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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Feb 21. 2017

손톱 깎기

적바림 (8)

1     


아이들은 대체로 손톱 깎는 것을 싫어한다. 손톱깎이의 차가운 이물감이 유쾌하지 않다. 날카로운 쇠날이 손가락이나 발가락 끝을 휩쓸고 가는 것 역시 달갑지 않을 것이다. 손톱깎이에 살갗이 살짝 집힌 경험이라도 있다면 최악이다.


우리 집에서는 7살 막둥이가 특히 심하다. 손톱을 깎자고 하면 ‘아니야’부터 내놓는다. 길게 자란 손톱과 발톱 아래 시커먼 때가 끼어 있어도 막무가내로 버티곤 한다. 막둥이는 온갖 상을 찡그리고 몸을 뒤튼다. 손톱을 다 깎고 나면 무슨 큰일이나 한 것처럼 깊은 숨을 내쉰다.


첫째는 초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 손톱과 발톱을 직접 깎기 시작했다. 둘째는 다섯 살 무렵부터 스스로 입으로 손톱을 정리했다. 수년 전에는 입으로 발톱마저 손질하는 열성을 보여주었다. 유쾌해 하지는 않지만 손톱깎이에 손을 맡기는 순간 얼음이 된다. 금방 끝난다.


막둥이와는 한바탕 실랑이를 되우 치러야 한다. 막둥이의 손톱과 발톱을 깎을 때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나는 막둥이의 유난히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오른손으로 조심스럽게 쥔다. 왼손 엄지와 검지로 각각 손톱깎이의 몸통과 지렛대 끝을 쥐고, 중지와 약지로 손톱깎이의 몸통 중동께와 머리를 살짝 받쳐준다.


몸통과 지렛대 끝에 힘을 주어 손톱깎이 날들이 적당한 강도로 맞닿는지 움직거려 본다. 순간 멈칫한다. 엄지손가락부터 깎을까 새끼손가락부터 깎을까. 막둥이 손가락들을 전체적으로 눈대중한다.


엄지 손톱의 기상이 씩씩하고 커보인다. 딱 딱 손톱 잘리는 소리가 장쾌할 것 같다. 손톱 밑에 때가 함함하게 끼어 있다. 때가 밀려나간 깔끔한 자리가 기분을 상쾌하게 할 것 같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새끼손가락 끝에 날을 갖다댄다. 손톱이 물러 마치 부드러운 풀대를 깎는 것 같다. 나는 미묘한 긴장의 세계로 빠져든다. 나도 모르게 위아래 어금니를 꽉 깨문다.   

  

2     


어머니께서는 구순이 내일모레시다. 젊은 시절 논일 밭일을 많이 하셔서 허리가 많이 굽으셨다. 칠십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무릎 관절 때문에 큰 고통을 받고 계신다. 다만 총기가 좋으시고 진지를 잘 드셔서 다행이라 여긴다.


누나 집에서 지내시는 어머니를 뵈러 가서 종종 손톱과 발톱을 깎아드린다. 어머니 손은 부드러우면서 거칠다. 고운 살이 빠져나간 자리에 핏줄과 뼈만 앙상하지만 살갗이 여전히 고우시다. 그 부드러우면서 거칠고, 앙상하지만 고운 어머니 손을 잡고 조심스레 손톱을 깎는다.


어머니 손톱과 발톱은 억세다. 구십 평생 들과 산에서 풀과 흙과 물을 만지고 밟은 손길과 발길의 흔적이 스무 개의 손톱과 발톱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그것들은 굵다란 손톱깎이 몸통 끝에 벼려진 억세고 강한 날에도 기가 죽지 않는다.


나는 몸통과 지렛대 끝에 굳게 힘을 주면서 어머니 손톱을 하나하나 깎아 나간다. 막둥이 손톱의 딱 딱 대신 퍽 퍽 소리가 난다. 굳게 깨문 위아래 어금니에 힘을 준다.   


3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1681~1763)은 죽기 직전 ‘조갑명(爪甲銘)’이라는 글을 지어 유언으로 삼았다고 한다. ‘조갑명’은 ‘손톱과 발톱에 부친 좌우명’이라는 뜻이다. 다음과 같다.     


(전략) 옛날 내가 어렸을 적에는 손톱과 발톱을 모아둘 줄 몰랐다. 다만 그것을 보존하게 된 일은 중년부터 시작하였다. 모아둔 것을 합쳐 보니 손바닥 가득 두 줌이다. 흘러간 세월을 이로 헤아려 알겠다. 이들 각각을 봉투에 싸 후손에게 맡겨 부탁한다. 남긴 머리카락은 베개로 대신하고 오른쪽에 이것을 채워두거라.     


성호는 중년 이후 평생 모은 조갑(손톱과 발톱을 통틀어 이르는 말)과 머리카락을 관에 넣고 선산에 누운 부모님을 뵈러 갔다. <효경(孝經)>의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니 불감훼상(不敢毁傷)이 효지시야(孝之始也)라”를 온몸으로 실천한 것이다.


‘포도지정(葡萄之情)’이라는 한자말이 있다. 어머니가 포도를 한 알 한 알 입에 넣어 껍데기와 씨를 가려낸 다음 그것을 아기에게 입으로 먹여주던 애틋한 마음을 가리킨다. 어머니의 지극한 자식 사랑이 담겨 있다.


어느 글을 보니 조선시대 어머니들은 아기들의 손톱과 발톱을 이로 조근조근 씹어서 잘라줬다고 한다. 포도지정의 애틋한 마음을 손톱과 발톱으로 옮겨 실행한 것이 아닐까. 손톱과 발톱을 깎는 그 사소한 일 하나에 인간사 온 우주가 담겨 있음을 깨닫는다.


* 제목 커버의 배경 그림은 성호 이익이다. 인터넷 <나무 위키>(https://namu.wiki/w/%EC%9D%B4%EC%9D%B5(%EC%8B%A4%ED%95%99%EC%9E%90))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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