 단어 또는 그 이하로 제한한다.
나. 대답을 하기 전에 학생들이 책상 옆에 똑바로 서서 ‘선생님’이라고 먼저 경칭을 붙인다.

     

교실 분위기가 서서히 바뀌었다. 말을 잘 하고 지적인 학생들은 두각을 잃어갔다. 말수가 적고 육체적으로 강한 학생들이 교실을 주도해갔다.

 

교실 활동에 ‘제3의 물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파도 모양의 공동체 상징 문안을 만든 뒤, 전체가 하나의 파도가 되어 새로운 운동을 일으킨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손을 구부려 경례하기, 명령에 따라 모두 일제히 외치는 표어를 도입했다. ‘규율을 통한 힘’, ‘공동체를 통한 힘’, ‘행동을 통한 힘’, ‘긍지를 통한 힘’ 등이었다.


공동체의 회원증을 만들어 내집단 의식을 강화했다. 회원증 뒷면에 빨간 십자 표시 회원증을 받은 몇몇에게 ‘갈매기 군단’이라는 이름과 함께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시키는 특명을 주었다. 내부자임을 식별할 수 있는 은밀한 악수방법을 사용했다. 비판자들은 반역죄로 고발되었다. ‘제3의 물결’ 회원들은 표어를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학교 주변에 걸 깃발을 만들고, 신입회원을 가입시키고, 다른 학생들에게 앉는 자세를 가르쳤다.

     

3

    

존스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 실험은 제가 허용하는 이상으로 전개되지 않을 겁니다. 한 사람의 지도자를 통해 어떻게 집단이 좌지우지 될 수 있는지 겪어보는 실험이니까요.”

     

존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제3의 물결’ 추종자들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20명으로 시작한 단체가 곧 100명의 열성적인 구성원으로 채워졌다. 회원이 200명이 되는데 3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일부 지도적인 학생들이 학생들에게 임무를 할당하는 권력을 장악하여 이를 교묘하게 활용하였다. 특별회원카드를 발급했고, 일부 똑똑한 학생들을 교실에서 쫓아냈다. 권위적인 내부자 집단은 소외된 동급생을 괴롭혔다.


실험 5일째 존스는 회원들에게 그들이 정치적 변화를 위해 기꺼이 투쟁할 용의가 있는 학생들을 찾아내기 위한 전국적인 운동의 일부라는 ‘비밀’을 고지했다. 그들을 “이 운동을 돕고자 선발된 정예 집단의 청년들”로 치켜세웠다. 그리고 그다음 날 ‘제3의 물결’ 지도자가 텔레비전에 나와 ‘제3의 물결 청년단’ 결성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알렸다.


다음 날 2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쿠벌리 고등학교 강당을 가득 채웠다. 제3의 물결 회원들은 하얀 셔츠를 유니폼처럼 입고 손수 만든 완장을 찼다. 강당 주변에 깃발을 걸었다. 근육질 학생들이 문 앞에서 보초를 서 있는 사이 존스 교사 친구들이 기자와 카메라맨으로 가장해 강당을 취재하며 돌아다녔다.

     

4

     

마침내 텔레비전이 켜지자 제3의 물결 회원들은 “규율을 통한 힘”이라는 구호를 크게 외쳤다. 화면에서는 유명한 뉘른베르크 집회를 찍은 필름이 돌아가고 있었다. 필름 마지막 장면에 다음과 같은 자막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한다. 자신은 전혀 가담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로써 모의 실험이 모두 끝났다. 존스 교사는 강당에 모인 학생들에게 자신의 처음 의도와 너무 다르게 흘러간 이 실험을 실시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새로운 표어는 “이해를 통한 힘”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여러분은 조종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의 욕망에 떠밀려서 지금 이 상황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몇 년 뒤 존스 교사는 이 실험에 대해 쓴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쿠벌리 고등학교에서 내가 가르친 4년 동안 아무도 제3의 물결 집회에 참가한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가 그것을 잊고 싶어했다.”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를 외면하고 모른 체했던 90퍼센트의 독일인이 보여준 바로 그 모습이었다.

      

5

    

우리는 어떤 학교를 만들고 있는가. ‘학교 공동체’라는 말을 생각한다. 개인이나 개인주의를 인정하지 않는 극단의 공동체주의는 한 사회를 전체주의와 독재 체제로 향하게 한다. 미국 교육학자 넬 나딩스는 공통 교육(common education)과 강한 일체감, 공동체 의식이 파시즘의 핵심적 특징이라고 주장했다.


공동체 자체는 지고의 가치를 지닌, 최후의 목적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학교 공동체를 지나치게 ‘숭배’하고 있지 않은가. 과정과 수단으로서의 공동체론을 떠올린 듀이의 말을 통해 이 문제를 돌아보자.

      

만약 우리가 여하간 공동체의 이상이 이미 저 위에 있다고-신에 의해서든 특정한 이데올로기에 의해서든 특정한 지식 체계에 의해서든 구성되어 있다고-가정한다면, 교사의 과업은 거의 무수한 전달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적 공동체(democratic community)라는 것이 끊임없이 구성하는 작업이라고 말한 듀이의 생각에 우리가 동의한다면, 교사의 과제는 의사소통이 필요하고, 공통의 관심사를 만들어내며 확장하고, 반성과 숙고를 격려하는 일일 것이다.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공통의 지식 체계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기 위해 의사소통이 필요한 것이다. - 넬 나딩스(2016), 앞의 책, 103~104쪽.

     

듀이가 말한 “끊임없이 구성하는 작업”으로서의 ‘민주적 공동체’가 존스 교사가 ‘제3의 물결’ 실험을 마무리하면서 강조한 “이해를 통한 힘”이 아닐까. 다만 그 민주적 공동체는 개인을 소거하지 않는다. 그런 학교, 그런 교사가 필요하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이미지는 뉘른베르크 전당대회 자료 사진이다. 인터넷 <나무 위키>(https://namu.wiki/w/%EB%89%98%EB%A5%B8%EB%B2%A0%EB%A5%B4%ED%81%AC%20%EC%A0%84%EB%8B%B9%EB%8C%80%ED%9A%8C)에서 가져왔다. 레니 슈펜탈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역사상 가장 강력한 선전 영화라는 평을 받는 <의지의 승리>는 1934년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나치당)의 전당대회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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