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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Dec 20. 2016

그들은 '생각'과 '말'을 처벌한다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의 진실을 다룬 <이카로스의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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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는 1960년대 후반경 시인 김수영과 평론가 이어령이 문학의 참여‧순수론과 지식인의 사회 참여 문제를 놓고 벌인 논쟁에서 나온 주요 열쇳말이었다. 당시 김수영과 이어령은 ‘에비’의 실체 유무를 놓고 뜨거운 논전을 벌였다.  

   

에비에는 몇몇 가설적인 어원론이 따라다닌다. 그 중 유력한 가설이 임진왜란 기원설이다. 당시 왜군들은 자신들의 전과를 올리기 위해 죽은 조선인의 귀와 코[耳鼻(이비)]를 베어 간 경우가 많았다. ‘에비’는 그 ‘이비(耳鼻)’에서 일부 모음이 변동하면서 생긴 것으로 해석된다.   

   

실생활에서 에비는 어른이 우는 아이를 강박하여 달래거나, 심심해하는 아이를 놀라게 할 때 쓰인다. 아이 앞에서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에비’ 하고 갑자기 크게 말하는 식이다. 그런 점에서 에비는 일종의 유아어(幼兒語)라고 할 수 있다.     


‘에비 논쟁’의 포문은 이어령이 열었다. 그는 문학가를 포함한 당대의 문화인들이 두려움의 대상으로서의 ‘에비’를 멋대로 상상하고 창조의 자유를 스스로 제한하고 있다고 여겼다. 문화인들의 ‘문화적 침묵’, 곧 부재하는 ‘에비’를 의식한 문화인들의 소심과 무능을 질타했다.    

 

김수영은 박정희 정권의 명백한 폭압을 ‘에비’로 규정했다. 문화인들의 침묵이 그들 자신의 소심증과 무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유‧무형적인 정치 권력의 탄압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 ‘괴수’ 앞에서는 개인은 물론이고 거대한 매스미디어 집단도 감히 대항을 하지 못하는 것이 당대의 현실이라고 일갈했다.      


나는 2013년 3월 22일 인터넷 언론 <오마이뉴스>에 ‘에비’에 대한 글 한 편을 썼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민주노총 등을 ‘종북세력’이나 ‘내부의 적’으로 규정하고, 그 부하들에게 일정한 ‘통제 작업’을 지시한 원세훈 국정원장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고 싶었다.      


그즈음 민주당과 새누리당은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과 김재연 의원의 자격 심사를 약속했다. 이명박과 박근혜로 이어지는 폭압적인 정권 아래서 ‘종북’과 ‘내부의 적’으로 낙인이 찍히는 순간 국회의원조차 ‘자격’이 의심되는 현실이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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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이즈음 나는 <이카로스의 감옥>(2016, 도서출판 말)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김재규 평전인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를 쓴 문영심 다큐멘터리 작가가 썼다.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의 진실”. 이 책의 부제다.

     

2013년 3월 12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국내정치 개입 및 지시 문건이 공개되기 시작했다. 2013년 6월 원 전 국정원장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다. 7월부터 8월 25일까지 국정조사가 실시되었다. 대선 불법 개입이 국정원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졌음이 밝혀졌다. 국정 조사 종료 3일 만인 8월 28일,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이 터졌다. (이상, 이석기 사건 변호인 이정희의 변론 요약)     


2013년 8월 28일 오전 6시 50분, 서울 마포에 있는 오피스텔 트라팰리스 9층에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방 앞에 건장한 사내들이 들이닥쳤다. 그 국정원 수사관들은 큰 못을 뺄 때 쓰는 연장인 빠루로 출입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오피스텔 명의자인, 이석기의 보좌관 이준호에게 압수수색 통지가 이루어진 시각은 7시 46분이었다. 이준호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8시 20분. 수사관들이 이미 증거물 수색을 거의 끝마친 뒤였다. 유명한 ‘빠루 검거’였다.  

   

<한국일보>가 국정원이 제공한 ‘이석기 녹취록 단독 입수’ 관련 보도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명백한 왜곡이 많았다. ‘선전수행’을 ‘성전(聖戰)수행’으로 바꿔치기했다.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선전활동을 하자는 이석기 의원의 말은 국정원이 왜곡하여 만들어낸 녹취록과 불법으로 유출된 이 녹취록을 보도한 언론에 의하여 마치 성스러운 전쟁을 수행하자면서 전쟁을 선동한 사람인 것처럼”(변호인 이정희) 바뀌었다.      


관련 보도를 주도한 <한국일보> 사회부 법조팀은 2013년 11월 19일 대한언론인상을 수상했다. 내란음모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포함된 혁명조직(RO)의 비밀회합 녹취록을 확보, 전문을 보도함으로써 이 사건의 실체를 알려 국민의 알 권리를 신장시켰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재판과정에서 RO는 실체가 없고 당시 강연은 비밀회합이 아닌 당의 공식행사였음이 밝혀졌다.     


