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신화는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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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교육심리학자 알피 콘은 <경쟁에 반대한다>에서 ‘협력’이 ‘경쟁’보다 생산적임을 보여주는 수많은 연구들을 하나하나 검토했다. 그 결과 월등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경쟁이 필요 없을 뿐만 아니라 대체로 경쟁이 존재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아 보인다고 결론을 내렸다.
경쟁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회를 살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서로 경쟁하도록 교육을 받는다. 경쟁이 더 나은 성과를 가져온다고 믿는다. 우리는 ‘1등’을 우상화한다. ‘우수’한 성과를 내는(낸다고 판단되는) 사람이 ‘상장’과 ‘상금’을 받는 일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승자독식과 위계구조에 터 잡은 서열주의를 자연스럽게 내면화한다. 그런 우리에게 콘의 주장은 낯설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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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을 따라 협력의 ‘생산성’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들을 만나 보자. 먼저 문제 해결이나 과제 완수와 같은 상황에서의 사례들이다.
마거릿 클리퍼드(Margaret M. Clifford)는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어휘 습득을 위한 경쟁적 게임의 효과를 살펴보았다. 게임에서 이긴 몇몇 아이들에게만 약간의 흥미를 느끼게 하는 것처럼 보였을 뿐 단어를 배우고 기억하는 능력이 별로 향상되지 못했다고 한다.
모턴 골드먼(Morton Goldman)과 그의 동료들은 철자 바꾸기를 하는 대학생들이 경쟁보다 협력을 할 때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바이네 워키(Abaineh Workid)는 고등학생들이 카드놀이를 할 때 협력이 경쟁보다 생산적이었다고 보았다.
이는 모턴 도이치가 1948년에 실시한 일련의 실험 결과와 동일한 것이었다. 도이치는 25년 뒤 같은 주제를 연구하면서 그가 이전에 내린 결과와 똑같은 13건의 다른 연구물을 인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들 13건의 연구는 하나같이 경쟁의 좋지 않은 결과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미네소타 대학교 소속 교육자이자 사회심리학자인 데이비드 존슨과 로저 존슨 형제는 교실에서의 경쟁과 협력에 관해 미국에서 가장 많은 연구와 저술 활동을 한 학자들이다. 100여 권의 책과 논문을 통해 협력과 경쟁을 상호 비교했는데, 1981년에 출간한 메타분석(meta-analysis; 다른 연구 결과에 대한 분석)이 유명하다.
북아메리카에서 행해진 경쟁, 협력, 독자적 구조 아래서의 성취나 수행능력에 대한 연구 중 그들이 찾아낼 수 있었던 122건(덧붙이자면 그들이 분석한 1924년부터 1980년까지의 연구 중 오직 한 건만이 도이치의 목록과 중복되었다)을 모두 검토하였다. 그 결과는 주목할 만하다. 협력이 경쟁보다 더 많은 성과를 거둔다는 연구가 65건, 그 반대의 경우가 8건이었으며, 통계적으로 중요한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 36건이었다. 또한 독자적으로 할 때보다 협력을 통해 일할 때 더 높은 성과를 올린다는 연구가 108건, 그 반대가 6건,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은 42건이었다. 모든 분야와 연령층에서 협력이 더 우월한 것으로 평가됐다. - 알피 콘(2009), <경쟁에 반대한다>, 70~71쪽
존슨 형제에 따르면 협력은 집단이 작을수록, 임무가 복잡할수록 더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고도의 문제해결능력이 필요할 경우에 더 그랬다. 수행하려는 일이 상호의존적일수록 협력이 더 큰 도움이 되었다.
경쟁이 좀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다만 이때는 기계적인 판독작업이나 물건 옮기기 같은 아주 간단한 작업이나 상호의존이 전혀 필요 없는 일에 한정되었다고 한다. 콘은 이러한 ‘주장’도 의심스럽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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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 완수에 따른 보상의 분배 방식에서도 경쟁보다 협력의 효과가 우월했다. 콘은 보상의 분배 방식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었다. 대부분의 경연(시합)에서와 같은 승자 독식이 있다. 성과에 비례하는 배분 방식, 균등 배분 방식도 있다.
상식적으로 우리는 경쟁이 성과를 늘린다고 추론한다. 이 때문에 승자 독식이나 성과 비례 배분 방식이 사람들로 하여금 더 열심히 일하게 할 것으로 본다. 그럴까.
콜롬비아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6개의 실험이 있었다. 일본어로 된 시 해석과 항아리 속에 들어있는 젤리 개수를 추산하는 등의 과제들이었다고 한다.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가.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과제(상호의존도가 낮은 과제)에서는 보상의 분배 방식이 일을 하는 데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다.
나. 균등 배분 방식을 썼을 때보다 성과 비례 배분 방식을 활용할 때 더 생산적이라는 증거는 전혀 없었다.
다. 일의 성패가 협동에 달려 있는 경우(상호의존도가 높은 과제)에는 균등 배분 방식이 최고의 결과를 가져왔으며, 승자 독식이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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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성과를 양적으로 측정하는 경우의 협력과 경쟁을 비교한 것이다. 경쟁 방식이 절대적으로 열세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성과를 질적으로 측정하는 차원에서는 경쟁의 심각성이 더 커진다고 한다. 달리 협력의 우수성이 확연하게 드러난다는 것.
