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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Jun 17. 2016

대한민국 교장제도 잔혹극 (2)

그는 ‘젊은 시절’부터 승진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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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젊은 시절’부터 승진을 준비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잠깐 앉아 있으면서 본 그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깔끔하고 시원스러워 보이는 인상이 나름 괜찮은 것 같다 여겼더니, 뭐랄까, 다시 찬찬히 그려보니 깐깐한 관료의 ‘꽁생원’ 이미지가 느껴졌다. ‘젊은 시절부터’라는 표현이 가져온 오해의 결과였으리라. 얼마 전 모종의 일로 동료 교사와 함께 어느 학교 교장실을 방문했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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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대한민국 초중고교에서 학교장이 되려면 ‘젊은 시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 챙겨야 할 것이 많다. 현행 교원승진제도의 핵심은 ‘점수’다. 교사가 교감, 교장으로 이어지는 승진 대열에 끼어들려면 승진 대상자들 목록인 ‘명부’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 교감, 교장 임용은 그 명부에 들어간 순서대로 이루어진다. 일종의 연공서열적 시스템이다.  

  

교사가 임용을 받으려면 점수를 따야 한다. 30대 중반부터 미리 점수를 준비하지 않으면 늦는다고 한다. 최근에는 그 시기가 더 빨라진 것 같다. 임용 직후부터 점수를 채우려고 분투하는 신규 교사들이 있다는 이야기가 더는 낯설지 않다.

 

자율형 사립고나 특목고 때문에 사실상 초등 4학년 때쯤 잠정적으로 학생들의 진로가 결정되듯, 학교장이 되는가 여부는 30대 중반에 이미 결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30대 중반에 승진의 길을 가고자 결정한 교사는 결국 이미 승진한 기득권 집단에 기댈 수밖에 없다. 이때 가장 중요한 통로는 다름 아닌, ‘전문직’으로의 전직이다. -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엮음, <교장제도 혁명>, 197~198쪽.


전문직은 장학사, 연구사, 장학관, 연구관 등으로 불리는 교육행정가들이다. 이들은 각 시도 교육청과 지역교육지원청을 비롯해 교육연수원이나 교육연구정보원 등 산하 기관에서 근무한다. 전문직은 교사 출신이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교사로 여기지 않는다. 1966년 유엔이 <교원의 지위에 관한 권고> 제6조에서 “교원은 전문직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라고 선언했으나, 교사는 교사일뿐 대체로 전문직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대신 이들 전문직들만 ‘전문직’ 호칭을 갖는다.    


묘한 것은 전문직으로의 입직이 명실상부한 ‘전문직’이 된 것을 보증하는 것이 아니라 교감과 교장 승진이 예정된 장교 집단에 진입한 것처럼 여겨진다는 점이다.[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교장제도 혁명>, 198쪽] 이에 따라 익히 예상되는 문제가 파생된다. 이순철 서울역삼중학교 교사는 ‘기수’ 문화가 장학사 사회에도 만연해 있으며, 군대처럼 수직적 명령과 지시, 하달, 명령복종 관계가 이러한 기수 문화에 성립한다고 주장했다.


전문직 집단의 전근대적인 기수 문화는, 승진명부상에서 조금이라도 상위로 올라가기 위해 점수 차이를 벌리고 싶어하는 승진 대상자들게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핵심 고리는 가산점이다.     


현행 승진제도에서는 경력 점수를 채워 교감 임용 명부에 들어가는 일이 어렵다고 한다. 학교에서 교육 경력을 채우고 연구 점수를 어느 정도 따면 임용 명부에 들기 위한 점수를 가산점을 통해 얻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산점을 주기 위해 사업을 ‘만드는’ 사례가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다.


이 교사에 따르면 교육청에서 기획되는 사업이 교육행정 관료집단의 인맥 관계에 따라 사적으로 결정되어 집행되는 문제를 보인다고 지적한다. 교육청 기획 사업이 특정 교육정책의 실현이 아니라 특정 인맥을 챙기고 그들에게 특정 가산점을 부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체 교육정책의 방향이 어떠하든지 간에 가산점 제도 자체가 이해관계가 걸린 장학사와 학교장, 교감 그리고 승진구조 속에 줄 서 있는 부장 교사들에 의해서 심각하게 왜곡되는 것이다. 가산점 제도의 소위 ‘메리트’는 특정 정책을 촉진하거나 억제하는 데 작동하는 게 아니라 제도를 만들어서 가산점 받을 여지를 무작정 ‘펼치는’ 방향으로 왜곡되게 작동한다. 그 이유는 현행 교장임용 제도에 덧붙여 전직이 곧 승진이 되는 장학사 임용제도의 모순 때문이다. - 위의 책, 202쪽.    


승진을 바라는 교사가 연구점수나 가산점을 따기 위해서는 교실에서, 그리고 학생들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각종 연구대회에 출품할 보고서와 작품을 만들고, 장학사가 ‘만든’ 사업을 실행하는 일에 매진하다 보면 본연의 학교 교육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겠기 때문이다. 교장 승진을 교육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교사들의 경쟁에 빗댄 권재원 서울 성원중학교 교사의 말은 정확히 이런 문제를 꼬집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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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학교장이 되는가. 교육의 본질 차원에서 접근해 보자. 우리에게 낯선 질문이 된다. 현재로서는 ‘젊은 시절부터 승진 점수를 차곡차곡 잘 쌓아가는 교사’가 교감, 교장으로 승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교육적으로’ 올바른 현상이 아니다.

     

외국은 교장의 ‘자격 요건’을 어떻게 정해놓고 있을까. 성병창 부산교육대학교 교수가 <교장제도 혁명>에서 주요 5개국(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의 교장 임용제도를 소개하면서 정리한 시사점을 중심으로 알아보자.


전반적으로 살필 때 학교장의 자격 요건으로 교직 경력보다 업무 수행 능력이 중시된다. 학교장 자격이 교직 경력을 통한 승진이 아니라 학교행정가나 전문가로서의 역량에 더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교장 자격 기준 중 교육 경력을 최소화하는 대신(우리나라는 거의 20~30년 정도의 교직 경력을 요구하고 있다.) 학교장 자격을 별도로 규정한 뒤 이를 표준화한 프로그램을 통해 체계적으로 교육시키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눈길을 끄는 나라가 영국이다. 영국은 우리나라처럼 국가 수준의 교장 자격증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2004년부터 국립교장연수원이라는 국가 수준의 양성기관을 설립해 최고의 학교장 직무기술 교육을 실시하고 시작했다고 한다. 교직 경력과 연구 점수, 가산점 등 점수를 모으기만 하면 자격증이 부여되어 승진 대열에 낄 수 있는 우리와 다르다.    


‘교장 자격증’이 곧 ‘교장 자격’을 보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전제를 떠올리게 하는 사례도 있다. 일본에서는 2001년부터 민간인 학교장 임용제도를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우리나라 교장공모제 중에서 ‘개방형’이 이와 비슷할 것이다.) 프랑스의 초등 교장이나 독일 교장은 교원으로 인식된다. 미국이나 영국의 교장은 학교행정가로 인식된다.     


프랑스 중등학교의 교감과 교장도 행정직, 관리직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교사가 교장이 되는 것은 승진이 아니라 다른 직업 경로를 선택하는 것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우리식의 ‘전직’ 개념이 말 뜻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    


* 다음 글에서는 교장제도 개혁의 방향을 학교 민주주의의 실현 측면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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