녹취록 왜곡의 ‘신공’은 검찰이 더 탁월했다. “전면전은 안 된다”(실제 발언)→“전면전이야 전면전!”(감찰 날조), “통일적인 대응”(실제 발언)→“폭력적인 대응”(검찰 날조), “시 단위에 있어도 연락을 할 수 없는 상황”(실제 발언)→“실탄이 있어도 연락할 수 없는 상황”(검찰 날조), “중앙 당직이 다 없는 거예요”(실제 발언)→“중앙 지휘부가 다 없는 거예요”(검찰 날조).[<시사인> 제479호(2016년 11월 22일), 장정일의 독서일기 ‘이석기가 왜 감옥에 있어야 하는데?’에서 가져옴.]


9월 4일 오후 3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이석기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이 제320회 정기국회 제2차 본회의에서 이루어졌다. 개표 결과 찬성 258표, 반대 14표, 기권 11표가 나왔다. 야당인 민주당과 정의당은 이석기에게 둘러씌운 ‘종북’, ‘내란’과 같은 말의 불똥이 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들은 국회본회의장 입구에서 고개를 숙이며 호소하는 통합진보당 의원들을 철저히 외면했다.


국정원은 8월 28일~30일 사흘에 걸쳐 매일 백여 명의 국정원 수사관들을 동원해 국회의원회관의 이석기 의원실을 압수수색했다. 국회에서 이석기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통과되자 수백 명의 국정원 직원과 경찰관들이 국정원 버스와 경찰버스 수십 대에 나눠 타고 국회의원회관으로 들이닥쳤다.     


텔레비전 카메라 기자가 그 뒤를 우르르 따라갔다. 그것은 누가 봐도 불필요한 소동이었다. 마치 이석기가 소위 RO 조직원들을 데리고 국회를 장악하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보이도록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내란음모’라는 죄목을 실감나게 하려는 쇼였다. - 문영심(2016), <이카로스의 감옥>, 말, 171쪽.     


문 작가가 핍진하게 묘사하는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은 잘 짜인 한 편의 ‘영화’였다. ‘블랙 코미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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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심은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의 알파요 오메가로 이성윤이라는 사람을 지목했다. 이 책에 따르면 이성윤은 이석기를 내란음모죄로 고발한 국정원 협력자였다. 그는 수원지역에서 20여 년 동안 진보정당 활동을 해온 사람이었다. 민주노동당에서 통합진보당을 거치면서 수원시 지역위원장을 지내고, 민주노동당 후보로 국회의원에도 출마한 적이 있었다.      


이석기 변호인들은 변론요지서에서 이성윤을 ‘제보자’가 아니라 국정원으로부터 ‘수사를 의뢰받은 민간인’이라고 주장했다. 책에 정리된 관련 내용을 보자.     


이성윤은 2010년 7월경부터 국정원 수사관 문필주와 접촉해왔다. 문필주는 2010년 8월 녹음기를 이성윤에게 주고 녹음을 부탁한다. 2013년 8월까지 주 1~2회씩 정기적으로 이성윤을 만났다. 그 사이 5대의 녹음기를 주었고, 이성윤을 만날 때마다 국고로 한 번에 10~20만 원의 실비를 지급했다.     


녹음기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문필주와 이성윤은 총 150회 만났다. 그때마다 문필주는 이성윤에게 돈을 주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이성윤은 녹음을 통한 신고 대가로 최대 5억 원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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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의 재판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2015년 1월 22일 ‘내란 음모’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석기(53) 전 통합진보당 의원 등의 상고심에서, 내란 음모는 무죄로 판단하고 내란 선동·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는 유죄로 인정해 징역 9년과 자격정지 7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지금 이석기는 3년 넘게 0.75평의 감방에서 수형 생활을 하고 있다. 이석기가 속해 있던 통합진보당은 지난 2014년 12월 19일 재판관 8명(박한철, 이정미, 이진성, 김창종, 안창호, 강일원, 서기석, 조용호)의 찬성으로 해산 결정이 내려졌다. 그날은, 지금 국정 농단의 ‘범죄 피의자’이자 ‘공동 정범’이 되어 탄핵 심판의 대상이 되어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2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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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13년 3월 22일에 쓴 ‘에비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어령은 1960년대 후반에 ‘에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김수영은 ‘에비’의 명백한 실체를 강조했다. 나는 그 시대를 살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 분명히 김수영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그의 말마따나 당시 ‘에비’는 “가장 명확한 ‘금제의 힘’”이었다.

    

대통령 박근혜는 직무가 정지되었고, ‘권력 서열 1위’인 비선 실세 최순실은 구치소에 있다. 지금 우리 시대의 ‘에비’는 사라졌을까.     


‘생각’과 ‘말’을 처벌하고 ‘의견’과 ‘표현’을 제한하는 일을 수수방관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을 저버리는 일이다. 기본이 무너졌을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지난 3년 동안 수없이 목격해 왔다. 정부는 지난 2016년 8월 15일 광복절 71주년을 맞아 이재현 CJ그룹 회장 등 경제인 14명을 포함해서 총 4876명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그중에 양심수는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 문영심(2016), 위의 책, 381~382쪽.

     

나는 지금도 김수영이 옳다고 생각한다. 문영심은 이 책의 제16장(‘말’로 하는 내란 한국에만 있다) 제사(題詞)로 김수영의 시 <김일성만세> 일부를 인용했다. 다음과 같다.

    

‘김일성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   


* 제목 커버의 배경 이미지는 시인 김수영이다. <Lihe 위키>(http://ko.lihe.wikia.com/wiki/%EA%B9%80%EC%88%98%EC%98%81)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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