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10대를 아느냐 (32): 학생의 정치 행위 금지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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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중고등학교 학교생활규정, 이른바 ‘교칙’에는 ‘학생 생활 선도 기준’이나 ‘학생 생활 규정’ 따위의 이름을 달고 있는 규정이 있다.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징계 규정이다. 대개 징계 심의 대상이 되는 행위 내용과 그 행위의 범주, 징계 수위 등이 표로 정리되어 있는 형태를 띤다.
징계 규정이니 일종의 ‘법’ 같은 것이다. 법으로서의 기본적인 요건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당연히 보통 법들이 그래야 하듯이 명확성의 원칙이나 과잉금지의 원칙 등 우리 헌법이 하위 법률들에 강제하는 기본적인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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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해 동안 상당수의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학교생활규정 컨설팅을 위해서였다. 생활규정 전반을 살펴 반인권적이거나 시대 현실에 맞지 않는 조항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이를 위해 해당 학교와 교사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일이 컨설턴트들의 주된 일이었다.
대다수 학교들이 학생들에게 민감한 용의나 복장에 관한 규정들을 전향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수의 학교들이 문제 투성이의 징계 규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법으로서의 기본적인 원칙들이 확실하게 적용되었다고 보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징계 규정을 더 꼼꼼히 살폈다.
‘예절’, ‘준법’, ‘수업’, ‘근태’ 등으로 구분되는 행위 범주는 대다수 학교별로 큰 차이가 없다. 문제는 징계 행위 내용과 이에 따른 징계 수위다.
용의가 단정치 못하거나 언행이 불손한 학생을 학교가 어떻게 처리하는지 아는가. 대개 ‘주의’나 ‘교내봉사’ 징계가 내린다. 예의가 바르지 못한 학생도 이와 비슷하다. 다만 교사에게 불경한 언행을 한 학생은 징계 수위가 높다. 최소 ‘주의’, ‘교내봉사’를 거쳐 ‘사회봉사’와 ‘특별교육’, ‘출석정지’까지 내릴 수 있다. 언행이 불손한 학생이나 교사에게 불경한 언행을 한 학생 모두 ‘괘씸죄’ 해당자일 텐데 징계 종류가 들쭉날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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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행위’라는 징계 행위 범주 항목이 있다. 징계 최고 수위인 ‘퇴학’ 조치가 가능한 항목이 다른 범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다. 구체적인 행위 내용을 보면 ‘학생을 선동하여 질서를 문란하게 한 학생’, ‘불법집회 또는 써클에 참석하거나 가입한 학생’, ‘허가 없이 써클을 조직 운영하여 교칙을 문란케 한 학생’, ‘학생을 선동하여 질서를 문란하게 한 학생’, ‘동맹 휴학을 선동, 주동하거나 동참한 학생’ 등이다. ‘정치 관여 행위’가 징계 행위 목록에 포함되어 있는 학교도 있다.
집단행위 내 구체적인 행위 내용들을 표현하는 단어들(‘선동, 문란, 불법, 주동, 정치 관여’), 이들 행위를 금지시킴으로써 얻고자 하는 목표 상태(‘질서, 교칙 유지’), 그리고 각각의 행위들에 대한 처벌 수위(타 행위 범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최고 수위 징계를 내릴 수 있는 항목이 많음) 등을 종합해 볼 때 학생들의 집단 행위에 대한 학교의 알레르기적인 반응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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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러한 히스테리컬한 태도의 기저에 학교와 교사들의 ‘두려움’이나 ‘공포’가 자리잡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를테면 집단적인 ‘정치 공포증’이 아닐까. 그것의 영향에 따른 결과는 심각하다. 정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가 비청소년 세대의 의식을 지배하면서 오늘날 10대 청소년들의 사고와 표현의 자유, 행동의 자유를 심대하게 침해하고 있다.
학교생활규정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많은 학교가 학생의 정치 관여 행위에 대해 최고 퇴학 처분까지 내릴 수 있는 규정을 학교생활규정에 버젓이 실어놓고 있다. 상위법적 근거가 있을까.
얼마 전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에 있는 전국 단위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인 민족사관고(민사고)에서 흥미로운 일이 있었다. 일부 학생들이 지난 12월 3일 서울 광화문 등에서 열린 ‘박근혜 즉각 퇴진 6차 촛불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외출·외박을 하려 하자 학교측이 이를 막았다고 한다. 주말에 집회 참여를 허락해준다면 이것이 선례가 되어 앞으로도 계속해서 시위 참여를 허락해주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정진곤 교장이 내세운 법적 근거가 <교육기본법> 제6조였다고 한다. 정 교장은 이 조항을 학생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것으로 이해하여 정치적인 활동을 허락해줄 수 없다는 판단의 근거로 내세웠다.
<교육기본법> 제6조는 ‘교육의 중립성’ 조항이다. 다음과 같이 2개 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① 교육은 교육 본래의 목적에 따라 그 기능을 다하도록 운영되어야 하며, 정치적·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 된다.
②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한 학교에서는 특정한 종교를 위한 종교교육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①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②는 종교적 중립성을 규정한 것이다. 예의 민사고와 관련된 조항은 ①이다. ‘정치적 중립성’이 본질적으로 표방하는 의미를 중심으로 해석하면, ①은 교육이 정치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을 경계하는 내용일 뿐이다. 학생들의 정치 활동을 금지하는 항목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민사고 정진곤 교장이 잘 몰라서 그런 엉뚱한 논리를 내세웠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나는 그가 교육의 중립성을 명시한 <교육기본법> 제6조 제1항이, 교육이 정치적 외압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 제31조 제4항(“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이 위임한 사항 중 일부를 구체화한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으로 믿는다. 정 교장은 이명박 정권 시기인 2008~2009년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을 지낸 교육 전문가이다.
그런 점에서 학생의 정치활동 금지 운운한 정 교장의 사후 해명은 고의적인 거짓이나 겁박에 불과해 보인다. 기실 학생의 정치 관여 행위를 금지하는 법적 근거는 없다. 앞서 본 <교육기본법> 외에 <초‧중등교육법>이나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초‧중등교육법시행규칙> 등 초‧중등교육 관련 법규 어디에서도 학생의 정치 행위 금지를 명시한 대목을 찾아볼 수 없다.
* 민사고 관련 내용은 <한겨레> 2016년 12월 7일 자 기사 ‘촛불집회 학생 참여 막은 민사고 교장 사임 뜻 밝혀’를 참조하였다.
* 다음 글에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한 역사적인 배경, 왜곡된 정치적 중립성 논리의 이면을 살펴보겠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이미지는 민사고 홈페이지(http://www.minjok.hs.kr/index2.html) 일부 캡처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