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바림 (12) 전인권 씨의 <걱정 말아요 그대> 표절 논란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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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독일 그룹 ‘블랙 푀스(Bläck Fööss)’가 부르는 <드링크 도흐 아이네 멧(Drink doch eine met)>’을 듣고 있다. 중독성이 강한 멜로디다. 그리고, 놀랍게도 노래가 글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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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링크 도흐 아이네 멧>은 서민풍(?)의 전형적인 대중 가요다. 제목의 뜻이 ‘한 잔 같이 합시다’ 정도라고 한다. 돈이 없어서 맥주를 못 마시는 남자에게 주변 사람들이 돈을 내 줬다는 훈훈한 내용이 노랫말에 담겨 있다. 소박한 인간미가 느껴진다.
유튜브에 올라 있는 영상 도입부에는 그룹 이름과 ‘1975’라는 연도가 자막으로 나온다. 노래가 실제 발표된 것은 1971년이라고 한다. 영상은 실내에서 진행된 공연을 카메라로 촬영한 것 같다.
세상에 나온 지 40년이 지난 노래, 그것도 머나먼 이국의 조그만 지역에서 불린 노래의 멜로디가 친숙하게 들리는 건 전인권 씨가 부른 <걱정 말아요 그대> 때문이다.
나는 며칠 전 한 페친이 올린 글을 통해 전인권 씨의 <걱정 말아요 그대>가 블랙 푀스의 이 노래를 표절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곧장 노래를 들어보았다. 멜로디가 너무 비슷했다. 표절이니 번안곡이니 하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게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가수 김장훈 씨는 전인권 씨가 표절했을 리가 없다며 ‘황금코드진행’을 주장했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친숙하게 들리는 코드 연쇄(G-D-Em-Bm-C-D-G-D)로 노래가 전개되어 두 곡이 비슷하게 들린다는 논리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글쎄, 솔직히 잘 모르겠다. 김장훈 씨 말대로 전인권 씨의 양심에 맡겨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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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전대미문의 기세로 촛불이 타올랐을 때 전인권 씨의 <걱정 말아요 그대> 역시 사람들 목을 타고 뜨겁게 터져나왔다. 우리는 촛불을 들면서 너무나 많은 걱정을 했다. 나라가 위태로워지지 않을까, 쿠데타든 뭐든 박근혜를 추종하는 무리들이 한바탕 난리를 피우지 않을까, 이 힘 없는 촛불들이 강고한 박근혜를 끌어내릴 수 있을까.
장삼이사들에게 그런 걱정들은 너무나 크고 두려운 것이었다. 그때 전인권 씨는 특유의 거칠면서도 굵직하고 믿음직스러운 목소리로 우리를 위로했다. ‘걱정 말아요 그대’라고 흐느끼듯 속삭이면서. 촛불이 계속 타오르면서 <걱정 말아요 그대>는 어느새 ‘국민 노래’가 되었다.
나는 <걱정 말아요 그대>의 노랫말이 인쇄된 종이를 차에 싣고 다니며 노래를 불렀다. 식탁에 앉아 큰딸과 함께 연습하기도 했다. 그렇게 노래를 부를 때마다 알지 못할 기운을 느끼며 눈두덩이 뜨거워지곤 했다. 그런 노래가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허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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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는 <드링크 도흐 아이네 멧>의 또 다른 영상 버전이 올라 있다. 2010년 4월 9일 독일 퀄른에서 열린 ‘블랙 푀스 40주년 기념 공연’ 영상이다. 나는 지금 이 영상을 ‘연속 재생’으로 틀어 놓고 듣고 있다.
히피풍의 자유로운 장발에 나팔 모양의 긴 청바지를 입고 노래를 부르던 1970년대의 청년들은 이제 양복과 와이셔츠로 중후한 멋을 낸 중년이 되어 있다. 1975년의 스튜디오 공연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멋진 곡에 담뿍 취해 있는 듯한 표정으로 노래를 불렀다. 2010년 쾰른의 널찍한 무대에 선 그들은,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성숙한(?) 신사들이 되어 점잖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내 눈길을 강렬하게 잡아 이끈 것은 관중들이었다. 그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라는 상투적인 수사가 아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풍경 속에 서 있었다. 친숙한 ‘황금코드’로 진행되는 노래의 따뜻한 분위기 때문이어서일까. 서로 어깨를 겯고 팔짱을 낀 채 어울리는 그들의 모습이 마치 친한 동네 어르신의 환갑잔치에 모인 한동네 사람들 같았다.
‘한 잔 같이 합시다.’ 그들은 힘들어하는 서로에게 그런 말을 건네며 지난 40년 세월을 흘러왔을 것이다. 블랙 푀스와 그들의 노래가 준 위로와 치유의 힘을 간절히 바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문득 자문해 본다. 표절 논란에 휩싸여 있는 <걱정 말아요 그대>를 들으며 나는 지나간 소소한 추억을 원래 모습 그대로 간직할 수 있을까. 촛불을 들고 앉은 옆자리 낯선 이에게서 강한 연대감을 느끼며 ‘걱정 말아요 그대’라는 속엣말을 건넬 때마다 스스로 위안을 구하던 그 가슴 뭉클한 경험을 앞으로 또 가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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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권 씨가 곧 독일로 간다고 한다. “이 노래를 좋아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부끄럼 없는 노래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다짐의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원작자와 친해질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으니, 바람 같아서는 그들이 “걱정 말아요 그대, 한 잔 같이 합시다”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 함께 부를 수 있다면 좋겠다. 제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 새벽 내 귓전을 울리는 것은 <걱정 말아요 그대>가 아니라 블랙 푀스의 <드링크 도흐 아이네 멧>이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무료 이미지 제공 사이트 'pixabay.com'에서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