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10대를 아느냐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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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을 때였다. 둘째가 종이 한 장을 들고 왔다. 훑어보니 일종의 독서 기록지였다. 부모와 학생 칸을 따로 마련해 한 달간 읽은 책과, 책을 읽은 시간을 표시하게 해 놓았다. 학생과 부모가 가정에서 함께 책을 읽는 분위기를 만들려는 학교 측의 노력으로 보였다.
수업 중에 책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꺼내는 편이다. 읽은 책 중 괜찮은 것이 있으면 적극 추천한다. 교실 분위기가 아주 좋다. 눈빛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이는 학생들이 많다.
어른들은 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걱정이 많다. 내가 보기에는 책을 읽지 않는 어른들이 더 문제가 많아 보인다.
2016년 상반기 기준으로 인터넷 서점 예스24에서 책을 구매한 연령별 점유율을 살펴보니 남성의 경우 10~20대 6.7퍼센트, 50대 이상 6.4퍼센트로 집계되었다. 여성은 10~20대가 11.1퍼센트, 50대 이상이 5.3퍼센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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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에서는 매 학년 초 학생들에게 ‘독서 기록장’을 한 권씩 나눠준다. 독서 방법, 독후감 쓰기 요령, 추천 도서 목록, 연간 독서 계획표와 월별 독서 기록지 들이 두루 담겨 있다.
요며칠 우리 반 학생들의 독서 기록장을 살펴보았다. 얼마 전부터 독서 기록장에 이번 학기 독서 계획을 고민해 쓰고, 아침마다 조금씩 읽은 글 내용이나 감상을 정리해 보라고 했다.
누군가는 벌써 한 면 빽빽하게 또박또박 독후감을 써냈다. 30권, 50권을 읽겠다며 계획을 야심차게 세워 놓은 학생이 있었다. 고작 3권을 읽겠다는 느긋한 학생도 있었다. 자신만만하게 50권을 써낸 학생과 비교해 보니 ‘장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렇게 믿고 싶다. 이번 학기에 읽을 책 권수를 ‘3’으로 결정하는 그 시간 동안 그의 머릿속 주인공은 오롯이 책이었을 것이라고, 그리하여 짧은 시간이나마 책에 대해,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옮기는 행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을 것이라고 말이다.
어제와 오늘 이틀에 걸쳐 ‘독서 다짐’ 쪽에 한두 문장씩 격려하는 글을 달아주었다. 책을 통해, 그리고 꾸준한 책 읽기를 통해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눈을 깊고 넓게 할 수 있다. 각자의 ‘특별한’ 삶이, 책과 함께할 때 더욱 특별해질 수 있다.
3
청나라 문인 장조(張潮, 1650~1703)는 한림원의 도서를 정리하고 교정하는 일을 맡았다. 일찍이 수많은 총서와 저작을 남긴 그는 책과 독서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책을 소유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책을 펴는 것이 어렵다. 책을 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책을 읽는 것이 어렵다. 책을 읽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읽은 것을 활용하는 것이 어렵다. 읽은 것을 활용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 어렵다.”
책을 읽어 ‘기억하는 것’이 왜 어려울까. 나름대로 해석해 본다.
책 읽기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신을 돌아보는, 그리하여 이미 굳은 생각과 삶에 변화를 주는 일이다. 스스로를 깨뜨리는 것, 그 자신을 현재나 과거에 매어두려는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혁명’이다.
읽은 것을 몸과 머리에 새겨넣지(기억하지) 않을 때 책은 한낱 장식품이거나 생활의 삿된 방편 혹은 도구에 불과한 것이 될 것이다. 우리 반 학생들이 내가 독서 다짐 쪽에 적어 준 문장들의 뜻을 하나하나 찬찬히 새겨보았기를 바란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무료 이미지 제공 사이트 pixabay.com에서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