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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Jun 16. 2016

대한민국 교장제도 잔혹극 (1)

“교장만 되면 발 뻗고 잘 줄 알았더니 이게 무슨 꼴이냐”

1    


교장은 대학이나 학원을 제외한 각급 학교의 으뜸 직위, 또는 그 직위에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달리 학교장이라고 한다. 교감은 학교장을 도와서 학교의 일을 관리하거나 수행하는 직책, 또는 그런 사람이다. 교장과 교감의 법적 업무와 권한은 <초중등교육법> 제20조에 규정돼 있다.    

 

제20조 (교직원의 임무) ① 교장은 교무를 통할하고, 소속 교직원을 지도 ‧ 감독하며, 학생을 교육한다. ② 교감은 교장을 보좌하여 교무를 관리하고 학생을 교육하며, 교장이 부득이한 사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때에는 그 직무를 대행한다. 다만, 교감을 두지 아니하는 학교의 경우에는 교장이 미리 지명한 교사가 그 직무를 대행한다.    


교무 총괄, 인사, 교육이 교장이 해야 할 업무다. 교감은 교무 관리, 교육 등의 일을 해야 한다.

   

2    


교장과 교감의 이런 ‘업무’들을 보자. 어느 학교 교감은 수업 시간마다 복도를 돌아다니며 자는 학생을 파악한다. 교실에 들어가 자는 학생을 깨운다. 그러다 교사에게 쪽지를 보내 자는 학생이 몇 명이고, 왜 자는 학생을 깨우지 않는지 질책한다.     


또 다른 학교 교장은 학급 담임 교사에게 아침 지각생을 보고하게 한다. 야간 자율학습 인원 수를 보고하게 한 뒤 수가 적으면 교장실에 불려 가는 교사도 있다. 교육공동체 벗이 출간하는 교육 잡지 <오늘의 교육> 2015년 11+12월호에 실린 ‘민주적인 학교, 답은 정해져 있다?’라는 기사에 소개된 사례다.  

  

이렇게 일하는 교장은 어떤가. “교양이라고는 찾아볼 길이 없던” 그 학교 교장은 “기이한 언행”을 한 것으로 유명했다. 아침마다 교무실에서 국민의례를 시켰다. “여자들은 군대에 안 갔다 와서 애국심이 없다”라는 발언을 했다. ‘교장 전용’이라는 페인트 글씨로 자신만의 주차 공간을 확보하려 했다. 수련회 때 업자에게 하도 많은 뇌물을 요구해 업체에서 계약을 거부하는 바람에 수련회가 무산되게 했다. 반발하는 교사들에 기가 질린 그가 직원조회에서 화를 내며 외친 한 마디는 다음과 같았다.    


“교장만 되면 발 뻗고 잘 줄 알았더니 이게 무슨 꼴이냐.”   

 

서울 성원중학교 권재원 선생님이 <교장제도 혁명>이라는 책의 한 꼭지에 소개한 이야기다. 전용 주차장 만들 생각을 한 그 ‘간 큰’ 교장 덕분에 그 학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학교 단위 조직인 분회 대표(분회장)를 뽑는 데 경선을 치러야 할 정도로 전교조 가입 교사가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지극히 비민주적인 교장 한 사람이 역설적으로 학교 민주화의 ‘기폭제’가 된 형국이다. 그의 공로를 치하해야 할까.    


3    


마음의 ‘멘토’처럼 모시는 교장이 한 분 계신다. 그가 이 사실을 알 도리는 없을 것이다. 그에게 그런 속내를 내비친 적이 없다. 혹여 이야기를 꺼냈더라도 쑥스러움에 손을 휘저으며 그만두라고 했을 게 분명하다.     


