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법, 인민의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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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1862)가 쓴 <시민의 불복종>은 국가 권력의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 책이다. 소로는 이 책에서 인두세 납부를 거부하며 수감된 사건을 통해 개인과 국가 사이의 관계를 성찰하게 한다. 일부에서는 세계의 역사를 바꾼 책으로 꼽는다.
소로는 명문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다. 부와 명성이 보장되는 ‘스펙’이었다. 그러나 소로는 화려한 생활을 버리고 고향(메사추세츠 주 콩코드)으로 돌아갔다. 글을 쓰며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살았다.
2권의 대표작이 소로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렸다. <시민의 불복종>이 하나다. 나머지 하나는 <월든>이다. 월든 호숫가에서 통나무집을 짓고 생활한 2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한 기록으로, 19세기의 가장 중요한 책들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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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인이란 보다 경험이 많고 보다 현명해진 야만인일 따름이다.”
끊임없는 사색과 성찰을 중시하는 소로의 면모가 잘 드러나는 말이다. <월든>과 <시민의 불복종>을 보면 인간과 문명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을 중시하는 사상가로서의 풍모가 읽힌다.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시민의 불복종>, 21쪽)라는 말에서 이상주의자적인 모습이 보인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도 남겼다.
불의의 법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 법을 준수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그 법을 개정하려고 노력하면서 개정에 성공할 때까지는 그 법을 준수할 것인가, 아니면 당장이라도 그 법을 어길 것인가? - 헨리 데이비드 소로(2011), <시민의 불복종>, 36쪽.
보통 사람들은 ‘불의’의 법이라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법이 문제가 있을지라도 그것이 개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법치주의 사회의 시민이 지켜야 할 도리라고 여긴다.
소로는 이러한 시각에 비판적이었다. 그는 불의로서의 법이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불의를 행하는 하수인이 되라고 요구하면 법을 어기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가령 노예제도 폐지론자였던 그는 노예제도를 유지하고자 했던 당시 매사추세츠 주 정부를 지원하는 일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이것만은 알고 있다. 즉, 이 매사추세츠 주 안에서 천 사람이, 아니 백 사람이, 아니 내가 이름을 댈 수 있는 열 사람(열 사람의 정직한 사람)이, 아니 단 한 명의 정직한 사람이라도 노예 소유하기를 그만두고 실지로 노예제도의 방조자의 입장에서 물러나며 그 때문에 형무소에 갇힌다면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폐지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시작이 아무리 작은 듯이 보여도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번 행해진 옳은 일은 영원히 행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껏해야 거기에 대해 토론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하면서. 개혁은 수십 개의 신문을 붙들어 일거리를 주고 있으나 단 한 명의 사람도 붙들지 못하고 있다. - 위의 책, 40~41쪽.
소로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오만해 보일 정도로 강경하고 원칙론적인 도덕주의자로서의 소로의 모습이 그려진다. 19세기 당시 미국 지식인들 사이에 유행했던 ‘한 사람으로서의 다수(majority of one)’론의 영향이었을 수 있다. ‘한 사람으로서의 다수’는 단 한 사람이라도 도덕적으로 우위에 서 있으면 그가 이미 다른 사람들을 이길 수 있다는 뜻을 갖고 있는 어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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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는 <시민의 불복종> 첫 문장을 “나는 ‘가장 좋은 정부는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라는 표어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며 그것이 하루빨리 조직적으로 실현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라고 적었다. “정부는 기껏해야 하나의 편법에 지나지 않”(위의 책, 17쪽)으며, “정부 자체가 남용되거나 악용되기 쉬운 것”(위의 책, 18쪽)이라고도 했다. 마치 국가(정부) 부정론자처럼 보인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 1964~1920)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국가를 “특정한 영토 내에서 정당한 물리적 폭력의 독점을 성공적으로 관철시킨 유일한 인간 공동체”로 정의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지켜주는 따뜻한(?) 이미지 대신 ‘폭력 독점권’이라는 무시무시한 내용으로 채워진 국가상이 낯설다.
국가와 주권, 폭력은 동일한 근원에서 생겨났다. 국가는 폭력으로부터 국민의 안전과 질서를 보호하기 위해 수립되었다고 하지만, 역으로 국가 자신을 제외한 어떤 폭력도 용납하지 않는 유일한 폭력기구야말로 국가이며, 그 원리가 주권이다. 경찰과 군대는 법과 질서의 보호자를 자처하나, 따지고 보면 이 두 가지야말로 유일하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허락된 국가기관들이 아닌가? - 이진경 외(2016), <국가를 생각하다>, 북멘토, 93쪽.
이탈리아 북부의 지방 도시 피렌체에서 활동한 정치인이자 정치사상가인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1469~1527)는 ‘좋은 국가’의 주요 토대를 ‘갈등’에서 찾았다고 한다.(아래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과 관련된 내용은 위의 책 참조) 그는 자유를 열망하는 인민들이 정치에 참여할 때 좋은 국가, 강한 국가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사회세력들 사이의 내분과 갈등이 인민의 자유를 더욱 잘 보장하는 생산적 결과를 산출할 수 있을 때 그것이 좋은 국가의 토대가 된다고 보았다.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내분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제도를 통해서 일시적‧잠정적 균형을 이루게 되는 ‘공존 가능한 갈등’이다. 그리고 갈등과 내분 자체가 좋은 국가, 강한 국가의 원동력인 만큼 이러한 시스템 안에서는 내분과 갈등이 완벽하게 봉합되거나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제도에 의한 조정을 통해 형성괸 균형이 잠정적이었던 만큼 갈등은 다시 발생하고 있으며, 내분은 새롭게 분출할 수 있다. 갈등과 내분은 또 다른 방식으로 표출되고, 제도에 의한 조정 과정이 진행되며, 그 결과 또 다시 새로운 잠정적 균형이 제도와 법률의 개혁을 통해 달성된다. - 위의 책, 132쪽.
마키아벨리는 <로마사논고>에서 “인민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국가는 단시일 내에 엄청나게 성장하며, 군주가 계속 통치하는 국가보다 훨씬 더 많이 성장한다”라고 말하며 “인민에 의한 정부가 군주에 의한 정부보다 낫다”라고 말했다. 한 나라의 민주주의가 그 사회의 품격과 개인의 삶의 수준을 가늠하는 기본 잣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입니다. 1856년에 찍은 은판 사진이라고 합니다. 인터넷 '위키백과'(https://ko.wikipedia.org/wiki/%ED%97%A8%EB%A6%AC_%EB%8D%B0%EC%9D%B4%EB%B9%84%EB%93%9C_%EC%86%8C%EB%A1%9C)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