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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革新)’이라는 말이 불편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교육계에서 ‘혁신’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끈 참여정부 시절부터였다. 성과급제도와 교원평가제 등 지금 우리나라 학교 현장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는 교육악제들이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뭇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한 귀퉁이에 ‘혁신’이라는 말이 들어간 공문이 유난히 많았던 시기가 참여정부 시절이었다.
공문을 통한 ‘혁신’은 전형적인 톱-다운 방식이다. 그런데 혁신은 상명하달을 특징으로 하는 위계적인 관료 시스템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학교와 교사는 ‘혁신 혐오감’에 빠지기 시작했다. 교육정책의 기조가 사학법 개정 파동 국면을 전후로 크게 요동치면서 방향을 잃었다.
‘혁신’이라는 말은 이명박 정부 출범과 더불어 수면 아래로 잠겼다. 이 말이 화려하게 부활한 것은 2010년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발 ‘혁신학교’를 통해서였다. ‘교육혁신’, ‘수업혁신’이라는 말이 학교와 교실과 교사들의 언어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혁신’이 빠지면 교육 문제를 이야기하기 힘든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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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전쯤이었을 것이다. 토론 수업이니 모둠별 수업이니 하며 수업 ‘혁신’을 한답시고 나름 동분서주하고 있을 때였다. ‘혁신학교’ 출범 초창기여서 분위기가 그다지 뜨겁지 않은 때였다. 교실이 수선스럽다느니 하며 뒷담화를 하는 선생님들이 계시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되었다.
대다수 선생님들이, 이제는 ‘공공의 적’ 같은 대접을 받는 ‘일제식’ 수업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모둠 수업이 ‘정답’인 이유가 여기 있소”라며 조목조목 따질 만한 용기가 없었다. 처음에 마음이 조금 상했다가 곧 그럴 수 있겠거니 했다.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올해 우리 학교에서는 ‘수업혁신’을 지향하고 실천하는 차원에서 전체의 10퍼센트인가 20퍼센트 이상을 모둠형 협력 수업 형태로 진행하자는 내부 ‘기준’을 갖게 되었다. 토론하는 교실이 시끄럽다느니 하며 교사들이 뒷담화하던 시절이 불과 몇 년 전이었으니 놀라운 변화다. 혁신학교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씁쓸하면서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이제는 교사들이 학생들과 함께 ‘특별한’ 모둠 수업을 하지 않으면 ‘혁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그것에 반대하는 구태의연한 무능 교사 취급을 받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부디 나만의 편벽된 ‘오해’이길 바란다.
나는 이런 보이지 않는 강압적인 분위기가 편치 않다. 가만히 보면 ‘우스운’ 일들이 많다. 무엇이 ‘혁신’의 ‘정답’인지 그 누구도 명확히 말하기 힘들건만 특정한 학교나 교사를 ‘반혁신’으로 몰아가는 흐름이 있는 것 같다. “너희는 왜 우리의 혁신에 저항하느냐.”라면서. 물론 이도저도 상관 없으니 제발 이대로 놔두라는 학교와 선생님들이 절대 다수겠지만 말이다.
내가 관찰하기에 현재 대다수 ‘혁신학교’는 교사의 헌신성을 기반으로 움직인다. 수업혁신을 위해 일과 후에 남아 수업을 분석하고 비평하며, 학교 자치를 실천한다며 학생들과 함께 방과후 동아리 활동 들에 힘쓴다. 이런저런 모임과 연수 자리도 꼼꼼히 챙겨야 한다.
솔직히 걱정스러울 때가 많다. 전부는 아니지만 ‘혁신’을 실천한다며 애쓰시는 선생님들에게서 ‘여유’를 찾아보기 힘들다. 교실만이 아니라 행정 단위에도 ‘혁신의 흔적’을 남겨야 하므로 이런저런 잡무가 늘어난다. 몸과 머리에 ‘여백’이 자리잡기 어렵다. 이런 방식으로 ‘지속가능한 학교(수업)혁신’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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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革新)’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말았으면 좋겠다. 원래 ‘革’은 머리부터 꼬리까지 벗긴 짐승 가죽을 본뜬 글자다. ‘혁신’, 곧 묵은 것을 고쳐서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미봉이나 임기응변으로는 불가능하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완전히 벗겨내야 한다. 오래되어 문제 투성이로 밝혀진 습속과 관습과 조직과 방법 따위를, 근본을 뜯어고친다는 태세로 철저히, 그리고 섬세하게 바꾸어야 한다. 까딱 잘못하면 가죽 전체가 훼손된다!
수업을 ‘모둠형’으로 바꾸고 학교를 ‘혁신학교’로 만들면 수업과 학교가 혁신되나. 어느 정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수업과 학교‘만’ 그렇게 바꾼다고 해서 교육이 바뀔 리 만무하다.
지금 우리 교육을 이끄는 핵심 원리인 경쟁주의와 차별주의 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수업과 학교혁신은 ‘무늬’로만 존재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혁신’은 교사들을 서로 다른 등급으로 나누어 선별하고, 그들에게 승진과 성과급이라는 ‘당근’의 유혹을 들이미는 시스템 아래의 ‘혁신’이다.
제19대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교육적폐 청산 목소리가 여느 때보다 뜨겁다. 이미 ‘혁신 풍년’인데, 또 다시 ‘혁신’이라는 말이 거대한 회오리바람을 불러일으킬지 모르겠다.
바라건대 상명하달로 오는 것이어서 현장 교사들을 들러리 세우는 ‘혁신’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발본(拔本) 하지도 않으면서 교사들을 쥐어 짜는 식의 ‘혁신’도 고사한다. 혁신을 위한 ‘도끼질’과 ‘칼질’이, 제발 정치인이나 관료들의 한탕주의가 아니라 교육의 핵심 주체들인 학생과 교사를 살리는 토대 위에서 휘둘러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 도끼질과 칼질이라면 두 손 들어 환영한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무료 이미지 제공 사이트 'pixabay.com'에서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