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정치적 기본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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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중학생들과 지내고 있어서 그런지 이번 선거 기간에는 수업 중에 선거 관련 이야기를 거의 하지 못했다. 4년 전 고등학교에 있을 때는 조금 달랐다. 학생들이 선거 가능 연령대에 좀 더 가깝게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선거철 즈음이면 학생들 앞에서 "나중에 투표권 갖게 되면 꼭 투표해야 한다"라는 말을 꺼냈다.
그게 다였다. 대한민국 교사는 학교 안팎을 불문하고 '정치적' 발언과 행동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투표 이야기를 꺼내는 그런 수업 시간이 되면 많은 학생들이 후보들에 대해 의견을 내거나 앞 다투어 질문을 던졌다.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거나, 정치적 초월주의자처럼 가만히 미소를 지으며 서 있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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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헌법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다. 교육이 권력의 '하수인'처럼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장치다. 그뿐이다. 정치 중립성에 관한 헌법 조항 어디에도 교사나 학생이 정치를 금기시해야 한다거나 정치에 눈길을 돌리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은 없다.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 조항인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국가공무원법>과 같은 하위법에서 일체의 정치 행위를 금지하는 '의무' 조항으로 둔갑해 있다. 세계 주요 국가들 중 교사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권을 허용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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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들을 보자. 영국 공무원은 정당에 가입할 수 있다. 교사의 경우 정치 활동의 범위에 제한이 거의 없다. 프랑스 공무원들 역시 정치 활동 제한 요건이 없다. 직위에 있으면서 선거에 입후보할 수 있으며, 의원직 사임 후 복직시 승진과 경력 환산 혜택을 받는다.
교육 부문에서의 정치적 자유권과 관련하여 가장 눈길을 끄는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 공무원들은 자신의 직위를 유지한 채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 지방의원의 경우 의원 겸직이 허용되며, 유급 휴가를 쓸 수 있다. 교원들은 근무 외 시간에 자유롭게 정치 활동을 할 수 있다.
독일 교사들은 법적으로 폭넓게 보장되어 있는 정치적 자유권 덕분에 연방의회에 두루 진출해 활동하고 있다. 제16대 연방의회기(2005~2009) 당시 재적의원 614명 중 81명(13.2%)이 교사 출신이었다. 법조인(143명, 23.3%)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비중이었다. 교사 출신 의원의 비중이 큰 이런 의회 구조는 독일 외에 노르웨이와 스웨덴과 프랑스 등 이른바 '정치 선진국'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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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에게 정치적 권리를 허용하면 학교와 교실이 정치 투쟁의 장처럼 변질될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근거 없이 공포 심리를 조장하는 주장이다. 교사가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정치적으로 선동하거나 그들에게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강요하기 어렵다. 혹시 그렇게 할 경우 기존의 법규들만으로 충분히 처벌할 수 있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나라는 교사들이 직무와 무관한 장소와 시간대에 정치적 자유권을 행사하는 것조차 상상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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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대선 투표를 우리 아파트 단지 안에 자리잡은 투표소에서 실시했다. 투표에 걸린 시간을 대강 헤아려 보았다. 집에서 투표소까지 가는 데 걸린 시간 5분, 신분증 제출 뒤 선거인 명부 대조 확인까지 10초, 투표용지 수령 2초, 기표 3초, 투표용지 투표함 투입 3초, 투표소 내 총 이동 시간 5초 등을 합해 고작 5분 23초에 불과했다.
교사 시민으로서 정치적 주권 행사에 걸린 시간 5분 23초를 제외한 나머지는 '정치적 금치산' 상태로 보냈다. 에스엔에스(SNS)에 올라오는 선거 정치 관련 포스팅에 '좋아요' 한 번 제대로 누르지 못했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교사 공무원이 전국적으로 100만을 훌쩍 넘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무료 이미지 제공 사이트 pixabay.com에서 가져왔다.