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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Apr 06. 2017

‘등교지도’ 유감

너희가 10대를 아느냐 (49)

1     


올해 업무 무서가 ‘학생부(인성인권부)’로 바뀌었다. 간부수련회, 명찰 관리, 학생증 관리, 봉사활동 따위의 업무가 맡겨졌다. 여기에 학생부 소속 교사들이 공통으로 하는 업무가 하나 더 붙었다.  ‘등교지도’, 또는 ‘정문지도’였다.     


아침 등교지도는 ‘선도부 활동 임장 지도’ 명목으로 하는 일이다. 선도부 학생 두엇과 함께 정문 안쪽에 서서 등교하는 학생들의 교복 복장 착용 상태나 명찰 착용 여부를 확인한다.     


2     


학생부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10여 년 전쯤 고등학교에 있을 때 학생부에 처음 들어갔다.   
  

어느 날이었다. 유례 없이 교실을 돌며 두발 단속을 한다고 했다. 몇몇 선생님이 손에 30센티미터 길이의 자를 든 선도부를 앞세우고 교실로 향했다. 내게도 몇 개 반이 분담되었다. 그 반을 돌아다니며 두발 상태를 검사할 수 있게 선도부 두 명이 배속(?)되었다.      


학생들을 먼저 교실로 보냈다. 나는 학생부 무실에 남아 미적거렸다. 그 모든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완강히 거부해야 했다. 그러나 당시 나는 그럴 만한 용기(?)가 없었다. 나이 지긋한 부장 교사와 선배, 동료 교사들과의 ‘관계’를 마냥 무시하기 힘들었다.      


조금 시간이 지난 뒤 교실을 돌아보았다. 다행히도(?) 머리카락에 특별한 문제가 있는 학생이 없었다.

다음 날 학생들과 눈빛을 마주칠 수 없었다. 평소 ‘학생인권’을 강조하던 나를 그들은 위선자나 거짓말쟁이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3     


올해 학생부 소속이 되었다는 말을 처음 듣고 10년 전 그 일이 기억났다. 동시에 내 머릿속에 ‘이번에는 내 양심에 어긋나는 업무를 절대 받아들이지 않겠다’라는 다짐의 말이 떠올랐다.     


학생부장과 함께 첫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였다. 예의 아침 등교지도 이야기가 나왔다. 일언지하에 ‘안하겠다’고 했다. 농담처럼 들은 걸까 어이가 없어서였을까. 부장이 피식 하고 웃었다.     


“그래도 계속 해 왔고, 교장 선생님이 하라고 하시니 해야지 어떻게 하겠어요.”     


이런저런 몇 마디를 덧붙였으나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지난 3월 초 새 학년이 시작되고 난 얼마 뒤였다. 학생부 선생님들끼리 모여 새 학년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김없이 등교지도 건이 또 나왔다.   

  

부장은 요일을 나누어서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다. 다들 별다른 말씀이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또 다시 모순의 ‘관계론’에 빠져들고 있었다. ‘양심에 어긋나니 아침 등교지도를 거부하겠다’고 말하는 순간을 그려보았다. 그 싸늘하고, 민망해질 게 분명한 어색한 분위기를 내가 배겨낼 수 있을까.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등교지도 폐지론자입니다. 양심상 안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다들 하시려는 듯하니 하겠습니다. 다만 이렇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등교지도’나  ‘정문지도’ 대신 ‘정문맞이’나 ‘아침맞이’로 하면 어떨까 합니다. 엄격한 단속이나 통제보다 따뜻하게 안내하고 맞이하는 시간으로 보냈으면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몇몇 선생님께서 취지에 공감해 주셨다. 그다음 주부터 나는 울며 겨자먹는 심정으로 정문에 섰다. 부끄럽고 유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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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3학년과 2학년 한 반에서 그런 저간의 상황을 학생들에게 말했다. ‘아침맞이’ 분위기가 만들어지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물어보았다. 대체로 ‘지도’와 ‘단속’과 ‘검사’와 ‘통제’의 색깔이 여전히 강하다고 대답했다.      


복장이든 명찰이든 특별히 무언가를 확인하거나 검사하는 일 없이 정말 따뜻하게 인사하며 맞이하는 것은 괜찮지 않겠느냐고 바꿔 물었다. 학생들 답변의 대다수는 ‘그래도 싫다’였다. 한 학생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가 말했다. ‘그냥 부담스러워요’.     


맞다. 어떤 특별한 문제가 있어서 학교 문턱을 넘어서는 일을 힘들어 하는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은 거의 없다. 등교 ‘지도’든 ‘안내’든 ‘맞이’든 정문에 서서 그 어떤 일을 하지 않아도 초등학생조차 자연스럽게 등교할 수 있다.      


나는 어떤 교육적 ‘선의’나 ‘의미’로 수식하더라도 등교지도가 사라져야 할 구시대의 잔재라고 생각한다. 등교 시간에 학교 대문을 거리낌 없이 넘어서는 일 하나만으로 학생들의 아침이 훨씬 행복해지리라 믿는다. 별다른 이유가 없어도 정문에 선 ‘완장’ 찬 선도부나 학생부 교사 눈치를 보게 되는 일 또한 사라질 것이다.

  

이번 학기가 끝나기 전 내 부끄러운 ‘관계론’을 넘어서게 만드는 명분과 논리를 만들어야겠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이미지 무료 제공 사이트 'pixabay.com'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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