경쟁적인 상황보다 협력적인 상황에서 더 복잡한 결과물이 만들어진다. 경쟁적이거나 독자적인 상황에서 개별적으로 추론하는 것보다 협력 집단 안에서 이루어지는 토론 과정이 질적으로 더 높게 인지능력을 계발하고 발전시킨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한 실험에서 경쟁은 창의적인 문제해결능력을 저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83년 독일 초등학교 4학년을 대상으로 행한 실험에서도 경쟁이 학교 성적에 부정적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협동수업의 긍정적 효과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는 차고 넘친다. 존슨 형제가 1985년에 인용한 연구 결과들을 보면, 협동 수업이 재능 있는 학생들에게 이익이 된 경우가 3건, 별 차이가 없었다는 결론은 1건이었다고 한다. 손해를 보았다는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미국 중서부 75개 학교의 초등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같은 결론이 나왔다. 능력이 높든 낮든 모든 학생들이 서로 다른 수준의 협동 학습 그룹에 참여하여 더 잘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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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직장에서는 경쟁이 협력보다 훨씬 더 큰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콘에 의하면 이 문제와 관련된 연구 역시 학습에 관한 연구 결과와 일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협력의 이점이 크다는 것.
1954년 피터 블라우(Peter Blau)가 실시한 고전적인 연구를 보자. 블라우는 직업소개소의 상담사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비교했다. 한 그룹은 치열한 경쟁을 하는 상담사들로, 다른 그룹은 상호 협력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그룹 상담사들은 남보다 더 많은 성과를 올리기 위해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공개해야 하는 모집 공고를 몰래 감추었다고 한다. 두 번째 그룹 상담사들은 일자리에 관한 정보를 공유했다. 두 번째 그룹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소개하는 결과를 얻었다.
1979년 텍사스 대학의 로버트 헬름라이히(Robert L. Helmreich)와 그의 동료들은 성취도, 업무 지향성, 숙달 정도, 도전적 과제의 선호도와 경쟁심 사이의 관계를 조사해 발표했다. 과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남성 103명을 대상으로, 그들의 논문이 동료 과학자들에게 얼마나 자주 인용되었는지를 기준으로 업적이 평가되었다. 그 결과 가장 많이 인용된 이들은 업무와 숙달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경쟁심은 낮은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경쟁심의 긍정적 효과를 기대한 헬름라이히는 놀라워하면서 심리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번 더 조사를 실시했다고 한다. 결과는 똑같았다. 헬름라이히는 남성 기업인을 대상으로 한 연봉을 통한 성취도 측정 연구, 1300명의 남녀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평균학점을 이용한 성취도 측정 연구를 연이어 실시했다. 그 결과 경쟁심과 성취도 사이에 부정적인 연관관계가 존재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그는 특히 기업인에 대한 연구에 대해 “흥미”를 느꼈는데, 왜냐하면 이 실험에 의해 “보통 성공적인 기업인은 매우 경쟁적이다”라는 고정관념에 의문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동료인 자넷 스펜스(Janet Spence)가 말한 대로 “경쟁심이 기업가로 성공하기 위해 가져야 할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주장을 극적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 위의 책, 77쪽
헬름라이히의 연구는 1985년까지 진행되었다. 모두 3건의 연구가 있었다. 초등학교 5, 6학년을 대상으로 경쟁심과 표준 성적을 비교한 연구, 비행기 조종사들의 경쟁심과 성과의 관계에 대한 조사 연구, 항공사 예약 담당자들의 경쟁심과 업무 능력에 관한 연구 들이었다. 이들 연구 결과는 한결같이 경쟁심과 성적, 성과, 업무 능력이 모두 부정적 관계를 맺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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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은 경쟁이 돈이나 성적 등 여러 가지 외적 동기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주장한다. 이 주제를 연구한 에드워드 데시(Edward Deci)는 “외적인 동기를 바탕으로 보상을 받기 위해 하는 행동은, 행동 그 자체와는 별개의 것이다. 경쟁의 전형적인 보상은 승리(타인이나 다른 팀을 패배시키는 것)이므로 경쟁 자체가 바로 어떤 활동에 있어서 외적 동기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진정한 내적 동기는 일 자체를 즐기게 한다. 무언가를 스스로 하게 만든다. 경쟁은 이러한 내적 동기를 감소시키는 경향을 보인다. 경쟁(그리고 이에 따른 보상으로서의 승리)이라는 외적 동기가 작동하면 이전에 별다른 보상 없이도 하던 활동을 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면 할 수 없게 된다.
마지막으로 존 홀트(John Holt)의 말을 음미해 보자. 경쟁으로 인해 내적 동기가 감소되는 경향이 교실에서 두드러진다고 하면서 콘이 인용한 구절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배움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학생들에게 하찮고 경멸스러운 보상들-‘참 잘했어요’라는 도장, 100점이라는 표시를 한 채 벽에 붙어 있는 시험지, A라고 쓰여 있는 성적표, 우등생 명단,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학생들만 가입할 수 있는 클럽의 열쇠, 즉 간단히 말하면 다른 학생들보다 내가 좀 낫다는 저열한 만족감-을 장려하고 강요하는 것으로 아이들의 그 의지를 꺾어버린다. - 위의 책, 88쪽.
* 제목 커버의 배경 인물은 알피 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