나는 대인관계상의 ‘표현법’이 대체로 무미건조한 편이다. 누구를 좋아한다느니 존경한다느니 하는 표현을 별로 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사람은 마음으로만 그렇게 여기며 지낸다. 권위적인 이를 특히 싫어하는데, 그런 사람은 때로 지능적으로 때로 노골적으로 ‘생깐다’. 차갑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에게는 다르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존경한다, 멘토가 돼 주시라’고 직접 말하고 싶다. 대의를 앞세우며 학교를 꾸려가는, 아이들과 학교의 문제를 ‘행정가’가 아니라 ‘교육자’의 관점에서 풀어가려는 그의 일관된 모습은 나를 감동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현실적인 균형과 합리를 잃지 않으면서 학교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요컨대 그는 ‘선한’ 교장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멘토처럼 여기는 그분이 계신 공립학교에서 함께 근무할 수 없는 사립학교 교사다. 공립교사로 ‘특별채용’되어 그와 함께 학교 생활을 한다면 어떨까. 학교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내 바람이 그곳에서 실현될 수 있을까.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4    


대한민국 교장만큼 학교 민주주의의 ‘주적’ 대접을 받는 대상이 있을까 싶다. 그들은 대체로 권위주의적인 이미지로 그려진다. 실제적인 권한도 막강하다. 교직원 인사, 예산 편성과 집행, 교육과정 운영 등 학교 전반을 총괄하고 결정할 수 있다.     


교장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으니 권위주의의 달콤함 속으로 쉽게 빠져든다. 학교에서 볕이 가장 잘 드는 곳에 중후한 디자인의 소파와 책장 등으로 치장된 교장실이 표상하는 바를 떠올려 보라.     


우리나라 교장 제도는 비민주적이고 반지성적인 파행을 저지르기 쉬운 구조다. 학교 민주주의에 관한 한 선한 교장과 악한 교장의 문제 차원이 아니라 현행 교장 제도의 근원적인 부조리를 뜯어 고치는 차원에서 그 해법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다. 사람이 아니라 제도가 문제다.

    

5    


서울 역삼중학교 이순철 선생님은 <교장제도 혁명>의 한 글에서 우리나라 학교장 임용의 핵심이 ‘점수’에 있다고 주장했다. 교장 임용에 필요한 점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경력이다. 이 선생님은 현행 교장 임용 시스템이 연공서열에 맞닿아 있다고 보았다.    


요컨대 문제의 핵심은 첫째 교장 임용이 ‘승진’ 개념으로 고착화되어서, 둘째 기존의 연공서열 문화가 온전히 탈피되지 않은 가운데, 셋째 여기에 ‘전직’ 개념의 장학사 선발제도가 사실상 교장 선발 공개경쟁 시험처럼 되어 부작용을 내면서, 넷째 결국 자격증을 가진 교사들 사이의 제한된 경쟁으로 그친다는 사실에 있다. -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엮음, <교장제도 혁명>, 200쪽.    


현행 교장제도가 완전한 연공서열 구조는 아니다. 경쟁과 업적 중심의 평정이 일부 섞여 있다. 학교장 임용에 반영되는 경력은 예전의 25년 이상에서 현재 10년 이상으로 크게 감소되었다. 공모제 교장 제도 도입 이후 풍부한 현장 경험과 교육 능력을 갖춘 교사들이 교장직으로 들어가는 비중이 조금 늘긴 했다.   

  

이를 ‘공개 선발’의 효과라고 볼 수도 있겠다. 문제는 그런 ‘경쟁력’ 있는 교장 제도인 교장 공모제를 교육부 스스로 위축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공모(공개 모집)’의 본질에 충실하려는 노력 대신 교장 자격증을 가진 교사에 한해 공모제에 응하도록 하는 식으로 교장 공모제를 변질, 왜곡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배후에 교장 기득권 집단의 조직적인 반발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교장공모제 확대가 효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가 밝혀진다. 기득권 집단을 유지하도록 하는 두 가지 원인 때문이다. 그 첫째는 교장 자격증 제도이며 두 번째는 전직 개념으로 설계되었지만 승진 개념으로 왜곡돼버린 현행 장학사 충원 제도이다. 이 두 가지가 맞물려 학교를 교육이 아니라 관료적 행정이 우위를 점하는 구조로 고착시킨다. - 위의 책, 203쪽.    


* 외국 학교 교장들의 자격, 임용 제도 등에 관한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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